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회 대통령배 금융단축구대회는 1971년 7월 20일부터 8월 1일까지 효창운동장에서 열린 금융단 축구대회이다. 
| 제3회 대통령배 금융단축구대회
 | 
| 개요
 | 
| 시즌
 | 
1971
 | 
| 우승
 | 
외환은행
 | 
| 각종 기록
 | 
| 총 골 수
 | 
43
 | 
| 평균 골 수
 | 
1.48
 | 
| 인접 시즌
 | 
| 
 | 
1971년 대통령배 쟁탈 금융단축구대회는 동년 7월 20일부터 8월 1일까지 효창운동장에서 진행되었다. 결승전은 외환은행과 조흥은행이 격돌, 외환은행이 후반 44분 박대호 선수의 결승골로 1:0으로 승리하여 우승을 차지하였다.[1] 외환은행은 이로써 제3회 국무총리배 쟁탈 금융단 대회에 이어 4개월 여만에 2개 대회를 석권한 셈.
대회 결과편집
| 순위 | 
팀 | 
경기수 | 
승 | 
무 | 
패 | 
득점 | 
실점 | 
골득실 | 
승점
 | 
| 1 | 
조흥은행 | 
5 | 
4 | 
1 | 
0 | 
4 | 
0 | 
+4 | 
9
 | 
| 2 | 
주택은행 | 
5 | 
2 | 
3 | 
0 | 
4 | 
2 | 
+2 | 
7
 | 
| 3 | 
한일은행 | 
5 | 
3 | 
0 | 
2 | 
5 | 
4 | 
+1 | 
6
 | 
| 4 | 
제일은행 | 
5 | 
2 | 
1 | 
2 | 
3 | 
3 | 
0 | 
5
 | 
| 5 | 
산업은행 | 
5 | 
1 | 
1 | 
3 | 
2 | 
4 | 
-2 | 
3
 | 
| 6 | 
상업은행 | 
5 | 
0 | 
0 | 
5 | 
2 | 
7 | 
-5 | 
0
 | 
1971년 7월 21일 
 | 
한일은행
 | 
2–1
 | 
제일은행
 | 
 
 | 
| 
 | 
 | 
 | 
1971년 7월 21일 
 | 
조흥은행
 | 
1–0
 | 
상업은행
 | 
 
 | 
| 
 | 
 | 
 | 
1971년 7월 21일 
 | 
주택은행
 | 
1–1
 | 
산업은행
 | 
 
 | 
| 
 | 
 | 
 | 
1971년 7월 23일 
 | 
한일은행
 | 
2–1
 | 
상업은행
 | 
 
 | 
| 
 | 
 | 
 | 
1971년 7월 23일 
 | 
조흥은행
 | 
1–0
 | 
산업은행
 | 
 
 | 
| 
 | 
 | 
 | 
1971년 7월 23일 
 | 
주택은행
 | 
0–0
 | 
제일은행
 | 
 
 | 
| 
 | 
 | 
 | 
1971년 7월 25일 
 | 
조흥은행
 | 
1–0
 | 
제일은행
 | 
 
 | 
| 
 | 
 | 
 | 
1971년 7월 25일 
 | 
주택은행
 | 
1–0
 | 
한일은행
 | 
 
 | 
| 
 | 
 | 
 | 
1971년 7월 25일 
 | 
산업은행
 | 
1–0
 | 
상업은행
 | 
 
 | 
| 
 | 
 | 
 | 
1971년 7월 29일 
 | 
주택은행
 | 
2–1
 | 
상업은행
 | 
 
 | 
| 
 | 
 | 
 | 
1971년 7월 29일 
 | 
제일은행
 | 
1–0
 | 
산업은행
 | 
 
 | 
| 
 | 
 | 
 | 
1971년 7월 29일 
 | 
조흥은행
 | 
1–0
 | 
한일은행
 | 
 
 | 
| 
 | 
 | 
 | 
| 순위 | 
팀 | 
경기수 | 
승 | 
무 | 
패 | 
득점 | 
실점 | 
골득실 | 
승점
 | 
| 1 | 
외환은행 | 
4 | 
3 | 
1 | 
0 | 
8 | 
1 | 
+7 | 
7
 | 
| 2 | 
서울은행 | 
4 | 
2 | 
1 | 
1 | 
4 | 
2 | 
+2 | 
5
 | 
| 3 | 
기업은행 | 
4 | 
1 | 
2 | 
1 | 
2 | 
2 | 
0 | 
4
 | 
| 4 | 
신탁은행 | 
4 | 
1 | 
0 | 
3 | 
3 | 
7 | 
-4 | 
2
 | 
| 5 | 
국민은행 | 
4 | 
1 | 
0 | 
3 | 
2 | 
7 | 
-5 | 
2
 | 
1971년 7월 20일 
 | 
기업은행
 | 
0–0
 | 
서울은행
 | 
 
 | 
| 
 | 
 | 
 | 
1971년 7월 20일 
 | 
신탁은행
 | 
1–0
 | 
국민은행
 | 
 
 | 
| 
 | 
 | 
 | 
1971년 7월 22일 
 | 
기업은행
 | 
2–1
 | 
신탁은행
 | 
 
 | 
| 
 | 
 | 
 | 
1971년 7월 22일 
 | 
외환은행
 | 
1–0
 | 
서울은행
 | 
 
 | 
| 
 | 
 | 
 | 
1971년 7월 24일 
 | 
외환은행
 | 
3–0
 | 
신탁은행
 | 
 
 | 
| 
 | 
 | 
 | 
1971년 7월 24일 
 | 
국민은행
 | 
1–0
 | 
기업은행
 | 
 
 | 
| 
 | 
 | 
 | 
1971년 7월 26일 
 | 
국민은행
 | 
1–4
 | 
외환은행
 | 
 
 | 
| 
 | 
 | 
 | 
1971년 7월 26일 
 | 
서울은행
 | 
2–1
 | 
신탁은행
 | 
 
 | 
| 
 | 
 | 
 | 
1971년 7월 28일 
 | 
서울은행
 | 
2–0
 | 
국민은행
 | 
 
 | 
| 
 | 
 | 
 | 
1971년 7월 28일 
 | 
외환은행
 | 
0–0
 | 
기업은행
 | 
 
 | 
| 
 | 
 | 
 | 
결승 토너먼트편집
1971년 7월 31일 
 | 
외환은행
 | 
1–0
 | 
주택은행
 | 
 
 | 
| 
 | 
 | 
 | 
1971년 7월 31일 
 | 
조흥은행
 | 
1–0
 | 
서울은행
 | 
 
 | 
| 
 | 
 | 
 | 
3ㆍ4위전편집
1971년 8월 1일 
 | 
주택은행
 | 
1–0
 | 
서울은행
 | 
 
 | 
| 
 | 
 | 
 | 
1971년 8월 1일 
 | 
외환은행
 | 
1–0
 | 
조흥은행
 | 
 
 | 
| 
 | 
 | 
 | 
- 한 여름에 대회를 치렀기 때문에, 장마와 폭염의 영향으로 그라운드 사정이 매우 좋지 않았으며 선수들도 컨디션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 특히 결승전이 치러진 8월 1일은 섭씨 32~3도를 오르내리는 폭염이 이어졌을 정도. 결국 이러한 원인들이 겹치면서, 경기들도 반칙이 난무하고 득점도 많이 터지지 않았다는 평. 당연히 관중 동원에도 실패하였다고 한다.
 
- 한편 대표팀 선수들이 차출됨에 따라, 상대적으로 어린 선수들이 대회 기간 내내 활약이 두드러졌다. 대표적인 예가 주택은행의 주태용, 외환은행의 박대호, 한일은행의 이종술 등이었으며, 특히 박대호 선수는 대회 우승을 확정짓는 결승골을 기록하였으며, 대회 총 2골을 기록하며 대회 득점 1위에 랭크되기도 하였다.[3]
 
같이 보기편집
- ↑ 조흥은행은 윤병인이 페널티킥을 얻어냈으나, 외환은행의 김덕길 선방에 막혀 득점이 무산되었던 것이 뼈아팠었다고.
 
- ↑ 특히 신탁은행은 필드 플레이어의 핵심인 정강지와 안원남이 차출되었을 뿐만 아니라 1선발 이세연와 2선발 손조명까지 골키퍼가 한꺼번에 차출되면서, 실점을 막을 재간이 없었다. 결국 7실점을 기록하며 예선 탈락의 고배를 마신다.
 
- ↑ 동 대회 득점 1위는 총 10명이 2골을 기록하여 달성하였다. 에이스 선수들이 모조리 차출된 탓에 득점자도 분산된 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