뽀뽀
뽀뽀 (본명: Adilson Ferreira de Souza, Popó)는 2005년부터 2007년까지 K리그에서 활동한 공격수다. 특이한 이름 때문에 많이 알려져있는 외국인 선수들 중 한명이다. Transfermark.com에도 이렇게 이름이 등록되어 있는걸로 보아 본래 선수생활 하면서 쓰는 이름이다.
프로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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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시절[편집]
2001-2002 시즌 Bandeirante에서 프로로써 첫 발을 내딛은 뽀뽀는 2002-2003 시즌 Araçatuba를 거쳐 2003-2004 시즌 ADAP에서 선수생활을 했다. 원래 2003/2004 시즌 종료 후 유럽진출을 모색하려 했으나 부상때문에 좌절된바 있었던 선수.
부산 시절[편집]
2005년 당시 부산의 감독이었던 이안 포터필드는 대대적인 리빌딩을 시작했고, 루시아노와 뽀뽀를 영입한데 이어 박성배까지 영입하면서 리빌딩을 마무리했다. 뽀뽀는 포터필드 감독의 기대에 부응하였고 팀 동료인 루시아노와 함께 공격 포인트를 쓸어 담았다. 뽀뽀는 05시즌 4골 6어시스트를 기록하였고, 탁월한 볼간수와 개인기를 자랑하며 단조롭던 부산의 공격 스타일에 새바람을 불어넣어 주었다. 이 둘의 활약으로 부산은 2005년 전기리그 우승을 차지했고,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4강에도 오르며, 부산 축구의 부활을 알렸다.[1] 한때 부산은 시즌 종료 후 뽀뽀를 방출하기로 결정하고 계약해지 했지만, 대체용병이 마땅치 않자 다시 영입했다.
그리고 전설은 시작. 이번에는 소말리아와 짝을 이루게된 뽀뽀는 감독이 바뀌는 부침을 겪던 와중에도 골폭풍을 몰아쳤다. 뽀뽀는 컵대회를 포함 36경기에 나와 20골 5도움을 기록하면서 통합 득점왕을 거머쥐었지만, 리그 득점왕은 성남의 우성용에게 밀리며 아쉽게 기회를 놓쳤다 [2] 하지만, 시즌 중 부임한 엔디 애글리 감독은 자기 스타일에 맞지 않는다라고 하며 뽀뽀를 내보냈고, 부산은 땅을 치며 후회했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경남 시절[편집]
방출 위기에 몰린 뽀뽀에게 손을 내민 팀은 경남 FC였다. 당시 경남은 까보레의 파트너가 필요했고, 방출될 위기에 처한 뽀뽀를 낙점하며 경남 FC의 공격진 구성을 마치게 되었다. 2007년 뽀뽀는 새로운 파트너인 까보레와 함께 경남 돌풍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뽀뽀의 정확한 패스는 까보레에게 정확히 연결되었고, 까보레는 한치의 오차없는 슈팅으로 상대의 방어막을 뚫어냈다. 2007 시즌 뽀뽀는 25경기에 나와 8골 10도움을 기록하며 득점과 패싱력을 겸비한 최고의 공격수로 꼽혔고, 까보레는 31경기에 나와 18골 8도움을 기록하면서 최고의 활약을 펼쳤다. 이 둘의 활약으로 경남은 창단 2년만에 6강 플레이오프에 오르는 영광을 누렸다. 하지만, 시즌 후 박항서 감독이 전남 사령탑으로 부임하면서 뽀뽀는 흔들렸고, 가시와 레이솔은 임대료로 무려 140만 달러[3]을 제의했다. 재정이 순탄하지 못한 경남의 특성상 가시와의 제안은 거절하지 못할 엄청난 제안이었고, 뽀뽀는 가시와로 2년간 임대이적했다.
일본 시절[편집]
뽀뽀는 2008년 39경기 8골을 기록한데 이어 2009년 31경기 6골을 기록하면서 성공적인 일본 생활을 보냈다. 2010시즌 뽀뽀는 비셀고베로 이적하였고 36경기 12골을 기록하면서 일본에서도 성공 가도를 이어나가고 있다.[4] 2011년에도 비셀고베에서 활동하던 뽀뽀는 2012시즌부터 J리그의 우라와 레즈 다이아몬드로 이적하여 활동하였으며, 13시즌부터는 다시 비셀 고베에서 활동 중이다. 어느덧 35세에 달하는 나이가 되었지만 J2리그 득점 3위에 랭크되는등 여전한 골감각을 자랑 중이다.
플레이스타일[편집]
플레이스타일 자체만 놓고보면 브라질 특유의 개인플레이 성향이 강한편이었다. 그러나 개인 플레이의 파괴력이 워낙 좋았고, 뽀뽀의 패스를 받아줄 파트너만 한명 있으면 무서울게 없는 선수였다. 뽀보가 부산에 있던 시절, 이안 포터필드는 박성배, 루시아노, 뽀뽀 3각 편대 외에는 전원 수비 전술로 전기리그 우승을 이끌어냈고, 경남의 박항서 감독도 까보레, 뽀뽀 위주의 공격전술을 구상하여 6강 플레이오프에 오른바 있다. 이와같은 뽀뽀의 개인주의적 플레이를 못마땅히 여긴 사기꾼 엔디 에글리는 뽀뽀를 과감히 부산에서 방출시켰지만, 이는 부산팬들에게 지금까지도 가루가 되도록 까이는 멍청한 짓중 하나로 기억되고 있다. 2006년 광양축구전용구장에서 열린 전남 드래곤즈와의 경기에서, 프리킥 골을 기록한 뒤 그 골이 무효로 처리되자, 반대 방향으로 다시 차서 집어넣는 묘기를 보일 정도로 정확한 프리킥 실력을 자랑한다.
에피소드[편집]
- 뽀뽀 라는 이름은 별명에서 따온 것이다. [5] 원래 읽으면 포포 (POPO)가 맞지만 자신은 뽀뽀란 이름이 좋다라고 하면서 뽀뽀로 등록되었다.
- 뽀뽀는 프리킥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했는데, 대표적인 예로 2006년 9월 23일 전남 드래곤즈와의 원정경기에서 아크 정면에서 오른쪽으로 프리킥을 넣었지만, 벽이 먼저 움직이면서 무효 처리가 되었고, 뽀뽀는 왼쪽 포스트 쪽으로 다시 차 넣는 진기한 장면을 만들어내었다. [6]
- 2006년 올스타전 후반에 교체 투입된 뽀뽀는 드리블을 하다가 갑자기 앉더니 신발을 벗어 전화를 하는 재미있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 2006년 부산은 기술의 뽀뽀, 힘과 타점의 소말리아, 스피드의 이승현으로 이루어지는 삼각편대를 갖추며 리그 최강의 공격력을 자랑하였다. 수원을 그들의 홈에서 4:1로 발라버렸을 정도니.. 하지만 이 같은 꿈의 공격진은 불과 1년만에 해체되었다.
에글리 이 나쁜 ㄱXX야 ;ㅁ;!!
같이 보기[편집]
참조[편집]
- ↑ 하지만 05시즌 후반기 부산은 너무 방심했던 탓인지 최하위를 기록했고, 이어 벌어진 플레이오프에서 인천 유나이티드에 발목이 잡혀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했다. 게다가 아챔에서는 아시아의 학살자 알 이티하드에게 홈에서 0대5 대패를 당하며 탈락하고 말았다.
- ↑ 당시 우성용은 챔피언 결정전에서 1골을 기록, 뽀뽀를 따돌리고 득점왕에 올랐다.
- ↑ 현재 환율로 15억 원 가량
- ↑ 2010시즌 종료 후, K리그 복귀 협상도 있었다고. 아쉽게도 무산되었었다고 한다.
- ↑ 브라질의 카카, 호나우지뉴와 같은 개념으로 보면 된다
- ↑ 링크는 여기 http://blog.daum.net/dmhjblog/23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