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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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니치와 마시엘

마니치 (Radivoje Manic, 1972년 1월 16일~)는 세르비아대한민국 국적의 공격수로 부산과 인천을 거치며 8시즌을 K리그에서 뛰었다


프로필[편집]

  • 이름 : 라디보예 마니치 (Radivoje Manic)
유고슬라비아 유고세르비아-몬테네그로 세르비아-몬테네그로대한민국 대한민국
세르비아-몬테네그로 세르비아-몬테네그로세르비아 세르비아
  • 로마자 : Radivoje Manic (영어)
  • 출생지 : 유고슬라비아
  • 출생일 : 1972년 1월 16일
  • 신체 조건 : 184cm / 80kg
  • 현 소속팀 : 은퇴
  • 별명 : 바람의 아들
  • K리그 기록
연도 소속팀 리그 출장 교체 득점 도움 경고 퇴장
1996 부산 대우 로얄즈 부산 대우 로얄즈 K리그 24 16 8 0 6 0
1997 28 15 13 6 5 0
1999 39 11 9 9 7 1
2000 부산 아이콘스 부산 아이콘스 34 19 8 9 5 0
2001 27 17 8 8 5 0
2002 20 13 7 2 3 1
2004 Teamlogo iufc.png 인천 유나이티드 16 4 7 1 5 0
2005 17 17 2 4 3 0
통산 K리그 205 112 62 39 39 2
K리그 통산 기록은 리그컵 기록 포함. 2016년 8월 1일 기준
연맹 공식 DB


K리그[편집]

1996년 부산 대우 로얄즈에 입단하며 한국 프로축구 무대에 데뷔했으며, 1997년 부산 대우 로얄즈의 전관왕의 주역으로 대활약하였다. 1998년엔 J리그 세레소 오사카에 1년간 임대되기도 했으며, 1999년 임대 복귀하여 부산을 리그 준우승으로 이끄는등 로얄즈의 최전성기를 함께한 선수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후 2000년 1월, 대우 사태로 팀이 매각되고 팀의 이름이 새로 바뀌는 와중에도 계속 부산의 유니폼을 입었다. 엉뚱하게도 2002년 올스타전 하프타임 이어달리기에서 허벅지 부상을 당하고 고국으로 돌아가는 상황을 겪기도..[1] 이후 2004년 전반기를 끝내기 직전 안종복 단장과의 인연으로 인천 유나이티드에 합류한다. 인천에서도 변함없는 활약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고, 2005년에는 라돈치치, 아기치와 함께 삼치로 불리며 인천의 돌풍을 이끌었다.

2005년 5월에는 한국으로 귀화를 선언, 인천 강화도에 있는 마니산을 따 한국이름을 짓고 한국선수로 등록이 됐지만[2] 자녀의 교육비 문제로 결국 시즌 중에 고국으로 돌아가면서 한국과의 인연을 정리한다.[3]


플레이 스타일[편집]

바람의 아들이라는 별명이 말해주듯 굉장히 빠른 스피드를 가진 선수였다. 사이드 돌파 위주의 플레이를 선보이며 상대 수비수들을 애먹였는데, 마니치가 사이드를 흔들어주면 중앙으로 다른 선수들이 쇄도해들어가며 득점을 기록하는등 재미를 쏠쏠하게 봤다. 여기에 반칙 유도 능력도 좋아, PK를 많이 얻어내기도 했던 선수.[4] 여기에 정확한 킥 능력까지 보유해, 선수로서는 노장에 접어든 셈이었던 2005년까지 주전 조커로 기용되었다. 하지만 욱하는 성질이 있어 상대방과 신경전으로 쓸데없는 카드를 많이 받는게 단점이었다.[5]


에피소드[편집]

  • 은퇴후에는 고국에서 식당을 경영하고 있다고 한다.


수상[편집]


같이 보기[편집]


외부 링크[편집]

참고[편집]

  1. 이로 인해 2013년까지 올스타전 하프타임 이벤트로 이어달리기가 없어지기도 하였다. 하지만 2014년 올스타전에서 팬들의 강력한 요청에 힘입어 이어달리기 이벤트가 부활했다.
  2. 이로 인해 외국인 쿼터가 한자리 여유가 생기자, 인천에 새롭게 합류한 외국인 선수가 바로 세바스티안 선수였다.
  3. 국제학교의 교육비가 워낙 비싸다보니 감당하기도 어려워 인천 구단측에 교육비를 요청했지만, 재정이 넉넉하지 못한 인천은 이 요청을 거절했다고. 결국 마니치 선수의 은퇴 뒤 구단 코치직을 보장해주었지만 이중국적자인 마니치 선수는 2005년 10월까지 세르비아-몬테네그로 국적을 정리해야했고 결국은 고심 끝에 한국 귀화를 포기하고, 세르비아-몬테네그로로 돌아간다.
  4. 여담으로 부산 시절 마니치가 얻어낸 PK는 거의 우성용 선수가 전담해서 찼다. 이 때문에 부산 시절 우성용은 PK만 넣을 줄 아는 공격수라는 이상한(?) 이미지가 씌워지기도..
  5. 그나마 인천에 와서는 많이 나아진 편. 부산 대우 로얄즈 시절에는 그야말로 걸어다니는 시한폭탄 수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