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수
고종수(高宗秀, Ko, Jong Soo, 1978년 10월 30일 - )는 1996년부터 2008년까지 K리그에서 맹활약한 전설적인 선수이자 지도자이다. 어린시절 뛰어난 기량에 비해 대성하지 못하여 비운의 천재라는 타이틀이 붙어있다. 사실상 언론과 네티즌들이 죽인 선수로도 유명하다.
프로필
- 이름 : 고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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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소년 시절
전라남도 여수시 출신인 고종수는 여수서초등학교, 구봉중학교, 금호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그라운드를 휘잡고 돌아다니며 나이에 걸맞지 않은 대담하고 탁월한 축구 실력을 선보였다. 고등학교 1학년 시절이던 1993년 시도대항 축구대회에서 득점왕을 차지하며, 팀의 결승진출을 이끌었고, 고등학교 2학년이던 1994년 금호고를 제2회 백록기고교축구대회 우승으로 이끌었다. 이러한 활약에 언론은 고종수를 향하여 무서운 아이를 뜻하는 '앙팡테리블 (Enfant Terrible)'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고, 이 별명은 그의 선수생활 내내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다. 성씨가 '고'씨인 것에 착안하여 '고길동'라는 별명이 붙기도 하였다.
수원 시절
J리그 시절
2003년 FA인 고종수에게 J리그 교토 퍼플 상가에서 오퍼가 오자 교토로의 이적을 추진하였고, 연봉 9천5백만엔(약 9억5천만원), 계약금 1억원 등 총 10억5천만원에 1년간 계약했다. FA영입에 대한 이적료가 발생한다는 국내 규정에 의하여 원 소속팀 수원은 이적 거부권을 행사하였고, 고종수는 이에 반발하여 일본으로 출국, 교토의 훈련캠프에 합류하는 등 이적분쟁을 겪었다. 결국 수원이 고종수의 이적을 무상 임대 형식으로 합의하여 교토 퍼플 상가에 입단하는 데 성공했지만, 일본 생활은 오래가지 않았다. 팀에 새로 부임한 핌 페르베이크 감독이 고종수를 스트라이커로 기용하려하였고, 이에 고종수는 자신과 맞지 않는 포지션 기용에 항의하며 감독과의 불화가 지속되었고 경기 출전수도 줄어들었다. 결국 감독 눈밖에 난 고종수는 6개월만에 방출당하였고, 6개월간을 무적선수로 지내고 말았다.
전남 시절
김남일 (전남 드래곤즈) <-> 고종수 + 조병국 (수원 삼성 블루윙즈)
대전 시절
플레이 스타일
에피소드
- 2001년 1월 도쿄국립경기장에서 벌어진 '한일올스타'와 '세계 올스타'간 경기에 출전하였고, 호세 루이스 칠라베르트를 꼼짝 못하게 하는 환상적인 프리킥 골을 작렬시키기도 하였다. 고종수 선수의 기량이 정점에 올랐던 시절의 일로 지금도 고종수를 추억하는 이들에게 항상 회자되고는 하는 명장면이다.
- 연예인들과의 친분이 있어, 축구선수들 중에는 방송출연을 가장 많이한 선수이기도 하다. [1]
- 또한 기자들의 먹잇감으로 전락했던 것도 유명하다. 고종수와 개인적인 친분이 있던 기자가, 고종수와의 술자리에서 사석이라고 고선수가 심경토로한걸 모조리 다음날 기사로 써갈겨 수원과 고종수 사이를 완전히 틀어놔버렸던건 이미 전설적인 일화.[2] 국가대표 시절 일화도 유명하다. 인용하자면 다음과 같다.
“ | 어떤 기자가 다가와 ‘내가 야구 담당하다 이번에 축구 쪽으로 왔어. 야, 반갑다’하기에 ‘저 아세요?’라고 물어봤죠. 저와 나이 차이도 별로 나지 않아 보이는 사람이 반말로 이야기를 하는 경우라면 친분이 있는데 내가 기억을 못 하는 것일 수도 있잖아요.”“그랬더니 빨개진 얼굴로 ‘죄송합니다’라고 하더라고요. 저는 별생각 없었죠. 그런데 웬걸요. 다음날 신문 1면에 나한테 반말하지 마! 라는 제목의 기사로 제 이야기가 실렸더라고요
[출처] 김현회, 지도자 길 걷는 고종수에 대한 몇가지 오해 |
” |
- 2001년을 기점으로 고종수가 부진에 빠질 당시 네티즌들은 고종수가 부진에 빠진 이유가 리니지에 중독되어 훈련을 게을리 한다는 루머를 퍼뜨렸고, 이러한 루머는 삽시간에 퍼지면서, 고종수는 월급을 아덴으로 받는 선수 등의 비난을 퍼부으며 고종수의 재기를 더디게 했다. [3] 선수 생활을 은퇴한 지금도 고종수 관련글에 무조건 달리는 반응 중 하나로 하나의 개소문이 선수의 인생을 얼마나 말아먹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 기억될 것이다. 사실상 고종수는 네티즌들이 선수생명을 죽인셈이다.
같이 보기
참조
- ↑ 고종수가 한동안 슬럼프에 빠진 시기에 가진 인터뷰에서 내가 잘 못하니 주위 사람들이 연락을 안한다. 내가 잘할땐 집도 사주고 차도 사주고 여자도 만나고 이랬는데, 지금은 다 없다.라고 말하면서 연예인과 친분은 한낱 꿈이었음을 알고 후회하였다. 고종수의 교훈인지 이후 한동안 축구선수와 연애인간의 교류가 거의 없다시피 했다.
- ↑ 이 때 기자는 녹음기를 끄는척하면서 등뒤에 또다른 녹음기를 숨겨놨었다고. 무슨 007찍냐?
- ↑ 당시 고종수 리니지 설은 언론에서 과장시킨 면이 컸다. 당시 고종수는 인터뷰에서 좋아하는 게임은 무엇이냐라는 질문에 자주하지는 않고 리니지를 가끔한다라는 대답을 하였고, 이 대답이 부풀려지면서 고종수는 리니지 중독자라는 인식이 생겨버린 것이었다. 사실 고종수는 게임을 좋아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