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축구단

조선축구단(朝鮮蹴求團)은 1925년 4월 서울시 (당시 경성부)에 창단되었던 축구단이다.
1917년 세워졌던 불교청년회 축구단을 전신으로 한다.
역사
불교청년회 축구단의 탄생
19C 말에서 20C 초엽까지 한국축구를 비롯해 소위 근대 스포츠의 소개와 보급의 주역은 기독교 조직이 담당하고 있었고, 그 주축에는 YMCA (한국기독교청년회)가 있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불교 신도들은 상대적으로 위축감을 느꼈고, 이런 강한 경쟁의식(?)을 토대로 1917년 각황사 스님들이 불교청년회라는 단체 아래 축구단 창단을 허락하기에 이른다.[1] 이처럼 지원이 변변치 않았음에도, 불교청년회 축구단이 금세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것은 불교청년회 멤버 중 상당수가 휘문고보 출신이었기 때문. 당시 휘문고보는 축구명문이었던지라, 휘문고보 출신들이 축구팀을 만드는데 적극적으로 협조하자 재빠르게 팀이 구성될 수 있었다고 한다.
당시 송덕기, 이규순, 정범교, 이건표 등의 멤버를 갖춘 불교청년회는 제 2회 전조선축구대회 청년부 준우승, 제3회와 4회 대회 청년부 2회 연속 우승 등의 기록을 남기며 당대 국내 최강팀으로 활동하다, 1925년 재정적 어려움을 이유로 해산하게 되었다.
조선축구단
불교청년회 축구단의 해체 이후 오래지 않아, 사업가 백명곤 씨의 후원으로 조선축구단이 창단되었다. 사실상 불교청년회의 후신으로 멤버도 거의 동일했던 조선축구단은 1926년 동경 원정, 1929년 상해 원정 등을 감행하며 한국축구의 맥을 이어갔다. 이후 활동이 뜸하다가 1933년 경성축구단의 창단을 전후하여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같이 보기
- 조선축구협회대표팀 (비슷한 이름의 축구팀으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의 전신이다.)
참고
- ↑ 불교청년회 축구단 멤버였던 김충배 씨의 회고에 따르면, 불교청년회라는 종교 단체 내 축구 구락부로 출발한 것이 불교청년회 축구단의 시작이었다고 한다. 즉 취미 활동 클럽이었던 셈. 때문에 각자 호주머니를 털어 유니폼을 사입고, 연습 후 식대도 각출하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