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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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준(申基俊,1896~1965)은 대한민국의 체육인으로 1928년 조선축구심판협회의 회장을 지냈으며 광복후 1947년 대한체육회 부회장을 역임하였다. 호는 국권(國權).
연혁
- 1896년 서울에서 출생. 청년회관(靑年會館) 중학부 졸업후 중국 상해에서 고등학교 및 교통대학(交通大學) 졸업. 미국 오벌린(Oberlin) 대학 체육과 졸업
- 1916년 중국 대학선발 축구단원으로 필리핀 마닐라 원정
- 1922년 상해유학생 고국방문 축구단 단장으로 마산, 대구 등지를 순회
- 1928년 연희전문학교 체육주임(교수) 및 조선체육회 이사를 겸임.
- 1928년 5월 22일 조선축구심판협회 회장
- 1929년 봉천동북대학(奉天東北大學) 체육교수
- 1931년 상해교통대학 체육교수
- 1932년 제10회 로스앤젤레스올림픽대회에 중국대표단 부단장으로 참가
- 1945년 해방후 귀국
- 1947년 대한체육회 부회장을 역임
- 1948년 런던올림픽대회에는 한국대표단 부단장으로 참가
- 1949년 대한체육회 창립30주년을 맞아 우리나라의 체육발전과 대한체육회 발전에 기여한 공적으로 표창장을 받음
- 1951년 한국올림픽위원회(KOC) 위원으로 피선
- 1954년~1962년 아세아자연과학연구소 이사장을 역임
참고
- 네이트 한국학 인물정보 신기준(申基俊)
- 대한체육회50년사(대한체육회, 1970). 〈노희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