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조선축구선수권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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칫통 (토론 | 기여)님의 2011년 7월 14일 (목) 19:31 판 (→‎2회 (193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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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조선축구선수권대회
全朝鮮蹴球選手權大會
국가 일제강점기 조선
설립 연도 1935년
리그 폐지 1940년
최다 우승 보성전문 (3회 우승)

전조선축구선수권대회(全朝鮮蹴球選手權大會)는 1935년~1940년에 조선축구협회의 주최로 열렸던 축구대회이다. 주로 4~5월경 열려 10~11월에 열렸던 전조선축구대회와 함께 일제강점기 양대 축구대회였으나, 일본축구협회가 주최하는 전일본종합축구선수권대회(현, 덴노배)의 조선예선으로써 기능하였기 때문에 조선신궁대회와 마찬가지로 큰 의미를 두기 어렵다.

개요

1933년 조선축구협회가 창립된 이후에도 최고 권위의 전조선축구대회는 계속해서 조선체육회의 주최로 운영되었으며, 1934년부터 전조선종합경기대회의 일부로 편입된 상황이라 조선축구협회는 전만주축구단, 동경유학생, 영,불함대축구팀 등 과의 교류전 정도만 주최하는 형편으로 전조선의 축구계를 대표하는 위상을 가지지 못했다. 그러던 중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다시 축구가 부활함에 따라 당시 대일본축구협회(현 일본축구협회)가 올림픽 출전에 대한 강화책으로 올림픽 대표선발을 의미도 다소 포함된 제1회 전일본종합축구선수권대회(15회 덴노배)를 메이지신궁경기대회와 분리하여 개최하게 됨에 따라 그 조선예선으로써 전조선축구선수권대회가 개최되게 되었다.

[1]


1회 (1935년)

1935년 5월 14,15 양일간 경성운동장에서 조선축구협회 주최, 조선중앙일보 후원?으로 열렸다. 관람료는 성인 30전, 학생 20전. 평양에서 평양축구단, 고려축구단, 경성에서 서울축구단, 경성축구단 총 4팀이 출전 신청을 하였으나 고려축구단과 서울축구단이 기권하여, 평양축구단과 경성축구단의 결승전이 열렸다. 후반 20분 경축 채금석의 어시스트를 배종호가 골로 연결하여 1 대 0 으로 경성축구단이 우승했다.

2회 (1936년)

1936년 2회대회는 이전까지 봄에 열리던 오사카아사히신문 경성지국 주최 전조선축구대회를 합병하여 5월 7,8,9일 경성운동장에서 개최되었다. 참가자격으로 조선축구협회 가맹팀에 한했으므로 경기신청시 조선축구협회 가맹신청서 및 회비 10원을 함께 받았다.

대회 우승팀인 보성전문에게는 6월 6,7일 일본에서 개최되는 전일본축구선수권대회 출전자격이 주어졌다.

3회 (1937년)

4회 (1938년)

5회 (1939년)

같이 보기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