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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춘계 대학축구연맹전에서 득점왕을, 같은해 추계연맹전에서 MVP를 수상하며 연거푸 대학축구계를 평정했던 대형 신인이었다. 특히 2003년 처음 제정되었던 제 1회 대학축구대상에서 1학년임에도 MVP를 수상해 축구계의 주목을 받았다. | 2003년 춘계 대학축구연맹전에서 득점왕을, 같은해 추계연맹전에서 MVP를 수상하며 연거푸 대학축구계를 평정했던 대형 신인이었다. 특히 2003년 처음 제정되었던 제 1회 대학축구대상에서 1학년임에도 MVP를 수상해 축구계의 주목을 받았다. | ||
== K-리그 == | == K-리그 == | ||
− | 광운대를 중퇴하고, 2003년 12월 쌍둥이 동생 [[여동원]]과 함께 나란히 계약금 1억 5천만원 연봉 2천만원, 5년 계약으로 신생구단 [[인천 유나이티드]]에 입단하는데 성공했다. 특히, 여승원 선수는 [[인천 유나이티드]]의 제 1호 선수라는 타이틀도 얻었다. 그러나, 기대를 받으며 인천에 입단한 두 선수 모두 인천의 외국인 공격수와의 주전경쟁에서 실패하며 [[여동원]] 선수는 2006년, 여승원 선수는 2008년 각각 [[인천 유나이티드]]에서 방출되고 말았다. | + | 광운대를 중퇴하고, 2003년 12월 쌍둥이 동생 [[여동원]]과 함께 나란히 계약금 1억 5천만원 연봉 2천만원, 5년 계약으로 신생구단 [[인천 유나이티드]]에 입단하는데 성공했다. 특히, 여승원 선수는 [[인천 유나이티드]]의 제 1호 선수라는 타이틀도 얻었다. 그러나, 기대를 받으며 인천에 입단한 두 선수 모두 인천의 외국인 공격수와의 주전경쟁에서 실패하며 [[여동원]] 선수는 2006년, 여승원 선수는 2008년 각각 [[인천 유나이티드]]에서 방출되고 말았다. 이후 네셔널리그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면서 2010년 다시 [[K리그]] [[수원 삼성]]에 입단했지만, 좀처럼 출장 기회를 얻지 못하고 그나마 얻은 기회에서도 골과는 거리가 있는 모습을 보이다가 [[윤성효]]감독 부임 이후에는 존재감이 없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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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플레이 스타일 == | == 플레이 스타일 == | ||
슈팅 횟수에 비해, 골 결정력이 심각할 정도로 낮다. (K-리그 개인통산 102회 슈팅 중 5골 기록) 그러나, [[내셔널리그]]에서는 불과 8개월동안 7골을 쏟아넣은걸 보면 능력의 문제라기 보다는 정신적인 문제가 더 크다고 본다. 넓게 많이 움직여주는 스타일이고 타겟 플레이에도 익숙하며 상당히 유연한 플레이를 즐겨 하지만, 슈팅을 하면 골문 안쪽보다는 골대에 더 친한 모습을 보인다. 이는 수원에서도 마찬가지. | 슈팅 횟수에 비해, 골 결정력이 심각할 정도로 낮다. (K-리그 개인통산 102회 슈팅 중 5골 기록) 그러나, [[내셔널리그]]에서는 불과 8개월동안 7골을 쏟아넣은걸 보면 능력의 문제라기 보다는 정신적인 문제가 더 크다고 본다. 넓게 많이 움직여주는 스타일이고 타겟 플레이에도 익숙하며 상당히 유연한 플레이를 즐겨 하지만, 슈팅을 하면 골문 안쪽보다는 골대에 더 친한 모습을 보인다. 이는 수원에서도 마찬가지. |
2010년 10월 18일 (월) 16:46 판
여승원(1984년 5월 1일~)는 대한민국 국적의 축구선수로, 2004년부터 K-리그에서 활동중인 공격수이다.
프로필
- 이름 : 여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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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소년 생활
2003년 춘계 대학축구연맹전에서 득점왕을, 같은해 추계연맹전에서 MVP를 수상하며 연거푸 대학축구계를 평정했던 대형 신인이었다. 특히 2003년 처음 제정되었던 제 1회 대학축구대상에서 1학년임에도 MVP를 수상해 축구계의 주목을 받았다.
K-리그
광운대를 중퇴하고, 2003년 12월 쌍둥이 동생 여동원과 함께 나란히 계약금 1억 5천만원 연봉 2천만원, 5년 계약으로 신생구단 인천 유나이티드에 입단하는데 성공했다. 특히, 여승원 선수는 인천 유나이티드의 제 1호 선수라는 타이틀도 얻었다. 그러나, 기대를 받으며 인천에 입단한 두 선수 모두 인천의 외국인 공격수와의 주전경쟁에서 실패하며 여동원 선수는 2006년, 여승원 선수는 2008년 각각 인천 유나이티드에서 방출되고 말았다. 이후 네셔널리그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면서 2010년 다시 K리그 수원 삼성에 입단했지만, 좀처럼 출장 기회를 얻지 못하고 그나마 얻은 기회에서도 골과는 거리가 있는 모습을 보이다가 윤성효감독 부임 이후에는 존재감이 없어졌다.
플레이 스타일
슈팅 횟수에 비해, 골 결정력이 심각할 정도로 낮다. (K-리그 개인통산 102회 슈팅 중 5골 기록) 그러나, 내셔널리그에서는 불과 8개월동안 7골을 쏟아넣은걸 보면 능력의 문제라기 보다는 정신적인 문제가 더 크다고 본다. 넓게 많이 움직여주는 스타일이고 타겟 플레이에도 익숙하며 상당히 유연한 플레이를 즐겨 하지만, 슈팅을 하면 골문 안쪽보다는 골대에 더 친한 모습을 보인다. 이는 수원에서도 마찬가지.
에피소드
- 쌍둥이 동생인 여동원과 함께 전농초등학교 시절부터 나란히 공격수로 활약했으며 광운전자공고 시절부터 쌍둥이 공격수로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두 선수 모두 나란히 인천 유나이티드에 입단하였으나 두 선수 모두 기대대로 성장하지는 못해 아쉬움을 남겼다.
경력
- 2004 - 2008 : 인천 유나이티드 / K-리그
- 2006 - 2007. 11 : 광주 상무 / K-리그
- 2010 - 현재 : 수원 삼성 블루윙즈 / K-리그
같이 보기
- 여동원 (여승원 선수의 동생)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