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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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영 (1945년 10월 19일 ~ )은 대한민국 국적의 축구 선수이자 축구인이다.

1970년대를 대표하는 골키퍼로, 현재는 홍콩에 거주중.


프로필[편집]

  • 이름 : 변호영
  • 생년월일 : 1945년 10월 19일
  • 신체 : 177cm / 70kg[1]
  • 학력 : 연세대학교 졸업
  • 국가대표 경력
1972년 뮌헨 올림픽 아시아예선 대표
1974년 서독 월드컵 아시아예선 대표
1974년 테헤란 아시안게임 본선 대표
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 아시아예선 대표
(통산 A매치 33경기 출장 19실점)
  • 현 소속팀 : 선수 생활 은퇴


국내 생활[편집]

서울 출신으로 경희중학교, 배재고등학교, 연세대학교를 졸업하였다. 경희중 시절부터 배재고 1학년 때까지 농구 선수로 활약하였는데, 당시 배재고 축구부 코치였던 박재호 씨가 변호영의 점핑 능력과 순발력에 주목, 골키퍼로 뛰어보지 않겠냐고 전향을 설득했고 이에 변선수가 승낙하면서 변선수는 고등학교 2학년때부터 축구 선수의 길을 걷게 된다. 다소 늦게 축구 선수의 길을 걸었음에도 불구, 본인의 노력이 뒷받침되면서 급성장에 성공해 연세대학교 진학하기에 이르렀으며 이후 변선수가 재학한 내내 연고전에서 연세대의 무패 행진을 거두자 축구계의 주목을 받기에 이르렀다. 덕분에 1969년 대표팀에 첫 발탁의 영예를 얻었고 연세대학교를 졸업을 앞두고 각 팀의 구애를 받은 끝에, 서울은행 축구단에 입단하여 활동하였다. 서울은행 입단 후에는, 청룡 국가대표팀에도 붙박이 차출되면서 이세연과 함께 함흥철에 이은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수문장을 맡아 대활약하였다.


홍콩 1부리그 진출[편집]

1975년까지 7년간의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 생활을 청산하고, 동년 9월 홍콩 1부 리그 팀인 세이코에 입단하였다. 당시 나이는 축구선수로서 은퇴기를 훌쩍 넘은[2] 31세였음에도 세이코 구단주가 강력하게 요청하였다고.. 홍콩으로 건너간 변호영은 이후 6년 반동안 홍콩 1부 리그에서 활동하며, 76시즌과 77시즌 2회 연속 우수선수에 선정되는 등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다 1981년 해봉 팀으로 트레이너 자격으로 이적하며 은퇴를 선언하였다.


홍콩 한인회 생활[편집]

해봉 팀 해체와 함께 코치 생활도 정리한 변호영 씨는, 선수 시절부터 부업으로 운영해오던 '화랑 백화점'[3] 경영 경험을 살려 1985년부터 2005년까지 장장 20년 간 HWA RANG CO. 대표에 재임하며 의류 무역업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 때의 성공으로 홍콩 한인체육회회장, 홍콩 한인회 부회장을 거쳐 제43, 44대 홍콩 한인회 전임 회장에 선출되기도 하였으며 현재는 홍콩 한국국제학교 재단 이사장으로 활동하며 홍콩 한인회의 주요 멤버로 활동 중에 있다.


참고[편집]

  1. 1971년 기준
  2. 1970년대 당시 기준이다.
  3. 기념품 가게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