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뀜

770 바이트 추가됨 ,  2017년 8월 23일 (수) 01:14
35번째 줄: 35번째 줄:       −
== 제우 엑스터 축구단 ==
+
== 전북 엑스터 축구단 ==
 
[[File:완산 푸마3.JPG|250픽셀|섬네일|오른쪽|제우엑스터 프로축구단 조인식 장면]]
 
[[File:완산 푸마3.JPG|250픽셀|섬네일|오른쪽|제우엑스터 프로축구단 조인식 장면]]
 
완산 푸마 축구단 자체는 와해되었으나, 선수들 중 타팀으로 이적할 수 있었던 몇몇 선수를 제외하고 이도저도 할 수 없었던 십수명의 선수와 [[최상철]] 감독 대행을 비롯한 코칭스탭은 훈련을 계속하며 93년 [[제41회 대통령배 전국축구대회]]를 참가하는 등, 살아남기 위한 행보를 계속했다. 이를 두고볼 수만은 없었던 [[대한축구협회]] 측도 호남권 향토기업과 당시 K리그와 컵대회 스폰등을 맡고있었던 기업들에게 완산 선수단 인수를 권유했으나, 일이 잘 풀릴리 만무했고 시간만 흘러갔다.
 
완산 푸마 축구단 자체는 와해되었으나, 선수들 중 타팀으로 이적할 수 있었던 몇몇 선수를 제외하고 이도저도 할 수 없었던 십수명의 선수와 [[최상철]] 감독 대행을 비롯한 코칭스탭은 훈련을 계속하며 93년 [[제41회 대통령배 전국축구대회]]를 참가하는 등, 살아남기 위한 행보를 계속했다. 이를 두고볼 수만은 없었던 [[대한축구협회]] 측도 호남권 향토기업과 당시 K리그와 컵대회 스폰등을 맡고있었던 기업들에게 완산 선수단 인수를 권유했으나, 일이 잘 풀릴리 만무했고 시간만 흘러갔다.
   −
겨우겨우 1993년 8월, 컴퓨터 조립업체였던 제우정보에서 선수단을 인수하고 가칭 '''제우 엑스터 프로 축구단''' 창단을 발표하였고 94시즌 참가를 선언하면서 사태는 일단락 되는듯 싶었다. 하지만 제우정보가 경영 위기를 맞았고 제우정보 측이 스폰 금액을 부풀렸다는 내부 폭로가 일어나면서 제우 측은 결국 축구팀 스폰을 포기하였고<ref>첨언으로 불과 1년여 뒤인 1995년 4월, 제우정보는 부도처리되고 만다.</ref>, 결국 전북일보와 보배소주 등이 컨소시엄을 구성한 '''[[전북 버팔로]] 축구단'''이 창단되면서 '''완산 푸마 사태'''는 일단락 되었다.
+
겨우겨우 1993년 11월, 컴퓨터 조립업체였던 제우정보에서 선수단을 인수하고 가칭 '''제우 엑스터 프로 축구단'''<ref>이후 전북 엑스터로 변경한다. </ref> 창단을 발표하였고 94시즌 참가를 선언하면서 사태는 일단락 되는듯 싶었다. 하지만 제우정보가 경영 위기를 맞았고 제우정보 측이 스폰 금액을 부풀렸다는 내부 폭로<ref>1993년 3월15일 정일진 단장은 기자회견에서 새 구단주 문수기 (주)보배 대표이사와 배성수 (주) 제우정보 대표이사가 만난자리에서 년간 12억원(3년간 36억원)의 계약은 허위이고 실제로는 년간 3억원이라는 이면계약 사실을 폭로한다. </ref>,가 일어나면서 전북구단 측은 결국 제우정보와의 계약을 해지하였고<ref>첨언으로 불과 1년여 뒤인 1995년 4월, 제우정보는 부도처리되고 만다.</ref>, 푸마와의 계약문제에 이어 엑스터와의 이중계약 파문을 일으킨 오형근 전 구단주는 결국 구단 일선에서 물러나게 된다. 결국 3월18일 보배소주의 대표이사 문수기 구단주가 팀 운영의 강한의지를 보여주었고 구단주가 재정을 책임진다는 조건부로  '''전북 프로축구단''' 창단이 승인되면서 '''완산 푸마 사태'''는 일단락 되었다. 이후 전북 프로축구단은 팀명을 '''[[전북 버팔로]]'''로 확정하며 1994년 시즌에 참가하게 된다.
    
= 완산 푸마 사태가 남긴 영향 =
 
= 완산 푸마 사태가 남긴 영향 =
rollbacks, 관리자

편집

9,7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