바뀜

584 바이트 제거됨 ,  2011년 3월 8일 (화) 12:41
31번째 줄: 31번째 줄:  
2001년 프랑스 FC METZ(메스)에 입단하여 축구전문학교인 COLLEGE ARSENAL에 선발되어 4년간 최고수준의 주말리그를 뛰었다.  
 
2001년 프랑스 FC METZ(메스)에 입단하여 축구전문학교인 COLLEGE ARSENAL에 선발되어 4년간 최고수준의 주말리그를 뛰었다.  
   −
왼발잡이로서 2003년 주말리그에 참가, 30경기45골 12어시스트, 2004년 리그 30경기 28골을 기록하였다.
+
벨기에에서 열린 유소년 국제대회에서는 MVP를 차지하기도 하였다.  
2001년부터 2005년까지 약 100경기에 참가하여 100여골 기록하였고 벨기에에서 열린 유소년 국제대회에서는 MVP를 차지하기도 하였다.  
     −
로렌지역 주대표에 선발되어 룩셈부르그 국가대표팀과의 경기에 참여하였다. 키가 자라지 않아 아프리카 출신의 대형공격수에 주전 자리를 밀렸고 2007년 9월 프로팀 STADE DE REIMS 스타드드 랭스와 3년 계약하며 이적하였다.  
+
프랑스 로렌지역 주대표에 선발되어 룩셈부르그 국가대표팀과의 경기에 참가하였다.  
   −
STADE DE REIMS 구단의 U-16팀 NATIONAUX(나쇼노:프로팀산하 유소년팀들간 홈/어웨이리그경기.프랑스최고 유소년 주말리그)리그서 24경기 출전,
+
2007년 9월 프로팀 STADE DE REIMS 스타드드 랭스와 3년 계약하며 이적하였다.  
20공격포인트 (7골 + 13어시스트)를 올렸다. 둘째 해 U_18팀에서 21경기 출전, 16공격포인트(5골 + 11어시스트)를 기록하며 1년 만에 팀을 U_19 NATIONAUX 전국 엘리트 리그로 승격시켰다.  2009년 부터 CFA2 리저브팀에 합류하여 STADE DE REIMS U_19팀에서 프로계약을 눈 앞에 둔 최고 유망주
  −
중 한명이었다.  
     −
2010년 시즌 시작과 함께 계약 연장을 희망하는 REIMS구단의 요청에 유럽에서의 프로진출을 눈앞에 두는가 했으나 김석은 고국행을 택했다.  
+
U16 주말 리그에 참가, 24경기, 20공격포인트 (7골 + 13어시스트), 다음 해 U_18팀 21경기 출전, 16공격포인트(5골 + 11어시스트)를 기록.
 +
 
 +
2009년 CFA2 리저브팀에 합류하여 STADE DE REIMS U_19팀에서 프로계약을 눈 앞에 둔 최고 유망주였음.
 +
 
 +
2010년 시즌 시작과 함께 계약 연장을 희망하는 REIMS구단의 요청에 유럽에서의 프로진출을 눈앞에 두는가 했으나 고국행을 택했다.  
 
잦은 부상과 오랜 외국생활로 가족이 그리웠던 것이다.   
 
잦은 부상과 오랜 외국생활로 가족이 그리웠던 것이다.   
   −
김석은 그의 재능을 아끼는 LAQUE감독과 REIMS구단의 기대감을 뒤로 한 채 국내로 돌아왔다. 2010년 2월이었다. 누구도 이해 할 수 없는 결정이었다.
+
김석은 그의 재능을 아끼는 LAQUE감독과 REIMS구단의 기대감을 뒤로 한 채 국내로 돌아왔다. 2010년 2월이었다. 누구도 이해 할 수 없는  
하지만 그는 고국에서 프로로 실력을 인정받고 국가대표가 되어 유럽진출을 다시 도전해도 괜찮을 거라는 생각으로 왔다.  
+
의외의 결정이었지만 그는 고국에서 실력을 인정받고 국가대표가 되어 유럽진출을 다시 도전해도 좋을 거라는 생각으로 왔다.  
    
거친유럽에서 버텨온 자신감도 있었다.
 
거친유럽에서 버텨온 자신감도 있었다.

편집

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