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보험

58.234.95.82 (토론)님의 2010년 7월 17일 (토) 01:23 판 (분류추가)

자동차보험(自動車保險)은 70년대 자동차 보험에 관한 배타적인 업무를 하던 보험회사이자 1970년 4월 창단되어 1981년 6월까지 존속했던 금융단 축구팀이다. 정식 명칭은 한국자동차보험(주) 이며 축구단으로 자보(自保), 자동차보험 축구단으로 불리었다.

한국자동차보험

한국자동차보험(주)는 차량에 대한 책임보험 업무가 필요하게 되자 1962년 생겨난 한국자동차보험공영사를 모태로 1968년 손해보험사들의 공동출자로 개편된 자동차 책임보험에 대한 배타적[1] 업무를 취급하던 회사이다. 1983년 차량 등록이 60만대를 넘어서자 이러한 배타적 운영에 다른 보험회사들이 반발하게 되어 결국 자동차 책임보험에 대한 다원화 조치가 이뤄지게 되고 한국자동차보험도 동부그룹에 인수되어 여러 자동차 보험 업체중 하나가 되었다. 95년에는 동부화재로 명칭을 변경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지금의 동부화재 프로미(promy)가 한국자동차보험의 후신이라 할 수 있다.

자동차보험 축구단

1970년 축구 선수들의 대학 졸업 후 선수 생활을 계속 이어갈 실업 축구팀의 증설이 요구됨에 따라 정부측의 압력으로 주택은행, 기업은행, 조흥은행, 제일은행 등 총 12개의 금융업계가 축구단을 창단한 바 있었다. 이 때 현재의 동부화재 자동차 보험의 전신이었던 한국자동차보험사도 금융단 축구협의회에 편입되어, 자동차보험 축구단을 창단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1970년 4월에 창단하여 같은해 6월 실업축구연맹에 가입하였으며 이후 실업축구연맹전과 대통령배 전국축구대회 등에 참가하였던 자동차보험축구단은 고 문정식씨 (당시 국가대표 코치)를 감독으로 대표 선수로 국가대표 선수였던 김황호, 이강조 등을 배출한 팀으로도 알려져 있다.

1976년에는 당시 신탁은행 축구단에 입단 예정이었던 차범근 선수가 문정식 감독을 따라 자동차보험 축구단에 이적하길 희망하면서 말썽이 생겼는데, 결국 실업축구연맹의 중재에 따라 차범근 선수가 공군에 입대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당시 자동차보험축구단은 대통령배 전국축구대회 우승을 비롯, 각종 실업 축구연맹전을 2연패하는등 실업축구계의 강호로 인식되고 있었고 대우도 제법 좋았다는 평가다.

그러나 1981년 6월, 대한축구협회의 프로 리그 창단 추진 움직임과 더불어, 실업축구의 인기가 사그라들고, 모기업인 한국자동차보험사가 경영위기에 직면하면서 내부 결정에 의해 81년 실업 축구 일정이 종료됨과 동시에 해체되고 말았다.

수상 기록

홈구장

자동차보험 축구단의 숙소 및 구장은 서울시 강동구 문정동(현, 송파구 가락동)에 위치한 자동차보험연수원이었다. 1981년 실업축구연맹전 2차대회 일부가 연수원내 구장에서 열리기도 했다.

1983년 동부그룹의 인수후 미륭건설(현,동부건설)이 아파트를 지어 분양하면서 연수원 및 구장은 사라졌으며, 현재 송파중학교 옆 가락미륭아파트가 예전 자동차보험연수원자리였다.

참고

  1. 자동차보험 업무 취급허가가 한 곳에만 주어졌으므로 독점적이라기 보다는 배타적이 맞다. 배타적이라고 해서 무슨 혜택이라고는 할 수 없는게 당시 차량 보험이 필요했지만 차량등록수가 얼마되지 않아 수지를 맞추기 힘들었으므로 손해보험사들이 억지춘향격으로 공동으로 출자하여 자동차보험 관련 업무를 취급했을 뿐이다. 홀로 자동차 보험을 취급했음에도 불구하고 경영에 어려움을 겪어 81년 축구단을 해체했고 민영화 이후에도 전체 자동차 보험의 50% 이상을 점유했음에도 불구하고 누적적자로 인해 자본을 잠식 당하기도 했다.(물론 공사시절부터 정부보조에 길들어져 있는 안이한 태도가 주된 문제였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