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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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삼성 블루윙즈 시절 다카하라

다카하라 나오히로(Naohiro Takahara, 1979년 6월 4일 ~ )는 일본 국적의 축구선수로, 2010년 K리그에서 활동한 스트라이커이다.



프로필[편집]

  • 이름 : 다카하라 나오히로(일본어: 高原 直泰, 영어: Naohiro Takahara)
  • 출생일 : 1979년 6월 4일
  • 신체 : 181cm / 72kg
  • 학력 : 시미즈 히가시 고등학교
  • 국가대표 경력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 본선 대표
1998년 AFC U-19 아시아청소년선수권대회 본선 대표
1999년 FIFA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 본선 대표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본선 대표
2000년 AFC 아시안컵 본선 대표
2006년 FIFA 독일 월드컵 본선 대표
2007년 AFC 아시안컵 본선 대표
1998년 ~ 1999년 일본 U-20 16경기 16골
1998년 ~ 2000년 일본 U-23 11경기 4골
2000년 ~ 2008년 일본 국가대표
(일본 축구 국가대표 A매치 통산 57경기 출전 23득점)
(일본 U-23 축구 국가대표 11경기 출전 4득점)
(일본 U-20 축구 국가대표 16경기 출전 16득점)
  • 현 소속팀 : 일본 오키나와 SV
  • K리그 기록
연도 소속팀 리그 출장 교체 득점 도움 경고 퇴장
2010 Teamlogo sbfc.png 수원 삼성 블루윙즈 K리그 12 7 4 0 1 0
통산 K리그 12 7 4 0 1 0
K리그 통산 기록은 리그컵 기록 포함. 2016년 3월 1일 기준
연맹 공식 DB


선수 생활[편집]

주빌로 이와타와 보카 주니어스 시절[편집]

1994년부터 청소년 대표로 활약하며 일본 차세대 유망주 공격수로 기대를 모은 다카하라는 고등학교 졸업 후 1998년에 J리그의 주빌로 이와타에 입단하였다. 개막전 교토 퍼플 상가와 경기에서 교체출전으로 데뷔한 다카하라는 득점까지 성공시키는 놀라운 활약으로 주목을 받게 되었다. 이듬해 1999년에는 주빌로 이와타에서 J리그 21경기에 출전하여 9골을 기록하는 동시에 FIFA U-20 월드컵에서 3골을 넣고 일본의 준우승을 이끌었다. 상승세는 다음해에도 이어져 리그에서 10골을 기록하였다. 또한 국제대회에서도 좋은 활약을 보이며 시드니 올림픽에서 일본 대표팀 선수로 출전하여 3골을 성공시켰으며, 2000년 레바론에서 열린 AFC 아시안컵에 출전하여서 5골을 기록하며 득점 랭킹 2위에 자신의 이름을 올렸고, 일본의 우승을 이끄는 동시에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도 선정되는 영광까지 누리며[1]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유망주가 되었다. 2000년에 최고의 한해를 보낸 다카하라는 일본 최고의 유망주로 발돋움 하며 2001년에도 상승세를 이어갔다. 다카하라는 리그에서 전반기에만 13경기 8골을 성공하는 맹활약을 펼쳤고 리그와 국제대회에서 활약을 바탕으로 아르헨티나의 명문 보카 주니어스(Boca Juniors)에 입단할 기회를 얻었고, 2001년 8월부터 보카 주니어스로로 임대 이적하여서 일본 국적 최초의 아르헨티나 진출 선수가 되었다. 그러나 다카하라는 보카 주니어스에서 6경기 1골이라는 인상적이지 못한 활약을 보여주었고, 아르헨티나의 경제 악화의 악재가 겹쳐 2002년에 원소속팀 주빌로 이와타로 복귀하였다. 주빌로 이와타에 복귀한 다카하라는 질병으로 인해 자국에서 열린 2002년 한일월드컵에 출전하지 못하는 불운이 겹치기도 했으나, 부상 회복 후 리그에서 27경기에 26골을 기록하는 맹활약으로 소속팀 주빌로 이와타의 리그 우승에 큰 공헌을 했고, 다카하라 자신은 J리그 최우수 선수상, 최연소 득점왕,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는 최고의 활약을 선보였다.


독일 분데스리가 진출[편집]

2002년 주빌로 이와타에서 맹활약한 다카하라는 독일 분데스리가의 함부르크 SV로 2003년 1월에 완전 이적하였다. 이적 후 연속 무실점 경기를 이어가던 바이에른 뮌헨을 상대로 득점에 성공하며 주목을 받기도 했었다. 2003-04 시즌에는 많은 경기에 출전하였으나 2골 밖에 득점하지 못하며 주춤하기도 했으나, 2004-05 시즌 31경기에 출전하여 7골을 득점하여 함부르크 팀내 공격수 중 최다골을 기록하며 입지를 확실히 다졌다. 그러나 다음 시즌에는 21경기에 1골이라는 매우 저조한 활약을 보였으며 함부르크에서의 마지막 시즌이 되었다.

함부르크에서 퇴단한 다카하라는 2006년 5월에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로 팀을 옮겼다. 이적 후 2006 독일 월드컵을 앞두고 독일과 평가전에서 다카하라는 멀티골을 성공시키며 프랑크푸르트 팬들에게 자신의 존재감을 확실히 각인시켰다. 월드컵 종료 후 소속팀으로 복귀한 다카하라는 주전 공격수로 꾸준히 득점에 성공하였고 2006년 12월 3일에 있었던 알레마니아 아헨과 경기에서는 일본인 최초로 분데스리가에서 해트트릭을 성공하기도 했었다. 2007년까지 득점 행진을 이어간 다카하라는 시즌 11골을 득점하며 분데스리가 진출 후 처음으로 두 자릿수 득점 기록하며 팀의 분데스리가 잔류에 기여하였고 프랑크푸르트 서포터들이 선정한 시즌 MVP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었다. 이적 후 첫 시즌부터 맹활약하여 다음 시즌에도 전망이 밝아 보일 것 같은 다카하라는 2007-08 시즌에는 무릎 부상으로 초반부터 경기를 소화하지 못하였다. 게다가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하기 원했던 감독과 전술상 차이가 발생하게 되면서 8경기 1골을 끝으로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를 떠나게 되었다.


J리그 우라와 레즈로 복귀[편집]

2008년 1월 11일,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에서 우라와 레즈로 이적료 1억 8500 만엔, 연봉 1억 8000만엔에 3년 계약으로 J리그에 복귀하였다. 하지만 프랑크푸르트에서 있었던 무릎 부상 후유증과 적은 경기 출전으로 실전 감각이 떨어져 우라와 레즈에서 주빌로 이와타 시절 만큼 폭발적인 모습을 보이지 못하였다. 또한 폴커 핑케(Volker Finke, 1948.03.24 ~ ) 감독이 사이드 미드필더로 기용하며 다카하라는 부진의 늪에 빠지게 된다. 우라와 레즈에서 자리를 잃은 다카하라는 폴커 핑케 감독의 전력 구상에서 완전히 제외되었고, 겨울부터 이적을 모색하며 팀을 떠나기로 결정하였다.


수원 삼성 블루윙즈 시절[편집]

우라와 레즈에서 전력 외 선수로 밀려난 다카하라는 이적을 모색한 끝에 2010년 7월에 K리그 수원 삼성 블루윙즈로 이적하게 된다. 다카하라는 일본 복귀 후 계속되던 부진을 만회할 기회를 찾고 있었고 마찬가지로 수원도 외국인 선수인 헤이날도의 실패와 차범근 감독의 성적 부진으로 인한 자신사퇴 등으로 어수선한 분위기에 윤성효 감독을 선임한 상태로 신임 감독이었던 윤성효에게 전폭적인 지원을 통하여 분위기 반전을 생각한 수원은 다카하라와 같은 검증된 공격수가 필요했었던 것이 상호간 의견이 맞아 떨어진 것이었다.[2]

K리그 데뷔는 2010년 7월 31일 광주 상무와의 홈경기에서 이루어 졌다. 이적 후 평가는 실전 감각이 많이 떨어져 보인다는 평가가 대부분으로 냉담한 평가가 주를 이루었다. 다카하라는 이후 리그를 꾸준히 출전하며 실전 감각을 빠르게 회복하였고, 2010년 8월 28일 GS와의 경기에서 데뷔골과 추가골을 폭발시키며 맹활약을 펼치며 경기 MVP에 선정되기도 했었다.[3] 그 후 강원 FC광주 상무 원정 경기에 득점하여 총 12경기 4골로 2010년 시즌을 마무리하였다. 시즌 후 총평은 네임벨류에 비해서 아쉽다는게 대부분 이었지만 실전감각이 떨어졌던 것에 비해 성실한 플레이와 다카하라 특유의 공격 센스는 인상적이었다는 평. 다카하라는 2010 시즌이 종료하고 본인 홈페이지에 "자신감을 찾을 수 있었다"라고 스스로 만족 스럽게 평가하고 수원에서 있었던 자신에 대한 지지에 대하여 고마움을 표시하기도 하였다.


K리그 이후[편집]

2010년 반시즌 활약하며 폼을 회복한 다카하라는 2011년부터 수원에서 J리그의 시미즈 에스펄스로 이적하였고, 계약 만료로 방출된 뒤에는 2013년 J2리그의 도쿄 베르디로 이적하였다. 도쿄 베르디에서는 11골을 기록하여 팀내 최다 득점자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었지만, 도쿄 베르디의 자금난에 이적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지게 되었다. 소속팀의 재정난에 방출 대상이 되어버린 다카하라는 2014년 J3리그의 SC 사가미하라로 임대이적하였다. 2015년에는 완전 이적하여 주장으로 선임되어 33경기에 출전하여 6득점을 기록하는 노익장을 과시하기도 하였다.


선수 생활 황혼기[편집]

2015년 11월을 끝으로 SC 사가미하라와 계약이 만료된 다카하라는 2016년부터 자신이 대표로 창단한 오키나와 3부리그 소속의 오키나와 SV에서 선수 겸 감독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2019년 시즌을 끝으로 감독직에서는 물러났다.


플레이 스타일[편집]

슛 기술이 뛰어나며 공간을 찾아 움직이는 타입이다. 높은 체공력을 바탕으로 한 헤딩슛도 일품이며 피지컬이 강해서 분데스리가 수비수들과의 몸싸움에서도 밀리지 않았다.


에피소드[편집]

  • 2002 한일월드컵 당시 다카하라는 일본 대표팀 엔트리에 포함되는게 확실시되는 상황이었지만 '정맥혈전증'[4]이라는 질병에 걸려 대표팀 엔트리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 2010년 K리그 진출 당시에 원래 이적협상을 진행하고 있었던 팀은 GS울산 현대였던 것으로 보인다. 일본 언론에서 나타난바로는 먼저 GS와 협상 중이었는데, 클럽 내부에서 이를 안좋게 보는 시선이 강해서 철수했다고. 또한 울산 현대의 경우 김호곤 감독이 다카하라를 경험 면에서 최고의 아시아쿼터 대안으로 생각하고 염두해뒀지만, 김신욱의 출전기회 등을 생각하여 포기하였다. 그 뒤 수원으로 방향을 바꾼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5]
  • 수원으로 이적한 당시의 다카하라는 수원 구단 역사상 최초의 일본 국적의 선수였다. 그리고 다카하라가 일본 국적임에도 아시아쿼터는 아니었다. 아시아쿼터는 2009년 영입된 리웨이펑이 채우고 있었으며, 주닝요헤이날도의 방출로 공석이었던 외국인쿼터를 다카하라와 마르시오가 대체했다.
  • 이적 당시에는 우라와 레즈에서 임대로 이적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나, 이적료 약 4~5 억원 수준의 완전 이적이며, 우라와 측에서 연봉을 약간 부담해 주는 조건이었다고 한다.


개인 수상[편집]


경력[편집]

시즌 소속팀 리그 비고
1998 ~ 2002 일본 주빌로 이와타 J리그
→ 2001 ~ 2002 아르헨티나 보카 주니어스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임대
2003 ~ 2006 독일 함부르크 SV 독일 분데스리가
2006 ~ 2007 독일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독일 분데스리가
2008 ~ 2010 일본 우라와 레즈 J리그
2010.07 ~ 2010.12 Teamlogo sbfc.png 수원 삼성 블루윙즈 K리그
2011 ~ 2012 일본 시미즈 에스펄스 J리그
2013 ~ 2014 일본 도쿄 베르디 J2리그
→ 2014 일본 SC 사가미하라 J3리그 임대
2015 일본 SC 사가미하라 J3리그
2016 ~ 현재 일본 오키나와 SV 오키나와 3부리그


같이 보기[편집]

참고[편집]

  1. 이 대회 득점왕은 이동국이 6골로 차지하였고, 베스트 일레븐에도 선정되어 다카하라와 공격수 부분에 같이 이름을 올렸다.
  2. 이 밖에도 수원은 다카하라를 영입하면서 국내선수로 신영록황재원 등으로 공격과 수비를 보강해 주며 부진을 반등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3. 이 경기에서 그 유명한 다카하라-리웨이펑-이상호동아시아 합작 골이 탄생하였다.
  4. 주로 다리에 발생하는 질병으로 나타나고 있다.
  5.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