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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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아이파크의 선수이다.

프로필

이름 : 김근철

생년월일 : 83년 6월 24일생 (28세)

포지션 : MF

소속팀 변천사 : 풍생고 -> 주빌로 이와타 -> 쇼난 벨마레 -> 대구 -> 경남 -> 부산

국가대표 경력 : 2003년 U21 청소년대표

K리그 경력 : 81경기 출장 5골 6도움 , // J2리그는 78경기 출장 4골 9도움


설명

부산 아이파크에 새로이 이적해온 선수로 포지션은 중앙 미드필더.

1. 풍생고 시절

99년 풍생고에 입학당시부터 초고교급 유망주로 통했다. 1학년 때 추계연맹전에서 득점왕,
무학기전국고교축구대회 득점왕을 수상하며 고교축구계를 발칵 뒤집어놓더니,

2000년부터는 고교전국선수권, 고교왕중왕전 등 각종 대회 MVP를 독식했으며,
2001년에도 3개 대회 MVP를 석권하는 등, 또래들보다 한 차원 높은 축구를 구사했다는 평가다.

2. 일본 진출

2001년 5월, J리그 주빌로 이와타로의 이적이 확정되었다.

당시 한국 고교생이 J리그로 직행한 것은 전례가 없던일. 계약금도 같은 해 K리그 최대 계약금을 받았던
윤화평의 2억 5천만원을 가뿐히 넘길꺼라는 예측이 지배적이었다.

2002 시즌 개막전부터 주빌로 1군 로스터에 이름을 올렸으나, 주빌로는 당시 마에다 료이치료를 전략적으로
육성하는데 혈안이 되있었기에 김근철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결국 데뷔시즌 김근철은 1경기 교체출장에 그쳤다.

2003 시즌부터는 J2리그였던 쇼난 벨마레로 1년 기한부 임대 되어, 그 팀에서 핵심 주전으로 자리 잡았다.

(전담 프리킥커이자 팀 내 플레이메이커를 맡아 넓은 시야와 패서로서의 자질을 가감없이 뽐냈다고 함.)

03 시즌 종료후 김근철 선수 본인은 주빌로 로의 복귀를 희망했으나,
오히려 주빌로는 쇼난 벨마레로의 완전이적을 확정지으면서 김근철 선수를 외면했다.

김근철 선수는 쇼난 벨마레와의 계약 협상에서 '04시즌 J리그로의 승격이 불발되면 팀을 떠나겠다'
는 조건부 1년 계약에 합의했다.

04시즌 종료후, 승격에 실패한 쇼난 벨마레를 김근철 선수는 미련없이 떠나 K리그 복귀를 모색했다.

3. K리그 복귀

벨마레를 나올 당시 김근철 선수는 성남행이 유력하다는 보도가 연이어 나왔고 실제로 성남에서 입단테스트를 치뤘다.

그러나 예상외로 김근철 선수는 불합격 통지를 받았고, 성남 외 다른 축구팀들도 김근철 영입에 대해 부정적 평가를 내렸다.

J2리그의 프레싱에서는 창조적인 패스를 발휘할 공간이 많았지만, K리그에서는 공간 자체가 틀어막히는 경우가 많아,
찔러줄 공간이 없을때 김근철 선수는 백패스로 일관하는 실망스런 플레이를 보였기 떄문.

여기에 체력적으로도 후반 20분이 지나면서부터 급격히 움직임이 둔해지고
순간적인 돌파나 스피드면에서 평균 이하인 점 등 여러가지 문제점이 노출되었다고 한다.

똑같은 이유로 벨마레에서 활약하던 2003년에도 청소년대표에 잠깐 차출되었으나, 곧바로 탈락한 경험이 있었다.

유일하게 대구FC의 박종환 감독만이 김근철 선수의 재능을 인정했고, 결국 대구FC가 계약기간 1년으로 김근철 선수를 영입했다.

4. 대구 시절

박종환 감독의 김근철 선수에 대한 평가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인용하자면,


'근철이 같은 경우는 볼을 잘 차. 그런데 본인이 들으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순발력과 수비력이 부족해.
또 볼을 논스톱으로 처리할 때 해야하고, 1:1 할 때 해야하고, 2:1 패스를 통해 돌파할 때 해야하는 것이 축구인데,
그게 적응이 안 됐어.

혼자 축구를 하려는 경향이 많기 때문에 아직까지 우리 팀에 적응이 안 됐지.
그거 고치려면 힘들어. 본인도 힘들어 하고 있고. 그렇지만 내가 원하는 축구, 아니 한국축구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빨리 고쳐야 해. 감각은 분명히 있는 애거든.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미드필더로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항상 근철이한테 강조하고 있는데, 본인도 노력하고 있어.'


요컨대 플레이메이커 성향이 강했고 스스로 공간을 뚫어내기엔 몸싸움이나 스피드가 부족했던, 현대 축구의 흐름과 상반되는
능력의 불균형이 김근철 선수의 최대의 약점이었다는 것이다.

박종환 감독은 핵심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고 김근철 선수에게 공격형 미드필더에서 수비형 미드필더로의 전환을 요구한다.

그러나, 이런 포지션 전환은 한두달의 훈련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었고, 김근철 선수의 경우는 웨이트레이닝도 겸해야만 했다.

결국 1년이란 계약기간은 김근철의 재능을 꽃피우기에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재계약하기엔 활약도(7경기 1도움)에 비해 몸값이 너무 높게 책정되어있었기에 대구는 05시즌 종료와 함께 김근철 선수를 방출한다.

5. 경남 시절

2006년 K리그 신생팀이었던 경남FC에 김근철 선수도 창단 멤버로 참여했다.

박항서 감독 역시 김근철 선수의 약점을 보완하는데 주안점을 두었고, 박종환 감독과는 달리 스피드보다는 기술을 향상할 것을 주문했다.

드리블과 개인기 훈련이 김근철 성향에 맞았는지, 박항서의 조련 아래 김근철 선수의 기량도 한층 성장할 수 있었다.
기량 향상은 그대로 출장기록 증가와 개인 기록 향상으로 이어졌다.

특히 2007 시즌부터 본격적으로 경남의 핵심 중앙미드필더로 자리잡으면서, 김효일 선수와의 중원 장악 능력은 K리그에서
최고급으로 평가받았다.

중앙에서의 조직력 극대화는 팀 성적 향상으로 이어져, 경남 FC의 6강 PO행 등을 이끌었다.
조광래 감독이 부임한 이후에도 김근철 선수에 대한 신뢰는 변함이 없었다.

2009시즌 시작전 까지만 해도 김근철 선수는 당연히 경남 베스트 11일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예기치 않은 부상으로
시즌아웃이 되면서 김근철 선수의 입지는 빠르게 좁아져갔다.

중앙 미드필더의 빈자리를 이용래, 안상현 선수가 훌륭하게 메워주면서 김근철 선수의 전술적 가치는 격감했던 것.

설상가상으로 김근철 선수의 어깨 수술을 집도했던 의사가 군비리 파문으로 구속되면서, 김근철 선수도 관련 혐의자로
도마 위에 올랐고, 언제 군대에 끌려갈지 모르는 상황이 된 김근철 선수를 경남은 자유계약으로 해지했다.

그리고 부산은 김근철이 자유계약으로 풀리자 곧바로 영입을 타진, 입단시켰다.

6. 향후 전망

일단 군문제는 시즌 시작전까지 관련 혐의자가 고기구, 황지수, 손대호 정도로 한정되면서 김근철 선수는

빗껴간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언제 시한폭탄이 터질지는 알 수 없는 일이고. 마냥 불안해하면서 김근철 선수를 안쓰기에는

현재 부산의 미드필더진의 공백이 너무 급하다. 지난 시즌 부상 여파가 길어 아직 체력적으로 몸이 올라오지 않은 상태.

그러나 수원전때 잠깐 나온걸 보니 시야나 패스 기술적인 능력은 여전하다. 풀타임 체력만 갖추면 베스트 11으로 올라올 것이다.

울산전에서 보여줬던 만큼만 보여주면 될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