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 일화 천마: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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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애초에 일화 축구단은 천안을 홈으로 할 의지가 없었다. 1996년 4월 7일 첫 홈 경기 이후 10월까지 홈 경기를 한 번도 가지지 않았다. 첫 시즌에는 홈 경기를 제대로 펼치지 않았으며, 두 번째 시즌에는 홈 경기 일정을 제대로 잡아서 진행하였으나 기존에 비해 선수 투자 규모도 줄었다. | '''둘째''', 애초에 일화 축구단은 천안을 홈으로 할 의지가 없었다. 1996년 4월 7일 첫 홈 경기 이후 10월까지 홈 경기를 한 번도 가지지 않았다. 첫 시즌에는 홈 경기를 제대로 펼치지 않았으며, 두 번째 시즌에는 홈 경기 일정을 제대로 잡아서 진행하였으나 기존에 비해 선수 투자 규모도 줄었다. | ||
특히 1998년 성남시를 비롯한 다른 지자체의 접촉 이후인 [[ | 특히 1998년 성남시를 비롯한 다른 지자체의 접촉 이후인 [[바이코리아컵 K-리그 1999|1999 K-리그]] 시즌부터 굉장히 냉랭한 태도를 취했다. 정규리그 홈 경기 중 4경기 만을 천안에서 가졌으며 이 경기는 모두 수요일 오후 경기였다. 나머지 홈 경기는 기존의 홈 구장이었던 [[동대문 운동장]], 제천 종합 운동장, 강릉 종합 운동장 등을 유랑하며 경기를 가졌다. 타지역에서 경기를 할 경우, 전광판에 팀 명으로 지역 명을 표기하지 않고 '일화'로 표기하며 천안에 연을 두지 않을 것임을 은연중에 내비쳤다. | ||
'''셋째''', 성남시의 비협조와 성남시 기독교인들의 반발을 예상하고 이동한 것은 아니다. 자체적으로 통일교의 색깔을 없앤 상태에서 천안 지역 기독교인들의 반발은 비교적 드러나지 않게 이루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확인 필요) 천안시는 물론 기존에 [[천안 일화 천마]]에게 약속한 부분을 장기적으로 이행하고 있었지만, 성남시는 시장까지 나서서 직접 박규남 단장을 접촉하고 이미 1998년이 지나기 전에 [[성남 모란 운동장]]의 잔디를 교체하면서 향후 좋은 지원을 약속했다. | '''셋째''', 성남시의 비협조와 성남시 기독교인들의 반발을 예상하고 이동한 것은 아니다. 자체적으로 통일교의 색깔을 없앤 상태에서 천안 지역 기독교인들의 반발은 비교적 드러나지 않게 이루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확인 필요) 천안시는 물론 기존에 [[천안 일화 천마]]에게 약속한 부분을 장기적으로 이행하고 있었지만, 성남시는 시장까지 나서서 직접 박규남 단장을 접촉하고 이미 1998년이 지나기 전에 [[성남 모란 운동장]]의 잔디를 교체하면서 향후 좋은 지원을 약속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