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평대항축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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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ㆍ평 대항축구전은 1929년부터 1935년까지 진행된 도시대항 축구경기였다. 흔히 경평전, 경평축구대회, 경성 평양 축구전 등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요새는 유럽축구문화의 영향으로 경평더비라는 말로도 불리우고 있다.


역사

경평전의 시작

1929년 조선일보사에서 경성 대 평양의 도시 대항전을 구상하고 같은해 10월 8일 휘문고보 운동장에서 제 1회 전경성 대 전평양의 대항전을 개최한 것이 경평전의 첫 출발이었다. 조선일보사의 적극적인 홍보와 서울-평양간의 라이벌 의식이 맞물리면서, 대회가 거듭될수록 서울, 평양 각 시민은 물론 전국민의 관심거리가 되었다.

경평전은 1930년 제 2회 대회를 끝으로 주최측인 조선일보사의 사정으로 1931년과 32년 두 해 동안 열리지 않아, 사멸될 처지였으나 1933년 4월, 평양축구단이 창단을 기념하여 경성대표를 초청함에 따라 경평전은 극적으로 부활하게 된다. 조선일보사의 경평전과 구분하기 위해 경ㆍ평 대항전으로 새로이 이름을 정한 이 대회는 봄, 가을 두차례로 나누어 경성축구단평양축구단이 경성과 평양을 오가며 홈&어웨이 방식으로 치루기로 합의하면서, 도시 대항전으로서의 기본을 모두 갖추게된다.


경평전의 해산

제 1회 대회의 성공적 개최를 시작으로 1935년까지 계속되었던 동 대회는 1935년 제4회 경ㆍ평 대항전은 경성운동장에서 마지막으로 치루어졌다. 4회 경평전 첫경기는 0:0 무승부였기 때문에 두번째 경기는 어떻게든 이기려는 양팀의 신경전이 극에 달할 즈음 사건이 터지고 만다. 경성축구단이 선제골을 넣었으나 오프사이드 판정이 나오면서 무득점으로 처리되었던 것. 뒤이어 평양축구단이 결승골을 터뜨리면서 1:0으로 승리하며 평양축구단의 승리로 마무리된것 까지는 좋았는데, 경성축구단 측은 두번째 경기 당시 오프사이드 판정에 불만을 표시하면서 대회 참가 포기를 선언하는 병크를 저질러버렸다. 여기에 지역감정과 그간 쌓였던 좋지않은 감정이 폭발하면서 동 대회는 4회만에 막을 내리고 말았다. 계속 진행만 됐더라면 한국 축구 역사에 한획을 그을 수 있었던 대회를 자기 손으로 무너뜨린 셈이었다.[1]

그러나 당시의 경ㆍ평 대항축구전의 열기를 추억하는 원로 축구인들의 노력으로 1990년대까지 평양 출신의 축구인과 경성 출신 축구인들 간의 경성 OB vs 평양 OB 친선 매치가 정기적으로 치루어졌으며 현재도 간간히 경평전의 부활을 추진하는 움직임이 있는등 여전히 경평전의 영향력은 간접적으로나마 한국축구 속에 살아있다.


참고 사항

  1. 어차피 1942년부터 일제가 스포츠 활동을 전면 금지하고, 45년 광복 이후에는 분단이 되버렸으므로 경평전은 없어질 운명이었다지만, 타의로 없어지는 것과 자의로 없어지는건 엄연히 다른 문제


같이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