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명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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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명섭 (1925년 3월 27일 ~ ) 대한민국의 전직 축구 선수이자 심판이다.

동생 맹광섭 씨와 함께 형제가 나란히 6ㆍ70년대 한국축구를 대표하는 심판으로 활동하였다.


프로필[편집]

  • 이름 : 맹명섭
  • 생년월일 : 1925년 3월 27일
  • 신체 : 175cm / 65kg (심판 재직 시절)
  • 현 소속팀 : 선수 생활 은퇴


선수 시절[편집]

서울 출신으로 건국대학교를 졸업한 뒤, 전매청에 입사하여 1949년 서울시대항축구대회에 참가하는 등 축구 선수로서 활동을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1950년 6.25 사변을 겪으면서 선수 생활을 일찌감치 정리하고 말았고, 이후 심판으로 활동하며 축구계에 복귀하게 된다.


심판 활동[편집]

1950년대 후반부터 부심으로 심판 활동을 시작한 맹씨는, 1963년 FIFA 국제 심판에 선임되었으며 AFC U-19 챔피언십, 세계군인축구대회, 킹스컵 등 각종 국제대회에도 참가하는 등 활발한 행보를 이어갔다. 1970년대부터는 최고참 심판으로 활동하였으며, 1977년 대한축구협회 내 분과로 심판위원회가 설립되도록 성낙운, 최광석 등과 함께 힘을 보태어 심판의 권익 향상에 공헌하기도 하였다.


에피소드[편집]

  • 당시로써는 장신인 175cm의 키에 체격이 좋았기 때문에, 심판 알기를 우습게 여겼던 196ㆍ70년대 한국축구 풍토에서도 별다른 트러블 없이 심판 생활을 이어갔다고 한다. 여기에는 맹명섭 심판의 개인 성품이 호인이었고, 인맥이 넓었던 점도 한몫하였다고.. 하지만 이런 그도 한차례 제대로 곤혹을 치렀는데, 1975년 대통령배 전국축구대회 상업은행 vs 공군 경기 도중, 맹주심이 공군의 득점을 오프사이드 선언하자 공군이 선수단을 철수시켜 버렸고 상업은행이 기권승을 거뒀던 사건을 두고 대한축구협회가 맹 주심의 오심을 인정하고 3개월간 자격 정지를 내렸던 적이 있다.[1]


같이 보기[편집]


참고[편집]

  1. 덧붙여 선수단을 철수시켰던 이순명 당시 공군 코치는 1개월 자격 정지를 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