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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산 푸마 축구단 자체는 와해되었으나, 선수들 중 타팀으로 이적할 수 있었던 몇몇 선수를 제외하고 이도저도 할 수 없었던 십수명의 선수와 [[최상철]] 감독 대행을 비롯한 코칭스탭은 훈련을 계속하며 93년 [[제41회 대통령배 전국축구대회]]를 참가하는 등, 살아남기 위한 행보를 계속했다. 이를 두고볼 수만은 없었던 [[대한축구협회]] 측도 호남권 향토기업과 당시 K리그와 컵대회 스폰등을 맡고있었던 기업들에게 완산 선수단 인수를 권유했으나, 일이 잘 풀릴리 만무했고 시간만 흘러갔다.
 
완산 푸마 축구단 자체는 와해되었으나, 선수들 중 타팀으로 이적할 수 있었던 몇몇 선수를 제외하고 이도저도 할 수 없었던 십수명의 선수와 [[최상철]] 감독 대행을 비롯한 코칭스탭은 훈련을 계속하며 93년 [[제41회 대통령배 전국축구대회]]를 참가하는 등, 살아남기 위한 행보를 계속했다. 이를 두고볼 수만은 없었던 [[대한축구협회]] 측도 호남권 향토기업과 당시 K리그와 컵대회 스폰등을 맡고있었던 기업들에게 완산 선수단 인수를 권유했으나, 일이 잘 풀릴리 만무했고 시간만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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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겨우 1993년 11월, 컴퓨터 조립업체였던 제우정보에서 선수단을 인수하고 가칭 '''제우 엑스터 프로 축구단'''<ref>이후 전북 엑스터로 변경한다. </ref> 창단을 발표하였고 94시즌 참가를 선언하면서 사태는 일단락 되는듯 싶었다. 하지만 제우정보가 경영 위기를 맞았고 제우정보 측이 스폰 금액을 부풀렸다는 내부 폭로<ref>1993년 3월15일 정일진 단장은 기자회견에서 새 구단주 문수기 (주)보배 대표이사와 배성수 (주) 제우정보 대표이사가 만난자리에서 년간 12억원(3년간 36억원)의 계약은 허위이고 실제로는 년간 3억원이라는 이면계약 사실을 폭로한다. </ref>,가 일어나면서 전북구단 측은 결국 제우정보와의 계약을 해지하였고<ref>첨언으로 불과 1년여 뒤인 1995년 4월, 제우정보는 부도처리되고 만다.</ref>, 푸마와의 계약문제에 이어 엑스터와의 이중계약 파문을 일으킨 오형근 전 구단주는 결국 구단 일선에서 물러나게 된다. 결국 3월18일 보배소주의 대표이사 문수기 구단주가 팀 운영의 강한의지를 보여주었고 구단주가 재정을 책임진다는 조건부로  '''전북 프로축구단''' 창단이 승인되면서 '''완산 푸마 사태'''는 일단락 되었다. 이후 전북 프로축구단은 팀명을 '''[[전북 버팔로]]'''로 확정하며 1994년 시즌에 참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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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겨우 1993년 11월, 컴퓨터 조립업체였던 제우정보에서 선수단을 인수하고 가칭 '''제우 엑스터 프로 축구단'''<ref>이후 전북 엑스터로 변경한다. </ref> 창단을 발표하였고 94시즌 참가를 선언하면서 사태는 일단락 되는듯 싶었다. 하지만 제우정보가 경영 위기를 맞았고 제우정보 측이 스폰 금액을 부풀렸다는 내부 폭로<ref>1994년 3월15일 정일진 단장은 기자회견에서 새 구단주 문수기 (주)보배 대표이사와 배성수 (주) 제우정보 대표이사가 만난자리에서 년간 12억원(3년간 36억원)의 계약은 허위이고 실제로는 년간 3억원이라는 이면계약 사실을 폭로한다. </ref>,가 일어나면서 전북구단 측은 결국 제우정보와의 계약을 해지하였고<ref>첨언으로 불과 1년여 뒤인 1995년 4월, 제우정보는 부도처리되고 만다.</ref>, 푸마와의 계약문제에 이어 엑스터와의 이중계약 파문을 일으킨 오형근 전 구단주는 결국 구단 일선에서 물러나게 된다. 결국 3월18일 보배소주의 대표이사 문수기 구단주가 팀 운영의 강한의지를 보여주었고 구단주가 재정을 책임진다는 조건부로  '''전북 프로축구단''' 창단이 승인되면서 '''완산 푸마 사태'''는 일단락 되었다. 이후 전북 프로축구단은 팀명을 '''[[전북 버팔로]]'''로 확정하며 1994년 시즌에 참가하게 된다.
    
= 완산 푸마 사태가 남긴 영향 =
 
= 완산 푸마 사태가 남긴 영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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