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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문서: 160픽셀|섬네일|수원 시절의 졸리 '''졸탄 사보''' (Zoltan Sabo 1972년 5월 26일~ )은 세르비아 출신의 외국인 선수로 2000년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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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졸리하면 2001년 대전팬 난입사건을 빼 놓을 수 없다. 2001년 6월 24일 수원과 [[대전 시티즌]]의 경기가 벌어진 [[수원종합운동장]]문제의 발단은 후반 45분 [[데니스]]가 반칙으로 얻어낸 프리킥을 빨리 차려고 실랑이를 벌이다 졸리와 대전 [[콜리]]가 징계를 받는데서 시작됐다. [[왕종국]] 주심은 콜리에게 퇴장을 지시한뒤 졸리에게는 옐로카드를 뽑은 뒤 곧 이어 레드카드를 내 보였다. 졸리는 손가락 하나(경고 1회를 뜻함)를 들어 보인 뒤 태연히 자기편 스크럼속에 들어가버렸다. 관중들은 분명 퇴장당했어야 할 졸리가 경기에 참가해 의아스럽게 여겼다. 공교롭게도 [[고종수]]가 찬 왼발 프리킥이 졸리의 키를 넘어 골문안으로 들어갔다. 수원이 3_2로 앞서 나간 순간. 대전 서포터스는 '''왜 퇴장 당한 선수가 경기에 참여하는가, 노 골이다''' 며흥분, 경기장에 난입했고 이태호 감독 등 대전 관계자들이 격렬하게 항의해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이에 대해 왕 주심은 "앞서 수원 조성환에게 준 경고를 졸리에게 준 것으로 착각했다가 기록 카드를 보니 아니어서 졸리에 대한 판정을 번복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대전 서포터들도 심판 면담을 요구하며 경기장 근처를 떠나지 않고 항의를 벌였다. 결국, 이 사건으로 인해 왕종국 주심은 사퇴하였지만, 이후 대전팬들이 왕종국 심판을 비판하는 전단을 게재, 왕종국 주심은 대전 서포터스를 명예 훼손, 초상권 침해, 허위사실유포 등의 혐의로 고소하며, 이 사태는 2001년 내내 계속되었다.
 
* 졸리하면 2001년 대전팬 난입사건을 빼 놓을 수 없다. 2001년 6월 24일 수원과 [[대전 시티즌]]의 경기가 벌어진 [[수원종합운동장]]문제의 발단은 후반 45분 [[데니스]]가 반칙으로 얻어낸 프리킥을 빨리 차려고 실랑이를 벌이다 졸리와 대전 [[콜리]]가 징계를 받는데서 시작됐다. [[왕종국]] 주심은 콜리에게 퇴장을 지시한뒤 졸리에게는 옐로카드를 뽑은 뒤 곧 이어 레드카드를 내 보였다. 졸리는 손가락 하나(경고 1회를 뜻함)를 들어 보인 뒤 태연히 자기편 스크럼속에 들어가버렸다. 관중들은 분명 퇴장당했어야 할 졸리가 경기에 참가해 의아스럽게 여겼다. 공교롭게도 [[고종수]]가 찬 왼발 프리킥이 졸리의 키를 넘어 골문안으로 들어갔다. 수원이 3_2로 앞서 나간 순간. 대전 서포터스는 '''왜 퇴장 당한 선수가 경기에 참여하는가, 노 골이다''' 며흥분, 경기장에 난입했고 이태호 감독 등 대전 관계자들이 격렬하게 항의해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이에 대해 왕 주심은 "앞서 수원 조성환에게 준 경고를 졸리에게 준 것으로 착각했다가 기록 카드를 보니 아니어서 졸리에 대한 판정을 번복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대전 서포터들도 심판 면담을 요구하며 경기장 근처를 떠나지 않고 항의를 벌였다. 결국, 이 사건으로 인해 왕종국 주심은 사퇴하였지만, 이후 대전팬들이 왕종국 심판을 비판하는 전단을 게재, 왕종국 주심은 대전 서포터스를 명예 훼손, 초상권 침해, 허위사실유포 등의 혐의로 고소하며, 이 사태는 2001년 내내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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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졸탄 사보가 졸리가 된 이유는 수원 구단이 졸리가 영입되기 전까지 맹활약을 했던 올리처럼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졸리로 지었다고 한다. <del> 다행히 제몫은 해주었으니 이름은 잘 지은 셈 </del>
  
 
== 외부 링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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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0월 13일 (목) 13:46 판

수원 시절의 졸리

졸탄 사보 (Zoltan Sabo 1972년 5월 26일~ )은 세르비아 출신의 외국인 선수로 2000년부터 2001년까지 K리그에서 활약한 선수이다. 등록명은 졸리



프로필

  • 이름 : Zoltan Sabo
  • K리그 기록 :
소속팀 연도 출장 교체 득점 도움 경고 퇴장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00 22 1 0 0 4 0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01 24 1 0 1 11 1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02 2 0 0 0 0 1
통산(K리그) - 48 2 0 1 15 2
K리그 통산기록은 리그컵기록 포함. 2011년 3월 1일 기준.


K리그 이전

1990시즌 자국리그의 Hajduk Kula에서 데뷔한 졸리는 1991년부터 1996년까지 FK Vojvodina 팀에서 활약하였고, 1996년부터 2000년까지 파르티잔 베오그라드팀에서 활약하였다. 동구권에선 나름 인지도가 있었던 선수였다.

K리그

2000년 시즌 초반 부진으로 성적이 급전직하한수원 삼성 블루윙즈는 외국인 선수 리빌딩을 하고 있었다. 샤샤비탈리를 모두 일본으로 보낸 수원은, 1997년부터 수원의 수비 중심으로 활약해온 올리를 J리그 제프 유나이티드로 6개월 임대후 완전이적으로 보냈다. 이에 수원은 올리의 공백을 메워줄 듬직한 수비자원이 필요했고, 바데아의 추천을 받아 졸리를 데려오게 되었다. 이적료는 40만달러에 연봉은 7만2000달러였다. 후반기에 합류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졸리는 19경기에 출전하여, 주특기인 대인마크와 공중볼 경합을 바탕으로 올리의 공백을 무색케 할 만큼 좋은 활약을 보여주며, 시즌초반 곤두박질을 치던 팀을 끌어올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다. 2001년은 졸리의 한해로 불리게 되었는데, 2001년 제20회 아시아클럽선수권에서 졸리는 안정감있는 수비를 바탕으로 수원의 아시아 재패에 큰 공헌을 하였다. 이를 인정받아 졸리는 제20회 아시아클럽선수권대회 MVP를 수상하며 최고의 한해를 보냈다. 그러나 2002년 졸리는 아디다스컵 2경기에만 출장해 1퇴장만을 기록하고 J리그의 아비스파 후쿠오카로 이적하게 되었다.

K리그 이후

2002년 아비스파 후쿠오카에서 뛴 졸리는 2002-2003시즌 Zalaegerszegi TE 팀과, 2003-2004시는 그리스의 AEK Larnaca, 2004-2005 Mladost Apatin 팀을 거쳐 2005년부터 2008년까지 Cement Beočin에서 활약한 뒤 선수생활을 마감하였다. 선수생활 은퇴이후 세르비아의 FK Radnički Sombor팀의 감독을 역임하고 있다.

에피소드

  • 올리는 지능적이고 터프한 수비수였다면, 졸리는 거친 수비수였다. 경고와 퇴장을 밥먹듯이 먹으면서도 좋은 수비를 보여주어 김호 감독의 신임을 얻었다.
  • 졸리하면 2001년 대전팬 난입사건을 빼 놓을 수 없다. 2001년 6월 24일 수원과 대전 시티즌의 경기가 벌어진 수원종합운동장문제의 발단은 후반 45분 데니스가 반칙으로 얻어낸 프리킥을 빨리 차려고 실랑이를 벌이다 졸리와 대전 콜리가 징계를 받는데서 시작됐다. 왕종국 주심은 콜리에게 퇴장을 지시한뒤 졸리에게는 옐로카드를 뽑은 뒤 곧 이어 레드카드를 내 보였다. 졸리는 손가락 하나(경고 1회를 뜻함)를 들어 보인 뒤 태연히 자기편 스크럼속에 들어가버렸다. 관중들은 분명 퇴장당했어야 할 졸리가 경기에 참가해 의아스럽게 여겼다. 공교롭게도 고종수가 찬 왼발 프리킥이 졸리의 키를 넘어 골문안으로 들어갔다. 수원이 3_2로 앞서 나간 순간. 대전 서포터스는 왜 퇴장 당한 선수가 경기에 참여하는가, 노 골이다 며흥분, 경기장에 난입했고 이태호 감독 등 대전 관계자들이 격렬하게 항의해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이에 대해 왕 주심은 "앞서 수원 조성환에게 준 경고를 졸리에게 준 것으로 착각했다가 기록 카드를 보니 아니어서 졸리에 대한 판정을 번복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대전 서포터들도 심판 면담을 요구하며 경기장 근처를 떠나지 않고 항의를 벌였다. 결국, 이 사건으로 인해 왕종국 주심은 사퇴하였지만, 이후 대전팬들이 왕종국 심판을 비판하는 전단을 게재, 왕종국 주심은 대전 서포터스를 명예 훼손, 초상권 침해, 허위사실유포 등의 혐의로 고소하며, 이 사태는 2001년 내내 계속되었다.
  • 졸탄 사보가 졸리가 된 이유는 수원 구단이 졸리가 영입되기 전까지 맹활약을 했던 올리처럼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졸리로 지었다고 한다. 다행히 제몫은 해주었으니 이름은 잘 지은 셈

외부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