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994년부터 청소년 대표로 활약하며 일본 차세대 유망주 공격수로 기대를 모은 다카하라는 고등학교 졸업 후 1998년에 J리그의 주빌로 이와타에 입단하였다. 개막전 교토 퍼플 상가와 경기에서 교체출전으로 데뷔한 다카하라는 득점까지 성공시키는 놀라운 활약으로 주목을 받게 되었다. 이듬해 1999년에는 주빌로 이와타에서 J리그 21경기에 출전하여 9골을 기록하는 동시에 [[FIFA U-20 월드컵]]에서 3골을 넣고 일본의 준우승을 이끌었다. 상승세는 다음해에도 이어져 리그에서 10골을 기록하였다. 또한 국제대회에서도 좋은 활약을 보이며 [[시드니 올림픽]]에서 일본 대표팀 선수로 출전하여 3골을 성공시켰으며, 2000년 레바론에서 열린 [[AFC 아시안컵]]에 출전하여서 5골을 기록하며 득점 랭킹 2위에 자신의 이름을 올렸고, 일본의 우승을 이끄는 동시에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도 선정되는 영광까지 누리며<ref>이 대회 득점왕은 [[이동국]]이 6골로 차지하였고, 베스트 일레븐에도 선정되어 다카하라와 공격수 부분에 같이 이름을 올렸다.</ref>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유망주가 되었다. 2000년에 최고의 한해를 보낸 다카하라는 일본 최고의 유망주로 발돋움 하며 2001년에도 상승세를 이어갔다. 다카하라는 리그에서 전반기에만 13경기 8골을 성공하는 맹활약을 펼쳤고 리그와 국제대회에서 활약을 바탕으로 아르헨티나의 명문 보카 주니어스(Boca Juniors)에 입단할 기회를 얻었고, 2001년 8월부터 보카 주니어스로로 임대 이적하여서 일본 국적 최초의 아르헨티나 진출 선수가 되었다. 그러나 다카하라는 보카 주니어스에서 6경기 1골이라는 인상적이지 못한 활약을 보여주었고, 아르헨티나의 경제 악화의 악재가 겹쳐 2002년에 원소속팀 주빌로 이와타로 복귀하였다. 주빌로 이와타에 복귀한 다카하라는 부상으로 자국에서 열리는 [[2002년 한일월드컵]]에 출전하지 못하는 불운이 겹치기도 했으나, 부상 회복 후 리그에서 27경기에 26골을 기록하는 맹활약으로 소속팀 주빌로 이와타의 리그 우승에 큰 공헌을 했고, 다카하라 자신은 [[J리그]] 최우수 선수상, 최연소 득점왕,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는 최고의 활약을 선보였다. | + | 1994년부터 청소년 대표로 활약하며 일본 차세대 유망주 공격수로 기대를 모은 다카하라는 고등학교 졸업 후 1998년에 J리그의 주빌로 이와타에 입단하였다. 개막전 교토 퍼플 상가와 경기에서 교체출전으로 데뷔한 다카하라는 득점까지 성공시키는 놀라운 활약으로 주목을 받게 되었다. 이듬해 1999년에는 주빌로 이와타에서 J리그 21경기에 출전하여 9골을 기록하는 동시에 [[FIFA U-20 월드컵]]에서 3골을 넣고 일본의 준우승을 이끌었다. 상승세는 다음해에도 이어져 리그에서 10골을 기록하였다. 또한 국제대회에서도 좋은 활약을 보이며 [[시드니 올림픽]]에서 일본 대표팀 선수로 출전하여 3골을 성공시켰으며, 2000년 레바론에서 열린 [[AFC 아시안컵]]에 출전하여서 5골을 기록하며 득점 랭킹 2위에 자신의 이름을 올렸고, 일본의 우승을 이끄는 동시에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도 선정되는 영광까지 누리며<ref>이 대회 득점왕은 [[이동국]]이 6골로 차지하였고, 베스트 일레븐에도 선정되어 다카하라와 공격수 부분에 같이 이름을 올렸다.</ref>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유망주가 되었다. 2000년에 최고의 한해를 보낸 다카하라는 일본 최고의 유망주로 발돋움 하며 2001년에도 상승세를 이어갔다. 다카하라는 리그에서 전반기에만 13경기 8골을 성공하는 맹활약을 펼쳤고 리그와 국제대회에서 활약을 바탕으로 아르헨티나의 명문 보카 주니어스(Boca Juniors)에 입단할 기회를 얻었고, 2001년 8월부터 보카 주니어스로로 임대 이적하여서 일본 국적 최초의 아르헨티나 진출 선수가 되었다. 그러나 다카하라는 보카 주니어스에서 6경기 1골이라는 인상적이지 못한 활약을 보여주었고, 아르헨티나의 경제 악화의 악재가 겹쳐 2002년에 원소속팀 주빌로 이와타로 복귀하였다. 주빌로 이와타에 복귀한 다카하라는 질병으로 인해 자국에서 열린 [[2002년 한일월드컵]]에 출전하지 못하는 불운이 겹치기도 했으나, 부상 회복 후 리그에서 27경기에 26골을 기록하는 맹활약으로 소속팀 주빌로 이와타의 리그 우승에 큰 공헌을 했고, 다카하라 자신은 [[J리그]] 최우수 선수상, 최연소 득점왕,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는 최고의 활약을 선보였다. |
− | * [[2002 한일월드컵]] 당시 다카하라는 일본 대표팀 엔트리에 포함되는게 확실시되는 상황이었지만 '정맥혈전증'<ref>주로 다리에 발생하는 질병으로 나타나고 있다.</ref>이라는 질병에 걸려 대표팀 엔트리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정맥혈전증 때문에 올림픽 와일드카드에서 제외된게 아닙니다. | + | * [[2002 한일월드컵]] 당시 다카하라는 일본 대표팀 엔트리에 포함되는게 확실시되는 상황이었지만 '정맥혈전증'<ref>주로 다리에 발생하는 질병으로 나타나고 있다.</ref>이라는 질병에 걸려 대표팀 엔트리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
| * 2010년 K리그 진출 당시에 원래 이적협상을 진행하고 있었던 팀은 [[GS]]와 [[울산 현대]]였던 것으로 보인다. 일본 언론에서 나타난바로는 먼저 GS와 협상 중이었는데, 클럽 내부에서 이를 안좋게 보는 시선이 강해서 철수했다고. 또한 [[울산 현대]]의 경우 [[김호곤]] 감독이 다카하라를 경험 면에서 최고의 아시아쿼터 대안으로 생각하고 염두해뒀지만, [[김신욱]]의 출전기회 등을 생각하여 포기하였다. 그 뒤 수원으로 방향을 바꾼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ref>[http://www.nikkansports.com/soccer/news/p-sc-tp0-20100720-655714.html]</ref> | | * 2010년 K리그 진출 당시에 원래 이적협상을 진행하고 있었던 팀은 [[GS]]와 [[울산 현대]]였던 것으로 보인다. 일본 언론에서 나타난바로는 먼저 GS와 협상 중이었는데, 클럽 내부에서 이를 안좋게 보는 시선이 강해서 철수했다고. 또한 [[울산 현대]]의 경우 [[김호곤]] 감독이 다카하라를 경험 면에서 최고의 아시아쿼터 대안으로 생각하고 염두해뒀지만, [[김신욱]]의 출전기회 등을 생각하여 포기하였다. 그 뒤 수원으로 방향을 바꾼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ref>[http://www.nikkansports.com/soccer/news/p-sc-tp0-20100720-655714.html]</ref>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