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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리그 기록 | | * K리그 기록 |
− | :{| border=1 cellpadding=4 cellspacing=2 style="background:#FFFFFF; text-align:center; font-size: 95%; border: 1px #aaaaaa solid; border-collapse: collapse; clear:center" | + | :{| border=1 cellpadding=4 cellspacing=2 style="background:#FFFFFF; text-align:center; font-size: 85%; border: 1px #aaaaaa solid; border-collapse: collapse; clear:center" |
| |- style="background:#C0C0C0" | | |- style="background:#C0C0C0" |
| !소속팀 !! 연도 !! 출장 !! 교체 !! 득점 !! 도움 !! 경고 !! 퇴장 !! 자책 | | !소속팀 !! 연도 !! 출장 !! 교체 !! 득점 !! 도움 !! 경고 !! 퇴장 !! 자책 |
| |- | | |- |
− | | rowspan=4|[[포항 스틸러스]] || 2011 ||28||16|| 10||3||2||0 ||0 | + | | rowspan=5|[[포항 스틸러스]] || 2011 ||28||16|| 10||3||2||0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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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 ||39||32|| 6||6 ||2 ||0 ||0 | | | 2012 ||39||32|| 6||6 ||2 ||0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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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 | 2014 ||27||19|| 5||1 ||2 ||0 ||0 | | | 2014 ||27||19|| 5||1 ||2 ||0 ||0 |
| + | |- |
| + | | 2015 || || || || || || || |
| |- | | |- |
| ! 통산 ([[K리그]])|| - ||128||90|| 29||15||11||0 ||0 | | ! 통산 ([[K리그]])|| - ||128||90|| 29||15||11||0 ||0 |
| |} | | |} |
− | :[[K리그]] 통산기록은 [[리그컵]]기록 포함. 2014년 12월 10일 시점 기준. | + | :[[K리그]] 통산기록은 [[리그컵]]기록 포함. 2015년 3월 1일 시점 기준. |
| + | :{{연맹선수기록|ID=201102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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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리그 == | | == K리그 == |
− | 2011시즌을 앞두고 포항에 사령탑으로 부임한 [[황선홍]]은 고무열 선수의 잠재성에 극찬을 아끼지 않으며 많은 기대를 걸었다. 선수 시절 자신의 등번호인 18번을 고무열에게 내준 것도 그 때문. 이런 황감독의 믿음에 보답하듯 개막전 프리시즌부터 득점 행진을 벌이던 고무열은 리그 초반 잠시 주춤하다 중반 이후부터 날아올라 데뷔 시즌에만 10골 3도움을 올리는 대활약을 펼쳐보였다. 예년 같았으면 바로 [[K리그 신인왕]]을 거머쥘 호성적이었지만, 2011년 신인왕은 미드필더임에도 8골을 쏟아넣은 [[이승기]] 선수에게 돌아가고 말았다. 상당히 성공적인 신인 시즌을 거친 후, 2012년에는 전형적인 [[서포모어 증후군]]을 겪으며 고생중이다. 현재 [[박성호]]와 함께 가루가 되도록 까이는중. 다행히(?) 고무열 선수는 포항 유스 시스템의 결과물이기 때문에 팬들도 애증으로 고선수의 부활을 바라고 있다. <del>다만 박성호 선수는..</del> 그래도 12시즌 6골 6도움을 기록하며 나쁘지 않은 스탯을 쌓았다. 13시즌에는 [[황선홍]] 감독이 추구하는 축구에 잘 녹아들며 다시금 대활약을 이어갔고, 동아시안컵을 위한 국가대표팀에 발탁되기도 했다. 결국 34경기 8골 5도움을 기록하며 신인상 대신 신설된 [[K리그 영플레이어상]]의 첫 수상자가 되었다. 하지만 14시즌에는 크고 작은 부상과 기복있는 플레이로 팀에 큰 보탬이 되지 못했다. | + | 2011시즌을 앞두고 포항에 사령탑으로 부임한 [[황선홍]]은 고무열 선수의 잠재성에 극찬을 아끼지 않으며 많은 기대를 걸었다. 선수 시절 자신의 등번호인 18번을 고무열에게 내준 것도 그 때문. 이런 황감독의 믿음에 보답하듯 개막전 프리시즌부터 득점 행진을 벌이던 고무열은 리그 초반 잠시 주춤하다 중반 이후부터 날아올라 데뷔 시즌에만 10골 3도움을 올리는 대활약을 펼쳐보였다. 예년 같았으면 바로 [[K리그 신인왕]]을 거머쥘 호성적이었지만, 2011년 신인왕은 미드필더임에도 8골을 쏟아넣은 [[이승기]] 선수에게 돌아가고 말았다. 상당히 성공적인 신인 시즌을 거친 후, 2012년에는 전형적인 [[2년차 징크스]]을 겪으며 현재 [[박성호]]와 함께 가루가 되도록 까였다... 다행히(?) 고무열 선수는 포항 유스 시스템의 결과물이기 때문에 팬들도 애증으로 고선수의 부활을 바라고 있다. <del>다만 박성호 선수는..</del> 그래도 12시즌 6골 6도움을 기록하며 나쁘지 않은 스탯을 쌓았다. 13시즌에는 [[황선홍]] 감독이 추구하는 축구에 잘 녹아들며 다시금 대활약을 이어갔고, 동아시안컵을 위한 국가대표팀에 발탁되기도 했다. 결국 34경기 8골 5도움을 기록하며 신인상 대신 신설된 [[K리그 영플레이어상]]의 첫 수상자가 되었다. 하지만 14시즌에는 크고 작은 부상과 기복있는 플레이로 팀에 큰 보탬이 되지 못했고 이는 2015년에도 계속되는 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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