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증
조영증 (1954년 8월 18일)은 대한민국 국적의 축구 선수 출신이자 축구인이다.
목차
프로필[편집]
선수 프로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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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자 프로필[편집]
연도 | 팀 | 경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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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 ~ 1990 | 럭키금성 황소 | 선수 겸 트레이너 → 코치 |
1991 ~ 1993 | 현대 호랑이 | 코치 |
1994 ~ 1996 | LG 치타스 → 안양 LG 치타스 | 감독 |
1998 ~ 2000 | 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 | 감독 |
현재 | 대한축구협회 | 기술위원회 위원 |
선수 시절[편집]
유소년 시절[편집]
실업 축구 시절[편집]
미국 진출 성공[편집]
1981년 3월, 계약기간 2년에 이적료 4만 달러, 연봉 4만 달러의 조건으로 미국 포틀랜드 팀버즈에 입단하는데 성공하였다. 이후 소속팀과 대표팀을 오가는 강행군 속에서도 꾸준한 활약을 보여주어 호평을 받았으며, 82년 포틀랜드 팀버즈가 해체되자 연봉 8만 달러의 조건으로 시카고 스팅으로 이적해 여기서도 1년간 활약하였다. 총 3년 동안 NASL에서 활동하며 82년과 83년 두차례나 NASL All-Stars 멤버에 발탁되기도 하였으며, 총 77경기 출장 4골을 기록하는 등 성공적인 기록을 이어가다[3] 1982년 12월 럭키금성 황소에 입단하며 한국으로 복귀하였다.
국내 복귀 이후[편집]
당시 5번째로 프로 축구팀 창단을 진행하고 있었던 럭키금성 황소는 조선수의 영입을 위해 노력을 기울였고, 그 결과 이적료 2만 5천달러, 계약금 7천만원, 월봉 180만원의 조건으로 조선수를 영입하는데 성공하였다. 당시 럭키금성 황소가 창단 자금으로 들인 돈이 7억원이었는데, 그 중 20% 가까운 비율이 조선수 영입을 위해 지불된 셈.
은퇴[편집]
지도자 시절[편집]
코치 활동[편집]
감독 활동[편집]
청소년대표팀 감독 활동[편집]
행정가 활동[편집]
스타일[편집]
플레이 스타일[편집]
지도자 스티일[편집]
에피소드[편집]
- 80년대 제일은행 축구단에서 활약하였으며, 1990년대부터 파주중학교ㆍ파주공업고등학교 축구부 코치로 활동하다 2012년 K3 챌린저스리그 팀인 파주 시민축구단 창단 감독에 부임하였던 조덕증 씨가 조영증 씨의 친동생이다.
경력[편집]
- 1977 ~ 1980 : 제일은행 축구단 / 실업
- 1978 ~ 1979 : 해군 / 실업 (병역 의무 수행)
- 1983 : 시카고 스팅 / NASL
- 1984 ~ 1987 : 럭키금성 황소 / 수퍼리그
같이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