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체육지도대

계양산 (토론 | 기여)님의 2014년 10월 15일 (수) 22:07 판 (→‎육군체육지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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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체육지도대는 1982년 11월 기존의 육군내에 흩어져 있던 체육단을 통합하여 설치한 육군의 체육부대이다. 1984년 1월, 3군 체육부대가 통합되어 상무부대가 설립되면서 해체되었다. 웅비(雄飛)[1] 또는 웅비부대로 불리웠다.


육군체육지도대

1982년 11월1일 육군종합행정학교에서 창설식을 가졌으며, 총 18개 종목[2]을 육성했다. 각 종목의 전문가로 구성된 체육지도자문위원회를 별도로 두고 있다.

웅비 축구단

이 부분의 본문은 충의입니다.

1965년 특무대헌병감이 해체 후 공병단 축구단으로 통합되었으나 다시 공병단이 해체하고 육군의 전(全)축구단이 병참단 축구단으로 통합된 1969년 5월 15일 이래 육군이라 불리던 팀은 병참단의 후신인 육군 축구단(충의)뿐이었다. 이 팀이 "육군체육지도대"라는 이름으로 육군 의 전 체육경기단체가 통합될 때 그대로 와서 이름만 웅비라 바뀌었으므로 그대로 육군을 대표하는 팀이 되었다. 1980년~1982년 통합성적에서 2위를 차지하여 1983년 수퍼리그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이 있었으나 불참하였다. 웅비라는 이름으로는 1년 남짓 사용되었으며, 이듬해 1월 3군 체육경기단체가 통합됨에 따라 상무 축구단으로 통합되었다.

해군의 해룡, 공군의 성무와 라이벌 관계였으나 (이들 웅비, 해룡, 성무를 통틀어 3군 축구단이라 불렀다.) 삼군 축구팀 중 가장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성적


같이 보기


참고

  1. 웅비(雄飛)는 기운차고 용기 있게 활동함을 나타내는 명사로 힘차고 씩씩하게 뻗어나가는 기상을 나타낼 때 사용되는 한자어이다. 웅비라는 단어의 출전은 후한서 조전전(趙典傳)으로 후한 말 시중(비서)과 대홍로(외국사절을 접대하는 관리)의 벼슬을 지낸 조전(趙典)의 열전에 따르면 조전은 기개있고 정직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의 조카인 조온(趙溫)도 그 같은 기질을 가진 사람이었는데, 그가 벼슬을 사직하면서 남긴 말에서 웅비가 유래했다. 「대장부는 수컷처럼 훨훨 날아야(雄飛)한다. 어찌 암컷처럼 엎드려만(雌伏) 있겠는가?」(유래를 보면 엄청 남녀 차별적인 단어.-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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