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동클럽축구선수권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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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동클럽축구선수권대회(Far East Club Championship)은 극동아시아 클럽 축구의 발전을 위해 개최된 국제 클럽 축구 대회이다. 1998년 중국 상하이에서 제 1회가 개최된 이후 재정적인 문제로 중단되고 말았다.


창설[편집]

극동클럽축구선수권대회1996년 6월 1일 한국일본2002년 월드컵 공동 개최가 결정되자 대한축구협회 정몽준 회장이 제안했던 극동리그 창설안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1] 대한축구협회는 월드컵을 공동 개최하는 한국일본은 물론 중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등 극동아시아 국가들이 함께 1992년 개편한 UEFA 챔피언스 리그를 모델로 각국의 클럽최강팀들이 참가하여, 리그전을 치른 뒤 토너먼트로 챔피언을 가리는 방식의 클럽대항전을 창설, 상설 운영하므로써, 극동지역의 축구 붐과 발전을 도모하고자 했는데 이러한 제안이 구체화된 것이 극동클럽축구선수권대회이다.

처음에는 한국, 중국, 일본, 러시아, 대만, 홍콩,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등 7개국을 대상으로 추진됐으나, 중국측의 반대로 대만이 배제되었으며, PRK는 미온적인 태도[2]를 보여, 결국 5개국이 참여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극동리그 참가 5개국 축구협회 실무자회의는 1996년말부터 1997년 중반까지 총 4차례에 걸쳐 이루어졌다. 당초에는 UEFA 챔피언스 리그처럼 각국 프로리그 상위 4~5개 팀이 참가, 연중 홈 앤드 어웨이로 경기를 치르려 하였으나, 챔스 방식의 대회는 스폰서를 구하는데 어려움이 있을 것이 예상되어 3차회의에서 각국 리그 우승팀간의 리그전을 치루기로 결정했으며, 대회가 2008년초 겨울에 열리는 것을 감안헤 중국 남부지방이나 홍콩에서 개최하는 방향이 결정되었다.[3] 4차회의에서는 2008년 2월 중국 상하이에서 개최하기로 결정되었으며, 2개조로 나눠 조별 1위팀간의 결승전과 조별 2위팀간의 3,4위 결정전을 치루기로 최종 결정하였다.


제1회 극동클럽축구선수권대회[편집]


대회결과[편집]

조별 순위표상의 색상 설명
각조 1위로 결승전에 진출한 팀
각조 2위로 3위 결정전에 진출한 팀

A조[편집]

팀명(국명)
1. 다롄 완다 (중국) 6 2 2 0 0 5 2
2. 주빌로 이와타 (일본) 3 2 1 0 1 4 4
3. 사우스 차이나 AA (홍콩) 0 2 0 0 2 4 7
사우스 차이나 AA 2–4 주빌로 이와타
다롄 완다 3–2 사우스 차이나 AA
다롄 완다 2–0 주빌로 이와타

B조[편집]

팀명(국명)
1. 로토르 볼고그라드 (러) 3 2 1 0 1 4 4
2. 상하이 선화 (중국) 3 2 1 0 1 4 4
3. 부산 대우 로얄즈 (한국) 3 2 1 0 1 1 1
FC 로토르 볼고그라드 0–1 부산 대우 로얄즈[5]
FC 로토르 볼고그라드 4–3 상하이 선화
상하이 선화 1–0 부산 대우 로얄즈

※1,2위간 승점,득실 동일하나 서로간의 대결에서 이긴 볼고그라드가 조1위

3위 결정전[편집]

주빌로 이와타 2–0 상하이 선화

결승전[편집]

FC 로토르 볼고그라드 3–2 다롄 완다

대회평가[편집]

http://media.daum.net/breakingnews/view.html?cateid=100000&newsid=19980222095000230&p=yonhap


제 2회 극동클럽축구선수권대회[편집]

  • 개최지 : 일본 요코하마
  • 개최일 : 1999년 2월 (예정)

작성중....

IMF 사태 등 아시아지역의 경기침체로 인한 대회 스폰서 구득란으로 대회 무산, http://media.daum.net/breakingnews/view.html?cateid=100000&newsid=19990108101400761&p=yonhap


같이 보기[편집]


참고[편집]

  1. 정몽준 축구협회장, 극동리그 창설 제안 -연합뉴스, 1996년 6월 1일-
  2. 대한축구협회가 리그구상을 주도적으로 이끌어왔음에도 불구하고 PRK의 참여를 위해 워원장자리를 중국에 양보하고, 조선축구협회 회장인 최용해를 초청하기 위해 통일부(당시 통일원)에 북한주민접촉신청을 신청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나 PRK는 끝까지 참가여부를 밝히지 않았으며, 예비모임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2002년 한일 월드컵조차 참여하지 않았으니 당연한 결과..
  3. 축구,극동클럽챔피언십, 내년 초 초대대회 개최 -연합뉴스, 1997년 3월 4일-
  4. 러시아 프리미어 리그 우승팀인
  5. 후반 24분 김주성 오른발 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