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축구 승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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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양산 (토론 | 기여)님의 2015년 11월 29일 (일) 22:54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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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승강제의 역사

1970년대

1970년대에 들어서 실업축구의 팀이 20개에 가까워지자 실업축구연맹전을 1.2부리그로 나누어 운영해야 한다는 의견이 대두되어왔으나 하위권팀들의 반발로 실현되지 못했다.

1980년대

1980년부터 1982년까지 3년동안의 성적을 토대로 실업축구는 1983년부터 1부와 2부리그로 나누어 승강제를 실시 하기로 한다. 1983년 실업축구는 1부리그 10개팀과 2부리그 10개팀으로 운영될 예정이었다.

수퍼리그 출범

그러나 1983년도에 수퍼리그가 갑작스럽게 출범하면서 실업축구는 계획과 다르게 진행된다. 기존에 10개팀으로 진행될 실업축구 1부리그는 대우 축구단국민은행 축구단 그리고 포항제철 축구단이 수퍼리그로 편입되면서 7개팀으로 진행되고 갑작스럽게 출범한 수퍼리그는 실업축구계의 반발을 우려해 83년 실업축구 우승팀에게는 84년 수퍼리그 출전권을 주는등 연계를 시도한다. 사실상 1부(수퍼리그)와 2부(코리안리그 1부), 3부(코리안리그 2부)리그의 틀이 만들어졌지만 오래가지 못한다.

실업축구의 2부리그 폐지

하지만 군 3개팀이 상무 축구단으로 통합되고 조흥은행외환은행등이 해체하면서 결국 실업축구리그는 단일리그로 환원된다.

프로축구리그의 출범

프로와 실업팀이 혼재되어 있어 야구와는 달리 "프로"라는 이름을 쓰지 못했던 수퍼리그 축구대제전은 발전을 위해서는 프로와 실업이 혼재되어있는 비정상적인 구조를 해소하고 프로축구팀만이 겨루는 프로리그 대회가 되어야 한다는 축구계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프로축구선수권대회를 출범하는등 실업팀을 배재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86년도부터 실업팀을 배제하려 했으나 체육부의 지시로 아마팀 1개팀을 포함하라는 지시로 한일은행은 잔류했으나 85년부터 실업 우승팀은 수퍼리그 축구대제전 승격길이 막힌다. 1987년부터 프로팀만이 리그를 꾸리면서 프로축구와 실업축구의 승강시스템은 3년여만에 사라진다.

1990년대

실업축구의 2부리그 창설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1990년 한국실업축구연맹이 재출범하고 1991년부터 국내축구 저변을 확대하고 실업축구의 활성화를 위한다는 목적으로 한국실업축구연맹회장기 전국직장인축구대회가 창설된다. 실업축구연맹에 등록되지 않은 직장인 축구팀의 출전이 가능하며, 우승팀과 준우승팀에게는 다음해에 실업축구연맹 가입권이 부여되고 실업연맹의 모든 대회에 참여할수 있는 특권이 주어진다. 창설당시 실업축구의 2부리그로 분류됐지만 승강제 개념의 운영이 아니었고, 본래 취지와 함께 연맹 미등록팀의 연맹등록을 유도하려는 목적도 있어보인다. 하지만 지속되지 못하고 폐지된것으로 보인다.

2000년대

K리그와 내셔널리그의 승격제 실시

2006년부터 내셔널리그 우승팀은 K리그로 승격이 가능하게 됐으나 우승팀 고양 국민은행팀이 은행법을 이유로 승격을 거부한면서 계획에 차질을 생긴다. 2007년 내셔널리그 우승팀 울산 현대미포조선도 결승전에서 수원시청과의 몰수승 논란으로 승격을 사실상 거부하면서 결국 k리그와 내셔널리그의 승격제는 실패로 끝나게 된다.

2010년대

K리그 승강제의 실시

아시아 축구연맹(AFC)의 권고사항으로 K리그에서 승강제를 실시하지 않을시 AFC챔피언스 리그 출전티켓 및 참가자격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2010년 승강제를 위한 공청회등를 거쳐 2011년 승강제 도입이 확정된다. 2012년 한시적 스플릿제도를 도입하여 4개팀을 강등시키려 했지만 시.도민구단의 반발로 2012년과 2013년 2개팀씩 나누어 강등시키기로 한다. 2013년 1부리그인 K리그 클래식과 2부리그인 K리그 챌린지가 가동되면서 한국축구의 숙원인 승강제가 실현된다.

에피소드

상주 상무 강제강등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