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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남 FC 감독 시절 ==
 
== 경남 FC 감독 시절 ==
K리그 2007시즌을 끝내고 대표이사와 홍역으로 동반사임한 [[박항서]] 감독의 후임으로 [[경남 FC]] 감독에 선임되었다. 2008시즌 4월, [[함안종합운동장]]에서 열린 [[FC GS]]와의 홈 경기에서 GS의 득점이 [[오프사이드]]로 무효 선언이 되자, GS 선수들이 항의하여 득점으로 인정되는 일이 일어났고, 그에 따라 항의하는 과정에서 경기가 28분 지연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물론 당시 선수단을 경기 구역 밖으로 내보낸 감독의 잘못도 있지만 그러한 상황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 한 심판진의 행동도 문제가 있었다. 2008년 중반까지는 [[K리그 챔피언십]] 진출권과 [[리그컵]] 플레이오프 진출권, [[FA컵]]에서의 연전연승 등 3개 대회에서 모두 인상적인 결과를 낼 뻔 했으나 2008년 마지막 라운드 [[전북 현대 모터스]]와의 원정 경기에서 당한 3-1 역전패와 [[하나은행 FA컵 2008 결승전]]에서 [[포항 스틸러스]]에게 패하는 등 아쉽게도 결과를 내는 데는 실패하였다. 2008시즌까지 쓰려고 했던 [[까보레]]가 이적 논란 끝에 도쿄로 떠나고, 뽀뽀마저 [[레이솔]]로 떠나 버린 입장에서 [[김진용2|김진용]], [[정윤성]], [[김동찬]], 그리고 당 시즌 화려하게 떠오른 [[서상민]] 등 국내파 공격수가 주축이 되어 이루어 낸 성과라 긍정적인 부분도 분명 있다. 특히 프로 입성 후 자리를 잡지 못하며 방출 명단에 이름을 올렸던 [[김동찬]]이 FA컵에서 완벽하게 부활하며 경남의 믿고 쓰는 공격수로 성장한 것이 가장 가시적인 성과. 이후 2009시즌에는 기존에 있던 [[산토스2|산토스]] 등 주축 선수들을 내보내고 [[K리그 드래프트 2009]]에서 지명한 젊은 선수들을 주축으로 팀을 꾸려 가게 된다. 시즌 초반까지는 불안한 모습을 보였지만 후반기 [[김동찬]]의 대활약과 [[이용래]], [[김주영2|김주영]], [[송호영]] 등 신인들이 성장하면서 대약진, 2010년에 대한 기대를 불러 일으켰다. 2010년 상반기 [[윤빛가람]]과 [[루시오2|루시오]]를 영입하면서 공격 전개 루트를 추가한 조광래 체제의 경남은 2010년 5월 2일까지 9경기 무패 행진을 내달리며 구단 역사상 최초로 리그 1위를 기록, 중위권에 머무를 것이라 생각했던 사람들의 어안을 벙벙하게 만들었다.<ref>혹자는 K리그가 [[추춘제]]로 진행되었다면 2009/10시즌의 챔피언은 [[경남 FC]]가 되었을 것이라고 한다.</ref> 하지만 2010년 7월 28일, [[허정무]] 감독의 후임으로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감독 자리에 오르며 경남 시대에 종지부를 찍었다. 조광래 감독과 경남은 [[K리그 2010]] 종료까지 대표팀과 경남 감독을 겸임할 것을 요청하였지만 [[대한축구협회]]는 이 요청을 거절하여 경남 감독직에서 내려 오게 되었다.<del>그리고 축협은 [[최강희|후임 감독]] 부임때는 겸임 제의를 하였다. 이 무슨</del> 후임으로는 정식 감독이 선임되지 않았고, 수석 코치 [[김귀화]]가 감독 대행으로 임무를 수행하였다. 조감독이 경남을 버리고 국대에 갔다는 의미로 '''감패'''<ref>감독질 패륜이라는 뜻이라고 한다.</ref>로 부르는 경남 팬들이 있는데, 제 얼굴에 먹칠 하는 꼴. 실제 조감독은 끝까지 경남과 겸임하기를 원했으며 국대 감독이 된 이후에도 당시 [[김영만]] 대표이사의 제안을 받아들여 구단 고문에 올랐고, 현재도 팀에 꾸준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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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그 2007시즌을 끝내고 대표이사와 홍역으로 동반사임한 [[박항서]] 감독의 후임으로 [[경남 FC]] 감독에 선임되었다.<ref>사실, 조광래감독의 선임 소식이 알려질 때만 하더라도 ''공격적인 능력을 갖춘 선수는 측면으로 돌려 수비력을 갖추게 하여 전술적으로 더 유용하게 만든다'' 는 윙백덕후 기질 때문에 넷상에서 '''까보레는 최고의 윙백''' 과 같은 개드립이 난무하였다.</ref>2008시즌 4월, [[함안종합운동장]]에서 열린 [[FC GS]]와의 홈 경기에서 GS의 득점이 [[오프사이드]]로 무효 선언이 되자, GS 선수들이 항의하여 득점으로 인정되는 일이 일어났고, 그에 따라 항의하는 과정에서 경기가 28분 지연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물론 당시 선수단을 경기 구역 밖으로 내보낸 감독의 잘못도 있지만 그러한 상황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 한 심판진의 행동도 문제가 있었다. 2008년 중반까지는 [[K리그 챔피언십]] 진출권과 [[리그컵]] 플레이오프 진출권, [[FA컵]]에서의 연전연승 등 3개 대회에서 모두 인상적인 결과를 낼 뻔 했으나 2008년 마지막 라운드 [[전북 현대 모터스]]와의 원정 경기에서 당한 3-1 역전패와 [[하나은행 FA컵 2008 결승전]]에서 [[포항 스틸러스]]에게 패하는 등 아쉽게도 결과를 내는 데는 실패하였다. 2008시즌까지 쓰려고 했던 [[까보레]]가 이적 논란 끝에 도쿄로 떠나고, 뽀뽀마저 [[레이솔]]로 떠나 버린 입장에서 [[김진용2|김진용]], [[정윤성]], [[김동찬]], 그리고 당 시즌 화려하게 떠오른 [[서상민]] 등 국내파 공격수가 주축이 되어 이루어 낸 성과라 긍정적인 부분도 분명 있다. 특히 프로 입성 후 자리를 잡지 못하며 방출 명단에 이름을 올렸던 [[김동찬]]이 FA컵에서 완벽하게 부활하며 경남의 믿고 쓰는 공격수로 성장한 것이 가장 가시적인 성과. 이후 2009시즌에는 기존에 있던 [[산토스2|산토스]] 등 주축 선수들을 내보내고 [[K리그 드래프트 2009]]에서 지명한 젊은 선수들을 주축으로 팀을 꾸려 가게 된다. 시즌 초반까지는 불안한 모습을 보였지만 후반기 [[김동찬]]의 대활약과 [[이용래]], [[김주영2|김주영]], [[송호영]] 등 신인들이 성장하면서 대약진, 2010년에 대한 기대를 불러 일으켰다. 2010년 상반기 [[윤빛가람]]과 [[루시오2|루시오]]를 영입하면서 공격 전개 루트를 추가한 조광래 체제의 경남은 2010년 5월 2일까지 9경기 무패 행진을 내달리며 구단 역사상 최초로 리그 1위를 기록, 중위권에 머무를 것이라 생각했던 사람들의 어안을 벙벙하게 만들었다.<ref>혹자는 K리그가 [[추춘제]]로 진행되었다면 2009/10시즌의 챔피언은 [[경남 FC]]가 되었을 것이라고 한다.</ref> 하지만 2010년 7월 28일, [[허정무]] 감독의 후임으로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감독 자리에 오르며 경남 시대에 종지부를 찍었다. 조광래 감독과 경남은 [[K리그 2010]] 종료까지 대표팀과 경남 감독을 겸임할 것을 요청하였지만 [[대한축구협회]]는 이 요청을 거절하여 경남 감독직에서 내려 오게 되었다.<del>그리고 축협은 [[최강희|후임 감독]] 부임때는 겸임 제의를 하였다. 이 무슨</del> 후임으로는 정식 감독이 선임되지 않았고, 수석 코치 [[김귀화]]가 감독 대행으로 임무를 수행하였다. 조감독이 경남을 버리고 국대에 갔다는 의미로 '''감패'''<ref>감독질 패륜이라는 뜻이라고 한다.</ref>로 부르는 경남 팬들이 있는데, 제 얼굴에 먹칠 하는 꼴. 실제 조감독은 끝까지 경남과 겸임하기를 원했으며 국대 감독이 된 이후에도 당시 [[김영만]] 대표이사의 제안을 받아들여 구단 고문에 올랐고, 현재도 팀에 꾸준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경남에서 조광래 시대의 의의는 [[유망주]]를 주축으로 하여 아기자기한 [[빌드업]]을 주 무기로 하는 전술을 통해 성적을 내고, 그 유망주가 팀을 떠나면 그 자리를 새로운 유망주가 메운다는 경남의 팀 컬러를 갖춘 데 있다. 실제로 [[최진한]] 시대까지 팀의 주축이 된 [[김인한]], [[김주영2|김주영]], [[윤빛가람]] 등 다수의 선수들이 혜성처럼 K리그에 등장하여 이름을 알렸고, 안양 시절 [[조광래의 아이들]]이라는 말에 이어 [[조광래 유치원]]이라는 말까지 만들어 내기에 이르렀다. 젊고 매력 있는 선수들의 활약과 조감독 특유의 아기자기한 전술, 거기에 2010년 새롭게 입성한 [[창원축구센터]]라는 삼박자가 맞아떨어져 경남은 폭발적인 관중 증가세를 보여 K리그에서 가장 주목받는 시민구단으로 떠오르게 된다.
 
경남에서 조광래 시대의 의의는 [[유망주]]를 주축으로 하여 아기자기한 [[빌드업]]을 주 무기로 하는 전술을 통해 성적을 내고, 그 유망주가 팀을 떠나면 그 자리를 새로운 유망주가 메운다는 경남의 팀 컬러를 갖춘 데 있다. 실제로 [[최진한]] 시대까지 팀의 주축이 된 [[김인한]], [[김주영2|김주영]], [[윤빛가람]] 등 다수의 선수들이 혜성처럼 K리그에 등장하여 이름을 알렸고, 안양 시절 [[조광래의 아이들]]이라는 말에 이어 [[조광래 유치원]]이라는 말까지 만들어 내기에 이르렀다. 젊고 매력 있는 선수들의 활약과 조감독 특유의 아기자기한 전술, 거기에 2010년 새롭게 입성한 [[창원축구센터]]라는 삼박자가 맞아떨어져 경남은 폭발적인 관중 증가세를 보여 K리그에서 가장 주목받는 시민구단으로 떠오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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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도 스타일 ==
 
== 지도 스타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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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단과 훈련할 때도 호흡을 같이하며 적극적으로 훈련에 임한다. 과거에는 수많은 선수들을 윙백으로 전환시켜 '''윙백덕후'''라는 소리를 듣기도 했지만 축구유학을 다녀온 이후 짜임새 있는 티키타카형 축구를 경남에 적용시켰고, 국가대표팀에서도 이와 같은 스타일을 정착시키려 했다.<ref>이 무렵 조광래 감독이 요구하는 전술적 역할을 주로 해외파 선수들이 수행하여, 해외파와 국내파의 파벌이 조장되었다는 일부 비판도 있다. 당시 주전 스트라이커였던 [[지동원]]과 핵심 미드필더 [[구자철]], [[이용래]]의 소속팀을 보자면 앞서 말한 주장의 설득력이 다소 떨어진다.</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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