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8년 12월 김포공항 입국장에서 환한 미소를 드러낸 서정원에게는 수원의 파란색 용비늘 저지가 입혀져있었다. 어찌된 영문일까? 사정은 이랬다. 1998년 우승을 차지한 수원은 고종수 데니스와 짝을 이뤄줄 테크니션을 찾고 있었고, 국내복귀를 모색하던 서정원을 타깃으로 삼았다. 수원은 서정원에게 당시로서는 최고액인 이적료 50만달러(한화 약 6억원), 연봉 2억원을 제시하였고, 결국 서정원은 수원과 입단계약을 체결하게 되었다, 완벽하게 안양을 배신한 것이었다. <ref> 이에 안양 LG측은 7억원의 이적료 반환소송을 제기했고, 결국 서정원은 소송에서 패소하며 3억원을 내줘야만 했다.</ref> 서정원의 수원 입단이 결정되자. 수많은 안양팬들은 분노하였고, 1999년 [[슈퍼컵]]에서 서정원의 유니폼을 불태우며 화끈한 국내복귀 환영회를 열어주었다. 서정원은 이에 감사하다는 듯 후반만을 뛰고도 안양의 수비진을 휘저으며 수원의 5:1 대승을 이끌었다. [[지지대 더비]]의 서막이 열리는 순간이자. 서정원의 제2 전성기의 서막이 열리는 순간이었다. | | 1998년 12월 김포공항 입국장에서 환한 미소를 드러낸 서정원에게는 수원의 파란색 용비늘 저지가 입혀져있었다. 어찌된 영문일까? 사정은 이랬다. 1998년 우승을 차지한 수원은 고종수 데니스와 짝을 이뤄줄 테크니션을 찾고 있었고, 국내복귀를 모색하던 서정원을 타깃으로 삼았다. 수원은 서정원에게 당시로서는 최고액인 이적료 50만달러(한화 약 6억원), 연봉 2억원을 제시하였고, 결국 서정원은 수원과 입단계약을 체결하게 되었다, 완벽하게 안양을 배신한 것이었다. <ref> 이에 안양 LG측은 7억원의 이적료 반환소송을 제기했고, 결국 서정원은 소송에서 패소하며 3억원을 내줘야만 했다.</ref> 서정원의 수원 입단이 결정되자. 수많은 안양팬들은 분노하였고, 1999년 [[슈퍼컵]]에서 서정원의 유니폼을 불태우며 화끈한 국내복귀 환영회를 열어주었다. 서정원은 이에 감사하다는 듯 후반만을 뛰고도 안양의 수비진을 휘저으며 수원의 5:1 대승을 이끌었다. [[지지대 더비]]의 서막이 열리는 순간이자. 서정원의 제2 전성기의 서막이 열리는 순간이었다. |
− | 국가대표 차출이 더 이상 서정원을 향하지 않게 되자. 서정원은 수원에서 안정적인 기량을 선보일 수 있게 되었고, [[샤샤2|샤샤]]와 [[비탈리]], [[박건하]]도 서정원의 공격을 마무리 해주며, 수원은 1999 시즌 언터쳐블 팀으로 불리며 독주했다. 27경기 11골 5도움을 기록하며 팀의 전관왕을 이끈 서정원은 2000년에는 리그에선 다소 부진하였지만, 컵대회에서 3골을 몰아치며 컵대회 우승을 이끌었으며, 2001년에는 33경기에 나와 11골 2도움을 기록함과 동시에 아시아클럽컵과 아시아클럽챔피언쉽에서 결정적인 승부처마다 골을 집어넣으며 수원의 아시아 재패를 이끌었다. 2002년에도 서정원은 꾸준한 기량을 보여주며 32경기 9골을 기록하였으며, 2003년에는 자신의 시즌 최다 출장인 43경기에 출전하여 10골 5도움을 기록하며, 여전함을 보여주었다. 2003년이 끝나고 [[김호]] 감독이 물러나고, [[차범근]] 감독이 부임하면서 서정원의 입지는 다소 좁아졌고, 플레잉코치의 자격을 달고 2004 시즌을 시작했지만, 25경기에 나와 수원의 K리그 우승을 이끌었다. 우승직후 서정원은 오스트리아 진출을 선언하면서 오스트리아로 떠났다. | + | 국가대표 차출이 더 이상 서정원을 향하지 않게 되자. 서정원은 수원에서 안정적인 기량을 선보일 수 있게 되었고, [[샤샤2|샤샤]]와 [[비탈리]], [[박건하]]도 서정원의 공격을 마무리 해주며, 수원은 1999 시즌 언터쳐블 팀으로 불리며 독주했다. 27경기 11골 5도움을 기록하며 팀의 전관왕을 이끈 서정원이 [[K리그 베스트 11]] 선정된건 당연지사. 2000년에는 리그에선 다소 부진하였지만, 컵대회에서 3골을 몰아치며 컵대회 우승을 이끌었으며, 2001년에는 33경기에 나와 11골 2도움을 기록하며, 2001년 K리그 베스트11에 뽑힘과 동시에 아시아클럽컵과 아시아클럽챔피언쉽에서 결정적인 승부처마다 골을 집어넣으며 수원의 아시아 재패를 이끌었다. 2002년에도 서정원은 꾸준한 기량을 보여주며 32경기 9골을 기록하였으며, 2003년에는 자신의 시즌 최다 출장인 43경기에 출전하여 10골 5도움을 기록하며, 시즌 베스트11에 뽑히는 기쁨을 누렸다. 2003년이 끝나고 [[김호]] 감독이 물러나고, [[차범근]] 감독이 부임하면서 서정원의 입지는 다소 좁아졌고, 플레잉코치의 자격을 달고 2004 시즌을 시작했지만, 25경기에 나와 수원의 K리그 우승을 이끌었다. 우승직후 서정원은 오스트리아 진출을 선언하면서 오스트리아로 떠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