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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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버스(慶南BUS)는 1966년 설립된 경상남도의 시외버스 업체로 현재의 경남고속이다.

1979년 경남버스 축구단이라는 초단명 축구팀을 운영하기도 했다.


경남버스[편집]

경남버스(慶南BUS)은 경상남도의 시외버스 업체로 현재 이름은 경남고속이다. 면허는 경상남도 양산시로 되어있으나 본사는 부산광역시 금정구 남산동 118-8번지에 소재하고 있다. 1966년 2월 1일에 면허를 부여받았으며. 2007년 말 '경남버스'에서 '경남고속(慶南高速)'으로 사명을 변경하였다.

한때 부산종합버스터미널에서 출발하는 버스의 90% 이상이 경남버스 차량이었으나, 수 년 전부터 수도권 방면을 위주로 한 중/장거리 노선 주력 방침을 세우고 우등 차량의 비율을 높이는 한편 많은 단거리 노선을 매각했거나 절차를 진행 중이다. 현재 단거리 노선은 진주 ~ 동래 등 일부 만을 운행하고 있다. 예전에 계열사로 신일여객, 세원여객, 속리산고속 등이 있었으나 신일여객은 폐업하였으며, 세원여객은 현재 독립하여 별개의 회사가 되었고, 속리산고속은 2008년 5월 금호아시아나그룹에 매각하였다.


경남버스 축구단[편집]

경남버스 축구단 은 1976년 7월22일 부산 공설운동장 실내체육관에서 아마추어 팀으로 창단했다. 아마추어 축구팀임에도 불구하고 당시 월간축구에서 창단 기사도 내줄 정도로 관심을 많이받던 팀이었다. 왜냐하면 차후 실업 축구팀으로 전환을 목표했었기 때문. 그로부터 3년여 뒤인 1979년 3월에 드디어 실업 축구팀으로 전환했으나, 동년 8월에 해체하면서 약 6개월간 존재했던 초단명 실업 축구단으로 역사에 남고 말았다.


아마추어 축구팀 창단[편집]

경남버스 축구단(아마추어)의 창단 임원 및 선수명단은 다음과 같다.


단장 신달수(경남버스(주) 사장) 감독 신시욱(경남버스(주) 서무과장) 주무 오성훈(부산시 축구협회 총무이사) 코치 김철호(부산시 축구협회 이사)
선수 김병호 선수 홍상희 선수 전학수 선수 박장부
선수 김만기 선수 이봉진 선수 김근호 선수 오소시
선수 전승구 선수 김광석 선수 신동은 선수 오상문
선수 건광우 선수 강희도 선수 예천수 선수 윤진상
선수 이병동 선수 박영민 선수 정홍근 선수 이상철
선수 박한명 선수 장경재 선수 공판식


실업팀 전환[편집]

경남버스 축구단은 1979년 대통령배 전국축구대회 참가를 목표로 실업 축구팀으로 전환을 선언, 박병철, 정호선, 김홍주등 우수한 기량의 선수를 스카우트 하고 "해군" 축구팀 감독을 지냈던 유인갑 감독과 청소년 대표 코치 출신의 장원목 코치로 새롭게 스탭진을 구성하면서 야심찬 새출발을 알렸다. 1979년 3월, 대한축구협회에 정식으로 등록하면서 부산/경남 지역 실업축구팀으로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실업팀 전환과 동시에 전국대통령배 축구대회 참가를 선언했고, 대통령배 전국축구대회에 예선을 통과하며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해체[편집]

그러나 출범 4개월여만인 1979년 7월 31일, 경남버스 신달수 회장은 경남버스 축구단 해체를 발표한다. 2차 오일쇼크로 인한 경영난을 해체 이유로 들었지만 기존 구단의 견제와 스카우트 경쟁에서 밀리면서 조영증을 비롯해서 우수 선수들을 확보하는데 실패하자 기존 구단의 텃새에 이골이 난 지방 실업구단들이 발을 뺀것이 아니냐는 시선도 존재했다. 당시 같은 지역의 금호산업 축구단(구, 극동철강 축구단)(부산)이 해체를 결정한 터여서, 경남버스 마저 축구단을 해체하자 지방 실업축구는 크게 위축되고 만다.[1]

결국 8월 9일 경남버스 측이 축구단 해체를 강행하면서 6개월만에 일수로 치면 거의 5개월도 안되는 짧은 기간 만에 경남버스 축구단은 역사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이 때문에 구 경남버스 선수단은 순식간에 실업자가 되버렸으며, 당시 다른 실업 축구팀들도 경기가 극히 좋지 않았던 시절이라 이들은 그 길로 축구 선수 생활을 은퇴해야만 했다. 심지어 국가대표 수비수였던 박병철 선수도 이 때 하마터면 은퇴할 뻔했으나, 우여곡절 끝에 홍콩 세미프로 축구팀과 계약이 맺어지면서 홍콩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가다 1984년 슈퍼리그에 복귀하게 된다.


참고[편집]

  1. 당시 부산/경남 지역에는 금호산업, 경남버스 외에도 동양기계 축구단(마산)이 있었지만, 금호산업과 경남버스에는 전력이 크게 뒤쳐져 있었다. 여기에 동양기계 축구단도 경남버스 축구단 해체 사건 뒤 얼마 안가 해체되고 말면서, 1년도 안되는 시간동안 부산/경남권 실업축구단이 전부 사라지는 최악의 상황에 놓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