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7년 '''[[아시안 챔피언 클럽 토너먼트]]'''라는 명칭으로 처음 개최되었고, 당시 한국의 [[대한중석]]을 포함해 8팀이 참가하였던바 있다. 1972년 이후, 중단되었다가 1986년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으로 부활하였다. 대한민국의 클럽은 67/68 아시안 챔피언 클럽 토너먼트에서 [[대한중석]] 팀이 첫 참가한 것을 시작으로, [[양지 축구단]]과 육군 팀 등이 참가하였으며 1969년에 양지 축구단이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 준우승을 차지하는등, 좋은 모습을 보였다. 1986년 부활한 후에는 1986/87 아시아 클럽 챔피언십에서 [[대우 로얄즈]]가 전승으로 우승을 차지해 대한민국 축구팀이 첫 아시아 대회 정상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이어 1987년 아시아 클럽 우승팀 자격으로 참가한 [[아프로 아시안 컵]]에서도 대우 로얄즈가 우승을 차지하며 아프리카 - 아시아 통합 챔피언 자리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1986년 대우의 우승 이후 한국 축구팀들은 대회 참가로 얻을 수 있는 메리트의 결여 및 주요 선수들의 [[국가대표]] 전지훈련 차출 등으로 리그도 치루기 빡빡해진다는 등의 이유로 수년간 불참하였고 1994/95 아시아 클럽 챔피언십부터 다시 참가하기 시작하였다. 재참가를 시작하고 2년만인 1995년 [[일화 천마]]가 우승을 차지하였다. | 1967년 '''[[아시안 챔피언 클럽 토너먼트]]'''라는 명칭으로 처음 개최되었고, 당시 한국의 [[대한중석]]을 포함해 8팀이 참가하였던바 있다. 1972년 이후, 중단되었다가 1986년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으로 부활하였다. 대한민국의 클럽은 67/68 아시안 챔피언 클럽 토너먼트에서 [[대한중석]] 팀이 첫 참가한 것을 시작으로, [[양지 축구단]]과 육군 팀 등이 참가하였으며 1969년에 양지 축구단이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 준우승을 차지하는등, 좋은 모습을 보였다. 1986년 부활한 후에는 1986/87 아시아 클럽 챔피언십에서 [[대우 로얄즈]]가 전승으로 우승을 차지해 대한민국 축구팀이 첫 아시아 대회 정상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이어 1987년 아시아 클럽 우승팀 자격으로 참가한 [[아프로 아시안 컵]]에서도 대우 로얄즈가 우승을 차지하며 아프리카 - 아시아 통합 챔피언 자리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1986년 대우의 우승 이후 한국 축구팀들은 대회 참가로 얻을 수 있는 메리트의 결여 및 주요 선수들의 [[국가대표]] 전지훈련 차출 등으로 리그도 치루기 빡빡해진다는 등의 이유로 수년간 불참하였고 1994/95 아시아 클럽 챔피언십부터 다시 참가하기 시작하였다. 재참가를 시작하고 2년만인 1995년 [[일화 천마]]가 우승을 차지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