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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자동차보험(주)는 차량에 대한 책임보험 업무가 필요하게 되자 1962년 생겨난 한국자동차보험공영사를 모태로 1968년 손해보험사들의 공동출자로 개편된 자동차 책임보험에 대한 배타적<ref>자동차보험 업무 취급허가가 한 곳에만 주어졌으므로 독점적이라기 보다는 배타적이 맞다. 배타적이라고 해서 무슨 혜택이라고는 할 수 없는게 당시 차량 보험이 필요했지만 차량등록수가 얼마되지 않아 수지를 맞추기 힘들었으므로 손해보험사들이 억지춘향격으로 공동으로 출자하여 자동차보험 관련 업무를 취급했을 뿐이다. 홀로 자동차 보험을 취급했음에도 불구하고 경영에 어려움을 겪어 81년 축구단을 해체했고 민영화 이후에도 전체 자동차 보험의 50% 이상을 점유했음에도 불구하고 누적적자로 인해 자본을 잠식 당하기도 했다.(물론 공사시절부터 정부보조에 길들어져 있는 안이한 태도가 주된 문제였겠지만)</ref> 업무를 취급하던 회사이다.  
 
한국자동차보험(주)는 차량에 대한 책임보험 업무가 필요하게 되자 1962년 생겨난 한국자동차보험공영사를 모태로 1968년 손해보험사들의 공동출자로 개편된 자동차 책임보험에 대한 배타적<ref>자동차보험 업무 취급허가가 한 곳에만 주어졌으므로 독점적이라기 보다는 배타적이 맞다. 배타적이라고 해서 무슨 혜택이라고는 할 수 없는게 당시 차량 보험이 필요했지만 차량등록수가 얼마되지 않아 수지를 맞추기 힘들었으므로 손해보험사들이 억지춘향격으로 공동으로 출자하여 자동차보험 관련 업무를 취급했을 뿐이다. 홀로 자동차 보험을 취급했음에도 불구하고 경영에 어려움을 겪어 81년 축구단을 해체했고 민영화 이후에도 전체 자동차 보험의 50% 이상을 점유했음에도 불구하고 누적적자로 인해 자본을 잠식 당하기도 했다.(물론 공사시절부터 정부보조에 길들어져 있는 안이한 태도가 주된 문제였겠지만)</ref> 업무를 취급하던 회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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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차량 등록이 60만대를 넘어서자 이러한 배타적 운영에 다른 보험회사들이 반발하게 되어 결국 자동차 책임보험에 대한 다원화 조치가 이뤄지게 되고 한국자동차보험도 [[동부그룹]]에 인수되어 여러 자동차 보험 업체중 하나가 되었다. 95년에는 동부화재로, 2017년 DB손해보험으로 명칭을 변경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지금의 [[DB손해보험]] 프로미(promy)가 한국자동차보험의 후신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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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차량 등록이 60만대를 넘어서자 이러한 배타적 운영에 다른 보험회사들이 반발하게 되어 결국 자동차 책임보험에 대한 다원화 조치가 이뤄지게 되고 한국자동차보험도 [[동부그룹]]에 인수되어 여러 자동차 보험 업체중 하나가 되었다. 95년에는 동부화재로, 2017년에는 DB손해보험으로 명칭을 변경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지금의 [[DB손해보험]] 프로미(promy)가 한국자동차보험의 후신이라 할 수 있다.
    
== 자동차보험 축구단 ==
 
== 자동차보험 축구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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