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수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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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의 강수일

강수일(1987년 7월 15일~)는 대한민국 국적의 축구선수로, 2007년부터 K-리그에서 활동하고 있는 공격수이다.

프로필

  • 이름 : 강수일
  • K-리그 기록 :
소속팀 연도 출장 교체 득점 도움 경고 퇴장
인천 유나이티드 2007 2 2 0 1 0 0
인천 유나이티드 2008 5 4 0 0 0 0
인천 유나이티드 2009 26 17 5 1 5 0
인천 유나이티드 2010 0 0 0 0 0 0
통산 - 26 17 5 1 5 0
K-리그 통산기록은 리그컵기록 포함. 2010년 3월 1일 기준.

유소년 생활

아버지는 미국인 어머니는 한국인인 혼혈 축구 선수로 유명한 선수이다. 강수일의 어머니 강순남씨는 40살에 강선수를 낳아, 자신의 성을 붙여 강수일로 이름을 지었고, 강수일의 아버지는 강선수가 1살도 되기전 미국으로 떠나 사진조차 남아있지 않은 상태라고 한다.

혼혈에 대한 편견과 차별속에서 살아남기위해 악착같이 싸운 결과였겠지만. 초등학교 시절만 해도 걸핏하면 싸우는 문제아로 동두천에서도 유명했다고 한다. 그렇게 문제아로 끝날거 같았던 강수일을 축구의 길로 인도한건 4학년 담임 선생님으로 이후 축구부에 입단해 본격적으로 축구인의 길을 걷게된다. 동두천정산고 축구부에 진학할 당시만 해도 그다지 두각을 나타낼 정도의 선수는 아니었으나, 강수일 선수의 어머니가 허리 통증으로 그간 강선수의 뒷바라지하던 일감을 놓고 동두천정산고 축구부 허드렛일을 맡으며 근근히 생활하게되면서, 강선수는 축구에 모든 열정을 쏟아부었고 그 결과로 단번에 고교권에서도 주목받는 선수로 성장할 수 있었다.

강선수의 이야기는, NFL 한국계 혼혈 선수 하인즈 어워드 선수가 내한당시 강수일 선수와의 만남이 주선되면서 잠깐 화제가 되었고 이를 접한 상지대 측에서 강선수에게 입학을 제의하면서 강선수는 동두천정산고 졸업 후 상지대에 진학하게 된다. 그러나, 강선수는 하루 빨리 돈을 벌기를 원했고 결국 상지대 입학 6개월만에 자퇴하고 인천 유나이티드에 입단 테스트를 4개월동안 받은 뒤 프로 입단에 성공하게 되었다.

K-리그

2007년 드래프트에서 인천 유나이티드에 번외지명으로 입단하여 2007년 1군 경기에서 2경기 교체출장해 1도움, 2군리그에서는 11경기 출장 5골을 득점하며 단번에 인천의 유망주로 각광받기 시작했다. 2007 시즌 종료 후, 인천과 3년 재계약에 합의한 강선수는 다음 시즌인 2008년 2군리그 4골 5도움을 기록하고, 2군 리그 우승 결정전에서 결승골을 성공시키며 인천 2군을 2군리그 우승으로 이끌게 된다. 이때, 강선수는 동대회 MVP까지 수상하며 축구팬들에게 처음 그 이름을 각인시키게 된다.

마침 2006년 2군리그 MVP 출신인 이근호 선수가 2008 시즌 대활약 하면서, 2군리그에 대한 관심도가 여느때보다 높았던 시절이라, 2군리그 MVP 강수일 선수의 사연과 혼혈 선수에 대한 호기심은 상당히 높았고 관련 기사도 쏟아진 바 있다.

플레이 스타일

유연함과 체력, 볼터치 후 돌파 능력에 있어서는 K-리그에서 최상위권의 움직임을 보여준다. 다만 골결정력이 상대적으로 너무 떨어져, 2009 시즌 총 슈팅 횟수 52번 중 유효슈팅은 21회에 불과해 40%의 유효슈팅 성공율을 보였고, 그나마 21회 유효슈팅 중 골은 5골에 불과해 슈팅 당 득점 성공율은 10%를 간신히 넘기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결정적인 1:1 찬스를 허공으로 띄우거나 맥없는 슈팅으로 키퍼한테 내주는 등 아쉬운 모습을 많이 보였다. 그나마 2010 시즌에는 보다 날카로워진 모습이라는 평.

에피소드

경력

같이 보기

  • 김준 (과거 K-리그에서 뛴바 있는 또다른 혼혈 선수)

참고

트위터를 쓰고 있다. http://twitter.com/kangsooil

외부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