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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안이 가난했던것과 연관이 있겠지만, 노선수는 돈에 대한 애착이 매우 강한편이다. 때문에 구단 프론트와의 충돌이 잦은 편이다. 특히, [[전남 드래곤즈]] 프론트의 경우 노병준 선수하면 이를 갈 정도로 사이가 완전히 소원해진 상태이다. | * 집안이 가난했던것과 연관이 있겠지만, 노선수는 돈에 대한 애착이 매우 강한편이다. 때문에 구단 프론트와의 충돌이 잦은 편이다. 특히, [[전남 드래곤즈]] 프론트의 경우 노병준 선수하면 이를 갈 정도로 사이가 완전히 소원해진 상태이다. | ||
+ | * 2008년, 이적시장 마감 직전 한양대시절 은사인 전 포항 수석코치&감독대행 박창현이 손을 내밀어 1억에 포항으로 이적하게 도왔고 이적 후 바로 부상을 당했지만 슈퍼서브로 화려하게 부활하며 2009년 주전으로 발 돋음 하였었다. | ||
== 참고 == | == 참고 == |
2012년 1월 6일 (금) 18:43 판
노병준(1979년 9월 29일~)는 대한민국 출신의 축구선수로 2002년부터 K리그에서 활동하고 있다.
프로필
- 이름 : 노병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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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소년 생활
부산에서 초,중,고를 모두 나왔으며, 장산국민학교 시절부터 축구선수로 활동했다. 동래고 재학중, 우연찮게 동래고 경기를 관전했던 이회택 당시 한양대 감독에 눈에 들어, 한양대로의 진학을 결정하였다. 한양대에서 대활약하며 국가대표로까지 뽑히는 등 대학권에서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통했으며, 한양대 졸업 후 은사인 이회택 감독이 지휘봉을 잡고 있던 전남 드래곤즈에 입단하게 되었다.
프로 생활
전남 입단 이후
2002년 전남 드래곤즈에 계약금 2억 5천만원, 연봉 2천만원에 4년 계약으로 입단하였다. 전남 입단 당시, 많은 기대를 모았으나 메디컬 테스트에서 B형 간염 보균자임이 밝혀지면서 주로 교체출장 요원으로 경기를 나설수밖에 없었다. 조금만 경기를 뛰어도 지친다는 세간의 선입견 속에서 맘고생이 심했던 노선수는, 재활을 거쳐 어느정도 자신의 신체적 조건을 극복하면서 2003시즌부터 본격적으로 활약하기 시작하였고, 당시 전남에서 몇안되는 밥값하는 공격수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1]
전남에서 4년동안 활약한 노선수는 2005시즌 종료 후, FA가 되었는데 전남측은 나름대로 노선수와 재계약하려고 꽤 높은 금액을 제시했지만[2] 노선수 에이전트는 연봉 5억..; 을 불러 전남측을 대경실색케 했다. 결국 원소속구단과 FA 협상이 결렬되고 FA 시장에 나온 노병준 선수는 당시 창단 구단이었던 경남 FC의 구애로 협상을 벌였지만 역시 경남측에도 연봉 5억을 요구해 협상이 결렬되었다.[3] 결국 어느 누구도 영입제의를 안하면서 FA 미아가 되버린 노선수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인 (거기에 에이전트도 같은) 홍순학, 이정운 선수와 함께 유럽 진출을 모색한다.[4]
오스트리아 진출
2006년 2월 오스트리아 분데스리가의 그라츠 AK (소위 GAK) 에 연습생으로 입단한 노선수는, 관계자들의 좋은 평가를 얻으며 입단계약을 추진했으나 전남 드래곤즈측이 노선수의 이적 동의서를 발급하지 않으면서 GAK 입단이 연기되었고, 이에 노선수측과 전남측은 엄청난 신경전을 벌였다. 워낙 전남에서 안좋게 떠났던 노선수였기에 전남측도 좀 치졸한 짓을 한 것 사실이었고, 노선수도 이에 앙심을 품고 전남 드래곤즈 공홈 게시판에 두고보자는 식으로 비방글을 게제함에 따라 양 측의 앙금은 넘을 수 없는 선을 넘어 완전히 틀어졌다. 결국 FIFA와 한국프로축구연맹의 중재로 이적 동의서가 발급된 노선수는 2006년 7월 정식계약을 체결하고 데뷔전에서 도움을 기록하는등 좋은 모습을 보이면서 숨겨진 유럽파 선수로 한동안 조명을 받았다.
그러나 오랫동안 컨디션 조절을 못한탓에 초반의 임펙트있는 활약도에 비해 갈수록 체력이 딸려 고전하는 모습을 보였고, 결국 2006/2007 시즌 종료 후, GAK 측이 계약해지를 통보함에 따라 자신이 수개월전 진흙탕 싸움을 벌였던 전남으로 복귀해야만 했다.[5] 이래서 세상일은 모르는거니 적을 만들지 말라고 하는거인듯..;;
국내 복귀와 포항 입단
복귀한 노선수에 대한 전남의 반응은 냉담했다. 사실 당연한거지만. 6개월동안 2군 무대에서도 모습을 보이지 않던 노선수는 2007 시즌 종료 후, 이적을 모색했고 전남은 어디든 좋으니 나가라는 반응을 보였다. 이에 부산 아이파크를 비롯해 여러팀들이 노선수에 대해 영입의사를 보였고, 결국 협상 끝에 이적료 1억, 연봉 1억에 포항 스틸러스로 이적하게되었다. 포항 소속으로 노병준 선수는 그야말로 대박을 터뜨리기에 이른다.
플레이 스타일
- 경기장 사이드로 넓게 퍼져 볼을 받은 후 중앙으로 드리블 돌파를 즐겨함. - 퍼스트 터치가 일품이며, 페널티에리어 근처에서 골대 구석으로 감아차는 프리킥 또한 정확한 편. - 선발로 나왔을때 보다 상대팀 선수들이 지친 후반 조커로 나왔을때 뒷공간을 파고 드는 스타일을 즐겨함.
에피소드
- 유년기 시절에는 집안 형편이 어려워 축구부 회비를 당시 부산시 축구협회 부회장이었던 박수관 씨가 지원한 바 있다.
- 집안이 가난했던것과 연관이 있겠지만, 노선수는 돈에 대한 애착이 매우 강한편이다. 때문에 구단 프론트와의 충돌이 잦은 편이다. 특히, 전남 드래곤즈 프론트의 경우 노병준 선수하면 이를 갈 정도로 사이가 완전히 소원해진 상태이다.
- 2008년, 이적시장 마감 직전 한양대시절 은사인 전 포항 수석코치&감독대행 박창현이 손을 내밀어 1억에 포항으로 이적하게 도왔고 이적 후 바로 부상을 당했지만 슈퍼서브로 화려하게 부활하며 2009년 주전으로 발 돋음 하였었다.
참고
- ↑ 2001 ~ 2003년 사이, 전남은 약 120억에 가까운 물량공세를 퍼부으며 각급 대표 공격수와 외국인 선수들을 수집했지만, 모조리 먹튀만 뽑아 실패했던 비참한 역사가 있다. 결국 2004년 스카우트 비리 파동이 터지면서 왜 실패할 수밖에 없었는지 대략 이유가 밝혀지긴 했지만.. 그나마 이때의 흑역사급 스카우트 과정으로 뽑힌 선수 중, 현재까지 K리그에서 뛰고있는 유일한 선수가 노병준 선수다.
- ↑ 스카우트 비리 파문이 터진 직후, 포스코측이 전남의 예산을 엄청나게 깍았기 때문에 당시 전남은 돈이 상당히 쪼들리는 상태였다. 그럼에도 꽤 섭섭지않은 금액을 노선수에게 제시했었다는게 전남측의 증언이다.
- ↑ 당시 노선수의 FA 이적료가 대략 7 ~ 8억이었기 때문에, 경남이 미치지않고서야 10억이 넘는 돈을 주고 노선수를 데려올리 만무했다.
- ↑ 말이 좋아 유럽 진출 모색이지, 결국 자기가 원하는 돈 안 맞춰줬다고 자기 축구인생을 망칠지도 모르는 결정을 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나마 노선수는 후에 재기했지만, 홍선수랑 이선수는 이때를 계기로 축구 인생 망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듯.
- ↑ 노병준 선수는 FA 이적료가 발생하는 신분이었기 때문에, 전남 외 타 K리그 구단이 노선수를 영입하고자 한다면 수억의 이적료를 지불해야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노선수의 에이전트에게 데일대로 데인 구단들은 노선수 영입을 아무도 타진하지 않았고, 노선수는 얄짤없이 전남으로 복귀할수밖에 없었다.
경력
- 2002 ~ 2005 : 전남 드래곤즈 / K리그
- 2006 ~ 2007 : 그라츠 AK / 오스트리아 분데스리가
- 2007 : 전남 드래곤즈 / K리그
- 2008 ~ 2010 : 포항 스틸러스 / K리그
- 2010.7 ~ 2010.12 : 울산 현대 / K리그 (6개월 임대)
- 2011 ~ 현재 : 포항 스틸러스 / K리그
같이 보기
외부 링크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142449&PAGE_CD= (노병준 선수 관련 2003년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