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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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영

박주영은 대한민국의 국적의 스트라이커로, 청소년 대표 시절, 한국 축구의 차세대 아이콘이었으며 자의든 타의든 논란의 중심에 서는 일이 잦은 인물이다.


프로필

2003 ~ 2005 대한민국 U-20 26경기 18골
2007 ~ 2010 대한민국 U-23 21경기 8골
2012 대한민국 U-23 연령제한외 선수
2005 ~ 현재 대한민국 (A매치 59경기 출장 25골)
  • K리그 기록
소속 연도 출장 교체 득점 도움 경고 퇴장 자책
GS 2005 30 5 18 4 2 0 0
GS 2006 30 16 8 1 0 0 0
GS 2007 14 7 5 0 0 0 0
GS 2008 17 7 2 4 2 0 0
전체 (K리그) - 91 35 33 9 4 0 0
K리그 기록은 리그컵 포함. 2012년 4월 1일 기준.

유소년 생활

청구고등학교 재학중이던 2001년 포항 스틸러스 의 후원을 받아 브라질의 지쿠 풋볼 센터로 유학을 다녀왔고, 2004년 고려대학교에 진학하였다. 대학 1학년 때 2004 AFC U-19 챔피언십 대표팀에 선발, 득점왕과 MVP를 독식하며 한국에 우승컵을 안겨주었고, 2005년 FIFA U-20 월드컵에 출전하기도 하였다.


K리그

그의 주가가 날이 갈 수록 치솟고, 포항은 그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2005시즌을 앞두고 결국 박주영은 검빨 유니폼을 입게 되었는데..........그가 입은 검빨 유니폼은 가로 검빨이 아닌 세로 검빨이었다. 브라질 유학 지원까지 해줬던 포항의 뒤통수를 제대로 치고 FC GS에 전격 입단 하게 되었는데, 박주영이 포항이 아닌 GS를 택하면서 박주영의 모교인 청구고 학생들은 포항의 지원을 더 이상 받지 못하게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반면, 박주영은 데뷔 시즌인데도 불구하고 경기마다 연이어 득점포를 가동, K리그 득점 2위에 등극하였으며 K리그 최초의 만장일치로 신인상을 차지하였다. 하지만 2006시즌부터 상대의 강한 대인 마크와 고질적인 부상으로 하락세를 보이더니 2008년에도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고 11경기에 2골만을 기록하였다. 하지만 기존 최전방 위치에서 왼쪽 미드필더로 포지션을 변경하면서, 이미 강점으로 평가받던 움직임이나 스피드, 패싱을 더 인정받는 계기가 되었으며, 2008시즌 전력 강화를 목적으로 하던 AS 모나코의 제의를 받아 한국을 떠나게 되었다.


유럽 생활

AS 모나코

2008/09시즌을 앞둔 여름 이적시장, 박주영은 모나코의 유니폼을 입게 된다. 프로에 데뷔한 2005년 이후 별다른 활약이 없었던 박주영은 너무 섣부른 유럽진출 아닌가 하는 우려를 낳았지만 이는 기우에 불과했다. 그는 로리앙을 상대로 한 데뷔 경기에서 1골 1도움을 기록하며 일약 모나코의 핵심 선수로 자리잡게 되었다. 그는 프랑스 데뷔 시즌인 2008/09시즌 31경기 출장하여 5골을 기록하면서 안정적인 출발을 하는 데 성공하였다. 2009/10시즌 역시 모나코의 핵심 공격수로 자리잡은 박주영은 박주영은 여전히 모나코의 핵심선수로 자리를 잡았고 시즌 중후반 니스와의 경기에서는 프랑스 데뷔 첫 멀티골을 기록 하는 등 꾸준한 경기력을 뽐내며 리그 27경기에 출장해 8골을 득점하며 프랑스 리그 1에 적응해가는 모습이었다. 2010/11시즌에는 리그 33경기에 나서 12골을 기록, 차범근설기현에 이어 대한민국 국적 선수 사상 세 번째로 유럽에서 두자리수 골을 기록한 선수가 되었지만, 그의 분투에도 불구하고 전 포지션에서 하향세를 그린 소속팀은 18위를 기록하여 프랑스 리그 2로 강등되었다.


이적 논란

AS모나코가 강등되면서 더 이상 모나코에 머무를 필요가 없어진 박주영은 이적을 모색했다. 당시 박주영을 둘러싸고 무수히 많은 루머가 쏟아졌는다.[2] 박주영 본인은 UEFA 챔피언스리그에 나가는 팀에 뛰고 싶어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적마감이 다가올수록 제의하는 팀은 없어 애를 태우던 도중, 리그 1에서 우승하여 챔피언스 리그 진출 티켓을 따낸 OSC 릴이 박주영에게 이적 제의를 하였고, 협상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어 메디컬 테스트까지 순조롭게 통과하여 박주영이 계약서에 서명만 하면 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박주영은 릴의 제의를 무시하고 런던으로 향했다. 거너스는 박주영의 메디컬 테스트를 완료한 뒤, 2011년 8월 30일 그의 영입을 공식 발표하였다. 등번호는 9번이고 세부적인 계약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릴의 단장인 미셸 세두는 도의를 지키지 않았다며 박주영을 비난하였고, 그의 이적에 대해 '하이재킹' 논란도 있었다.


아스날FC

많은 논란 속에서 박주영은 아스날에 입단하였고, 스완지 시티 FC와의 홈 경기에서 대기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이 날 박주영은 출전하지 못하였고 프리미어리그 데뷔는 다음으로 기약해야 했다. 절치부심하던 박주영은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에 입성한 지 한 달만에 슈즈버리 타운과의 칼링 컵 3라운드 경기에서 선발 출장하며 데뷔전을 치루었다. 그는 72분, 미야이치 료와 교체되기까지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했으며 본인도 경기내용에 만족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그 뒤, 계속해서 기회를 잡지 못하던 박주영은 한 달 여만에 볼튼 원더러스와의 칼링컵 4라운드에 출장, 데뷔골을 기록하 2-1 승리에 기여하였다. 그 후 챔피언스리그 올랭피크 마르세유와의 경기에서 깜짝 선발출전하여 자기 커리어 사상 처음으로 UEFA 챔피언스리그에 출전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챔스 데뷔전에서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한 박주영은 후반 16분, 핵심 스트라이커 로빈 판 페르시와 교체되며 그라운드를 떠났다.그 이후 경기에 나서는 그의 모습은 볼 수 없었고, 2012년 1월, 아프리카 네이션스 컵에 나설 마루앙 샤마흐의 차출 공백을 메우기 위해 영입되었다는 소문만 무성했다. 게다가 아스날이 전설 티에리 앙리를 임대로 영입하면서 박주영의 입지는 점점 좁아지게 되었다. 2012년 1월 23일,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에서 열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리그 경기에서 83분에 투입되며 마침내 프리미어 리그에 데뷔하였다. 하지만 박주영은 공도 제대로 만져보지도 못하고 팀의 패배를 바라봐야만 했다. 그 이후 챔피언스 리그 16강 2차전 AC 밀란과의 홈경기에서 교체로 출장할 때 까지 그에게 기회는 거의 찾아오지 않았으며, 주로 2군에서만 활약하고 아스날에서의 첫 시즌을 6경기 출전 1골로 마무리를 지었다.

셀타 비고

병역 논란

2012년 6월 13일 박주영 선수는 병역논란과 관련하여 기자회견을 열었다.[3]
2012년 런던 올림픽에 동메달 따내서 병역혜택을 받게되었다.

업적 및 수상

업적


수상


뒷 이야기

같이 보기

외부링크


참고

  1. 대한축구협회 프로필 상에는 Chu-Young으로 되어 있으나 외국에선 Ju-Young을 사용하고 있다
  2. 당시 리버풀 FC, 아스날 FC, 볼튼 FC,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등 여러 곳과 연결되었지만 정작 정식으로 제의를 한 곳은 없었다.
  3. 기자회견영상보기이 부분은 상당히 민감하여 기자회견 자료만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