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조흥은행 입단 후 [[함흥철]] 코치의 조련을 받으며 빠른 성장 속도를 보인 조선수는, 1970년 [[제12회 아시아청소년축구대회]] 본선 멤버로 발탁되어 처음 태극마크를 달았으며, 이후 해당 대회에서만 5골을 몰아쳐 단박에 주목을 얻는데 성공하였다. 이를 계기로 약관의 나이로 국가대표에도 발탁되었을 뿐만 아니라<ref>대표팀 발탁 당시 조선수의 나이는 만 20세 8개월이었으며, 역대 최연소 국가대표 발탁 기록을 경신하는데 성공하였다. 다만 이후 [[차범근]]ㆍ[[최순호]] 등이 등장하면서 역대 최연소 국가대표 발탁 기록은 후배 선수들에게 내줘야만 했다.</ref> 소속팀에서의 활약도도 두드러지면서 [[1970년 추계 실업 리그]]에서도 득점왕을 차지,<ref>당시 [[김진국]] 선수와 함께 7골을 기록하며 공동 수상하였다.</ref> 실업 무대 입단 2년여 만에 한국 축구를 대표하는 공격수로서 입지를 다지기에 이른다. 이후 1971년 [[해병대 축구단]]에 입대하여 군복무를 마친 조선수는 조흥은행으로 복귀해 1970년대 후반까지 활동한 뒤 선수 생활을 정리하였다. | + | 조흥은행 입단 후 [[함흥철]] 코치의 조련을 받으며 빠른 성장 속도를 보인 조선수는, 1970년 [[제12회 아시아청소년축구대회]] 본선 멤버로 발탁되어 처음 태극마크를 달았으며, 이후 해당 대회에서만 5골을 몰아쳐 단박에 주목을 얻는데 성공하였다.(청소년국가대표 3회출전) 이를 계기로 약관의 나이로 국가대표에도 발탁되었을(킹스컵2회, 메르데카컵 출전) 뿐만 아니라<ref>대표팀 발탁 당시 조선수의 나이는 만 20세 8개월이었으며, 역대 최연소 국가대표 발탁 기록을 경신하는데 성공하였다. 다만 이후 [[차범근]]ㆍ[[최순호]] 등이 등장하면서 역대 최연소 국가대표 발탁 기록은 후배 선수들에게 내줘야만 했다.</ref> 소속팀에서의 활약도도 두드러지면서 [[1970년 추계 실업 리그]]에서도 득점왕을 차지,<ref>당시 [[김진국]] 선수와 함께 7골을 기록하며 공동 수상하였다.</ref> 실업 무대 입단 2년여 만에 한국 축구를 대표하는 공격수로서 입지를 다지기에 이른다. 이후 1971년 [[해병대 축구단]]에 입대하여 군복무를 마친 조선수는 조흥은행으로 복귀해 1970년대 후반까지 활동한 뒤 선수 생활을 정리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