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승화

칫통 (토론 | 기여)님의 2012년 10월 21일 (일) 05:14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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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나승화.jpg
올림픽대표 시절 나승화

나승화(羅承和, 1969년 10월 8일 ~)는 대한민국 국적의 전직 축구선수로 1991년부터 1996년까지 선수 생활을 하였다.



프로필

  • K리그 기록
소속팀 연도 출장 교체 득점 도움 경고 퇴장
포항제철 아톰스 1991 17 4 0 3 0 0
포항제철 아톰스 1992 16 5 0 1 0 0
포항제철 아톰스 1993 16 9 0 2 2 0
포항제철 아톰스 1994 25 7 0 3 2 0
통산 (K리그) - 74 25 0 9 4 0
K리그 통산 기록은 리그컵 기록 포함. 2012년 3월 1일 기준.
틀:연맹공식기록


유소년 생활

서울 숭곡초등학교, 용문중학교, 용문고등학교를 거쳐 한양대학교를 나온 선수이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고등학교때까지 황선홍 선수와 함께 한솥밥을 먹으며 죽마고우였던 것은 꽤나 유명하다. 용문고 시절부터 황선수와 함께 청소년대표에 발탁되며 될성부른 떡잎이란 평가를 받았다.


프로 생활

은퇴 이후

1997년 선수 생활을 정리 후, 1999년 강원도 원주시에 위치한 육민관중학교 축구부 창단 감독으로 부임해 현재까지 육민관중 축구부를 맡아 어린 선수들을 육성하고 있다.


플레이 스타일

에피소드

  • 바르셀로나 올림픽대표 시절, 강철 선수와 함께 측면 수비라인을 구성하였으며 기술적인 돌파와 날카로운 크로스로 데트마르 크라머 감독의 총애를 받았던 유망주였다. 하지만 당시 한국축구의 인프라는 고질적인 무릎 부상을 안고다녔던 나승화 선수가 발전할 수 있는 토대가 되어주지 못했다. 결국 바르셀로나 올대 시절의 날카로운 인상을 뒤로한채 26살이란 젊은 나이에 사실상 선수생활을 정리하게 된다.
  • 1992년 K리그, 최종전 對 LG 치타스와의 경기에서 차상해 선수의 극적인 결승골을 어시스트해서 일약 전국구 스타(?)의 반열에 올랐던바 있다. 당시 포항은 무조건 LG 치타스를 이겨야만 K리그 우승이 가능한 상황이었고, 일화 천마는 포항이 비기기만 해도 일화의 창단 첫 우승이라는 대기록을 세울수 있었기에 이 경기는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었던 것. 결과적으로 후반 34분, 교체 투입된 차상해 선수가 나승화 선수가 절묘한 크로스를 머리로 받아넣으면서 포항은 극적인 우승을 거머쥘수 있었다.[1]


경력

  • 1995 ~ 1996 : 상무 / 실업


업적 및 수상

같이 보기


참조

  1. 당시 경기는 공중파로 생중계되며 많은 이들의 이목을 집중시켰고, 포항의 극적인 우승 덕분에 93시즌 K리그 개막전에 구름관중이 몰리며 K리그의 르네상스가 열릴뻔했었다. 하지만 이듬해인 93시즌은 경기당 평균 득점이 1점을 간신히 넘기는 극악의 수비축구로 K리그의 재미가 반감되어 관중들의 외면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