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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소년 생활 ==
 
== 유소년 생활 ==
울산광역시 학성중학교, [[학성고등학교]]를 거쳐 [[연세대학교]]를 나온 선수이다. 학성고 시절부터 청소년대표와 올림픽대표 상비군에 뽑히며 두각을 나타내었으며, 연세대 시절인 2001년부터 [[거스 히딩크]]가 이끄는 국가대표 상비군에도 잇달아 발탁되며 유망주로 등극하였다. 특히 체력과 스피드 등에서 국가대표 상비군 내에서 1위를 더러 차지한바 있어 히딩크 감독의 호평을 듣기도 하였다.<ref>다만 국가대표 상비군에만 이름을 올리다 A매치 데뷔는 2003년에 가서야 치루었다.</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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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광역시 학성중학교, [[학성고등학교]]를 거쳐 [[연세대학교]]를 나온 선수이다. 학성고 시절부터 청소년대표와 올림픽대표 상비군에 뽑히며 두각을 나타내었으며, 연세대 시절인 2001년부터 [[거스 히딩크]]가 이끄는 국가대표 상비군에도 잇달아 발탁되며 유망주로 등극하였다. 특히 체력과 스피드 등에서 국가대표 상비군 내에서 1위를 더러 차지한바 있어 히딩크 감독의 호평을 듣기도 하였다.<ref>다만 국가대표 상비군에만 이름을 올리다 A매치 데뷔전은 2003년에 가서야 치렀다.</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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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외 생활 ==
 
== 해외 생활 ==
2010시즌 종료 후, [[FA]] 자격을 얻어 [[J리그]]의 [[베갈타 센다이]]로 이적하였다. 계약기간은 1년. 이후 일본 동부의 대지진 여파 속에서도 자신의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며 호평을 얻은 조병국은 1년 계약 종료 후, 이적을 모색했고 [[K리그]] 유수의 팀들과 [[CSL]] 팀들의 입단제의 경쟁 끝에 [[세르지오 파리아스]]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광저우 부리]]로 입단하는듯 했다. 그러나.. 조병국 선수의 일본 잔류 의지와 J리그 타팀들의 적극적인 구애끝에 [[주빌로 이와타]]로의 입단이 결정되었다. 이후 주빌로에서 2시즌간 활약하다, 소속팀이 J2로 강등되자 2014시즌을 앞두고 중국 슈퍼리그 팀인 상하이 선화로 이적하였다. 상하이에서는 28경기를 나서며 주전급으로 활약했으나, 팀 성적이 9위에 그치면서 팀을 떠나게되었고 2015시즌은 [[태국 프리미어리그]] 강호인 [[촌부리 FC]]에서 활동하였다. 하지만 매번 준우승 내지 3위를 밥먹듯하던 촌부리가 15시즌 4위에 그치며 부진하자, 여기서도 퇴단하여 2016시즌을 앞두고 K리그에 전격 복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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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시즌 종료 후, [[FA]] 자격을 얻어 [[J리그]]의 [[베갈타 센다이]]로 이적하였다. 계약기간은 1년. 이후 일본 동부의 대지진 여파 속에서도 자신의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며 호평을 얻은 조병국은 1년 계약 종료 후, 이적을 모색했고 [[K리그]] 유수의 팀들과 [[CSL]] 팀들의 입단제의 경쟁 끝에 [[세르지오 파리아스]]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광저우 부리]]로 입단하는듯 했다. 그러나.. 조병국 선수의 일본 잔류 의지와 J리그 타팀들의 적극적인 구애끝에 [[주빌로 이와타]]로의 입단이 결정되었다. 이후 주빌로에서 2시즌간 활약하다, 소속팀이 J2로 강등되자 2014시즌을 앞두고 중국 슈퍼리그 팀인 상하이 선화로 이적하였다. 상하이에서는 28경기를 나서며 주전급으로 활약했으나, 팀 성적이 9위에 그치면서 팀을 떠나게되었고 2015시즌은 [[태국 프리미어 리그]] 강호인 [[촌부리 FC]]에서 활동하였다. 하지만 매번 준우승 내지 3위를 밥먹듯하던 촌부리가 15시즌 4위에 그치며 부진하자, 여기서도 퇴단하여 2016시즌을 앞두고 K리그에 전격 복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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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대표 생활 ==
 
== 국가대표 생활 ==
 
히딩크 호에 곧잘 선발되며 상비군 생활을 이어가던 조병국 선수는, [[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에서 붙박이 주전으로 활약하였으며 2003년 3월 29일, [[콜롬비아 축구 국가대표]]를 상대로 A매치를 치렀으며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본선 대표로도 참가하는 등 꾸준히 커리어를 쌓아갔다. 하지만 2003년 4월 15일,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과의 친선전에서 자책골을 기록한데 이어, 동년 7월 23일에는 [[일본 U-23 대표팀]]과의 친선전에서도 자책골을 기록하여 2회 연속 자책골을 기록한 뒤로는 국가대표와 인연이 멀어졌다. 당시 조병국 선수는 소속팀인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서도 1골의 자책골을 기록해 2003년 국가대표 경력 포함해 '단일 시즌 최다 자책골 (3회)'이란 타이틀을 보유하게 되었다. (K리그 기록만 따지면 [[김진규]] 등이 기록한 1시즌 2골 자책골이 최다이다.)
 
히딩크 호에 곧잘 선발되며 상비군 생활을 이어가던 조병국 선수는, [[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에서 붙박이 주전으로 활약하였으며 2003년 3월 29일, [[콜롬비아 축구 국가대표]]를 상대로 A매치를 치렀으며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본선 대표로도 참가하는 등 꾸준히 커리어를 쌓아갔다. 하지만 2003년 4월 15일,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과의 친선전에서 자책골을 기록한데 이어, 동년 7월 23일에는 [[일본 U-23 대표팀]]과의 친선전에서도 자책골을 기록하여 2회 연속 자책골을 기록한 뒤로는 국가대표와 인연이 멀어졌다. 당시 조병국 선수는 소속팀인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서도 1골의 자책골을 기록해 2003년 국가대표 경력 포함해 '단일 시즌 최다 자책골 (3회)'이란 타이틀을 보유하게 되었다. (K리그 기록만 따지면 [[김진규]] 등이 기록한 1시즌 2골 자책골이 최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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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피소드 ==
 
== 에피소드 ==
 
인천시절부터 팀을 하나로 만드는 역할에도 충실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경남으로 온 이후로는 클럽하우스 근처 카페에서 선수들과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지는 등 경기 외적으로도 큰 도움이 되고있다. <del>계산도 본인이 자주 하는 듯 하다.</del>
 
인천시절부터 팀을 하나로 만드는 역할에도 충실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경남으로 온 이후로는 클럽하우스 근처 카페에서 선수들과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지는 등 경기 외적으로도 큰 도움이 되고있다. <del>계산도 본인이 자주 하는 듯 하다.</d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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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력 ==
 
== 경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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