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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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감독 시절 윤성효

윤성효(尹星孝, Yoon, Sung Hyo, 1962년 5월 18일~)는 대한민국 출신의 축구 선수이자 축구인으로 1986년부터 2000년까지 K리그에서 활동한 수비수로 활동하였다.


프로필[편집]

선수 프로필[편집]

  • 이름 : 윤성효
  • 출생일 : 1962년 5월 18일
  • 신체 : 170cm / 70kg
  • 수상 경력
1986년 K리그 시즌 베스트 11 MF 부문 선정
1996년 K리그 시즌 베스트 11 DF 부문 선정
  • 현 소속팀 : 선수 생활 은퇴


  • 프로 기록
소속팀 연도 출장 교체 득점 도움 경고 퇴장
한일은행 축구단 한일은행 축구단 1986 20 1 5 1 3 0
포항제철 아톰즈 포항제철 아톰즈 1987 20 8 2 1 0 0
1988 7 1 1 0 1 0
1989 22 9 1 2 1 0
1990 25 7 0 0 2 0
1991 21 10 0 1 2 0
1992 33 10 0 3 4 0
1993 34 20 2 1 1 0
대우 로얄즈 대우 로얄즈 1994 20 3 2 1 2 0
1995 27 7 0 2 7 0
Teamlogo sbfc.png 수원 삼성 블루윙즈 1996 34 2 5 1 9 0
1997 26 2 3 1 3 0
1998 19 16 2 0 2 0
2000 3 3 0 0 1 0
통산 (K리그) - 311 99 23 14 38 0
K리그 통산 기록은 리그컵 기록 포함. 2010년 7월 1일 기준.
연맹 공식 DB


지도자 프로필[편집]

경력[편집]

연도 경력
1999년 Teamlogo sbfc.png 수원 삼성 블루윙즈 2군 코치
2000년 플레잉코치
2001 ~ 2003년 코치
2004 ~ 2010년 대한민국 숭실대학교 축구부 감독
2010년 6월 ~ 2012년 12월 Teamlogo sbfc.png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12년 12월 ~ 2015년 7월 Teamlogo bifc.png 부산 아이파크
2016년 12월 ~ 현재 Teamlogo gimhaefc.png 김해시청 축구단

K리그 감독 기록[편집]

소속팀 연도 리그 순위 컵대회 FA컵 ACL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10 10 5 4 7위 4강 우승 8강
2011 18 4 10 4위 4강 준우승 4강
2012 20 13 11 4위 컵대회 미개최 8강 진출권 없음
부산 아이파크 2013 14 10 14 6위 4강
2014
통산 (K리그) - 48 22 25


선수 생활[편집]

유소년 생활[편집]

경상남도 김해시 출신으로, 부산광역시의 동래중, 동래고, 서울 연세대학교를 나왔다. 동래중 시절까지 학업과 체육 특기생 생활을 병행하다가 동래고 시절부터 본격적으로 전업 축구선수를 꿈꾼 특이한 케이스이기도.. 동래고 시절부터 청소년대표에 뽑히지는 않았지만, 두각을 나타내는 고교 수비수로 활약하여 서독 재한인협회의 초청으로 서독 축구캠프에 참가하기도 하였다.[1] 동래고 졸업 후, 연세대학교에 진학한 윤성효는 1,2학년 시절 래프트 윙으로 뛰며 곧잘 골을 성공시키는 공격 자원으로 활동하였다. 그러나 3학년 무렵부터 연세대 축구부에서 거의 출장시간을 갖지못하였고,[2] 대학 졸업을 앞두고 경기를 거의 소화하지 못한 윤성효는 연세대 졸업 후, 가까스로 한일은행 축구단에 입단하며 축구 생활을 계속해나갈 수 있었다.


프로 생활[편집]

1998년 리그 우승 당시 윤성효 (가운데)

한일은행 축구단에서 김호 감독의 지휘 아래 급성장하며 K리그 무대에 안착하였다. 이후 포항제철 아톰즈, 대우 로얄즈를 거쳐 1996년 수원의 창단 멤버로 입단하였고,[3] 98, 99년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리그 2연패를 이끌고 2000년 최종적으로 선수 생활을 은퇴했다. 은퇴 후, 수원은 윤성효 선수가 달았던 등번호 38번을 영구결번으로 지정하였는데 4시즌간만 수원에서 활동했던 점을 생각하면 매우 파격적인 대우라 화제를 모았다.

플레이 스타일[편집]

터프한 맨마킹과 돌파 능력으로 측면과 중앙을 가리지않고 활약했던 수비자원이었다. 단순히 터프한 것만 아니라 발도 매우 빠른 선수였기 때문에, 웬만한 공격수가 아니면 윤성효를 제껴내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한일은행 축구단 시절만 해도 테크니션 윙어에 가까웠지만, 프로에서 살아남기 위해 기술보다 체력과 스피드에 역점을 두고 하드 트레이닝을 거듭했다고. 이 같은 철저한 자기관리 덕분에, 15년동안이나 K리그에서 활약할 수 있었다.


지도자 생활[편집]

수원 시절[편집]

1999년부터 2003년까지는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서 코치 및 2군 감독으로, 2004년부터 2010년까지는 숭실대학교 축구부 감독으로 재임하였으며, 2010년 6월부터 2012년까지 수원 감독으로 활동하는등 지도자 커리어를 차근차근 밟아온 케이스이다. 2010년 6월 수원 블루윙즈 감독으로 부임해, 2010시즌 후반기 수원의 부활을 이끌었지만 2011년과 2012년 연이은 부진과[4] 전술 스타일에 대한 팬들의 반발 등으로 말미암아, 결국 잔여계약기간 6개월을 남기고 전격 경질[5]되었다.


부산 시절[편집]

그리고 2012년 12월, 수원 삼성 블루윙즈 감독직에서 사퇴한지 불과 5일만에 부산 아이파크 사령탑으로 부임하였다. 부산 팬들은 이 소식에 소위 멘붕을 느꼈지만, 다행히 부산 감독 취임 후 첫 시즌이었던 2013시즌은, 성효부적이라는 이슈도 만들어내면서 인상적인 성적을 거두는데 성공하였다. 풀리그에서 무난한 성적을 거두며 안익수 감독이 다져놓은 부산 선수진을 잘 이끌고 있다는 평가를 받은데 이어, 26라운드 對 포항 스틸러스 전에서 극적인 승리를 거두며 성남 일화 천마를 밀어내고 상위 스플릿 리그에 안착, 갓성효로 평가가 반등하는데도 성공하였다. 게다가 이어진 상위 스플릿 리그에서는 한동안 부진을 겪기도 하였지만, 막판에 수원과 인천을 잇달아 잡아낸데 이어, 울산 현대와의 일전에서 후반 44분 결승골로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어 버리며 울산의 자력 우승을 좌절시키기도 하였다.[6] 이후 울산은 13시즌 마지막 라운드에서 2위 포항동해안 더비를 진행했지만, 포항의 극적인 우승에 들러리가 되버리는 상황을 맞이하고 말았고[7] 이에 윤성효 감독은 리그의 설계자 효느님(...)으로 평가가 반등되게 이른다. 요컨대 윤성효는 자타가 공인하는 2013 K리그 최고의 이슈메이커였으며, 수원 시절의 부정적 평가를 떨쳐내는데 성공하며 최고의 한해를 보낸 셈.

그러나 인기는 2013시즌 단 한 해로 끝나고 말았다. 2014 시즌에는 리그 최하위로까지 전락하며 부진을 이어가다, 하위 스플릿에서 약팀 등을 꺽으며 간신히 팀 분위기를 추스르는데 성공했지만, 2015시즌에도 상황을 반전시키지 못하며 극도의 부진을 이어가 강등권을 맴돌고 말았던 것. 결국 2015년 7월 13일,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의 경기를 마지막으로 부산 아이파크의 감독직에서 자진 사임하였다. 즉 수원 시절과 비슷한 형국으로 부산과의 인연도 정리하고만 셈.


감독 스타일[편집]

프로 데뷔 이후 숭실대학교 감독 시절부터 즐겨쓰던, 수비 라인을 내리고 최전방으로 롱패스를 이용한 공 몰아주기 전술을 쓰고있지만, 해당 전술이 프로에서 크게 통하지 않아 고전하였으며, 매 경기마다 선수가 없다 타령 내지 자기 변명을 늘어놓아 수원 시절부터 팬들에게 평가가 좋질 않았다. 게다가 수원 감독 시절에는 공격적으로 경기를 해서 못이기면 못이겼다고 뭐라하고, 수비적으로 해서 이기면 수비했다고 뭐라 한다 라고 말하며 팬들과 사이가 벌어지기도 하였다.

하지만 부산 아이파크 감독 부임 후에는 유연한 전술적 대처를 보여주기도 하였으며, 장학영, 박종우, 이범영 등 부산의 핵심 주전 선수를 중용하면서도, 박준강, 정석화 등 어린 선수들에게도 많은 기회를 부여하며 없는 살림에 전력을 유지하려 애쓰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이에 2013시즌 부산 팬들은 효느님을 넘어 효멘, 효렐루야, 효산나를 외치기도 하였으며, 팬들은 물론 부산 선수들 역시, 이전 안익수 감독 스타일에 비해 자율적인 윤성효 감독의 방식에 매우 호평을 보내며 좋은 팀 분위기를 유지해나갔다. 그러나 2014시즌부터 박종우, 박용호 등이 빠져나가자 팀 전력을 유지하는데 어려움을 겪었으며, 2015시즌에는 이원영, 임상협, 파그너 등 핵심 주전을 모두 잃어버린 자리를 자신의 애제자 격인 배천석베르손 등으로 메워보려다 실패를 거듭, 기존에 쌓아놨던 좋은 이미지를 모두 잃어버리고 말았다.

총평하자면 팀 분위기를 쇄신하고 단기적인 성과를 내는 능력은 그럭저럭 있고, 그 성과를 내는 방법론도 흔한 스파르타 식이 아니라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앞세운다는 점에서 호평을 줄 부분도 있다. 그러나 이 성과를 장기적으로 유지하고 팀의 방향성을 잡아주는 능력, 즉 거시적 안목이 떨어지는 모습을 수원/부산 감독 시절 모두 보여주었고 이 점 때문에 양 팀에서 좋지 못한 마무리를 내고 말았다.


에피소드[편집]

  • 윤성효는 선수 시절, 부천 SK와의 경기 때마다 윤정환을 전담 마크하는 역할을 맡았다. 당시 윤정환 선수는 기술과 스피드를 겸비한 선수였지만, 악착같이 달라붙는 윤성효 선수의 마킹에 고전을 면치 못했고, 수원의 윤정환 마크법을 지켜본 여타 팀들은 부천과의 경기 때마다 윤정환을 전담 마크하는 수비수를 따로이 지정해두기도 하였다.
  • 1998년 선수 생활을 은퇴하고, 1999년부터 수원 삼성 블루윙즈 2군 코치로 부임하였던 윤성효는, 당시 해이해진 기강과 경기 능력으로 문제의 온상이 되었던 수원 2군을 쇄신하기 위해, 2군 선수들과 함께 똑같이 훈련함은 물론 직접 2군 출장 선수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2군 경기를 소화하며 선수들을 규합, 진두 지휘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이를 보고받은 김호 당시 수원 감독은 윤성효 코치의 행동을 높이 평가하며 은퇴를 번복케하고 플레잉 코치로 1군 엔트리에 등록시켜 다른 수원 선수들에게 모범이 되게 하였다.
  • 2011시즌 윤성효의 수원이 부진한 모습을 보이자 타팀 팬들은 '세제믿윤'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내었다. [8] 국내축구갤러리에선 손정탁 신드롬에 이은 이슈메이커로 자리매김하였다. 세제믿윤! 성효종신! 하지만 이런 비하의 의미로 곡해되던 세제믿윤 현상은 2013시즌 윤성효 감독이 K리그를 지배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그 의미도 반등되는데 성공, 존경의 의미를 담아 세제믿윤을 외치기도 하였다.
  • 윤성효는 수원 감독 부임 후 첫 FC GS전에서 패하였지만 이후 내리 7연승을 거두며 북패킬러로써 K리그 정의구현에 힘썼다. 수원에서의 마지막 GS전이 무승부로 끝나면서 연승 행진은 마감했지만 8경기 연속 무패라는 대위업을 달성하였다. 이후 2013 시즌부터 부산 감독을 맡으면서 이 기록을 이어갈지가 초미의 관심사였고 3월 17일 GS와의 홈경기에서 다시 한번 승리를 거두면서 팀빨이 아닌 자신의 능력(?)임을 입증하며 GS전 9경기 연속 무패 기록을 이어나갔다.
  • 윤성효와 GS의 악연이 상당히 껄끄러웠는지, GS 감독인 최용수 씨는 반농담삼아 윤성효 감독을 두고 "해외 진출하시죠?" 라는 소리를 하기도 했다. 면전에 대고 한건 아니고 인터뷰로 한거였지만..


관련 어록[편집]

관련 어록 목록이 따로 작성될 정도로, K리그 감독들 중 가장 위트있는 재담을 펼치는 감독 중 한 명으로 각광받기도 하였다.


  • (부산 임상협, 13시즌 초반 맹활약을 펼치며) "윤성효 감독님은 잔디다. 잔디와 꽃의 관계처럼 감독님(잔디)은 묵묵히 우리 선수들(꽃)을 항상 빛나게 해주신다."[9]
  • (윤성효, 13시즌 마지막 경기서 울산를 잡아낸뒤) “난 할 만큼 했다”, "울산과 포항 경기가 더욱 재미 있으라고 이긴 것", "우리는 마지막 남은 울산과 포항전을 그저 즐겁게 관람하겠다" (포항에게) "과메기 갖고 안 되겠는데…(웃음) 과메기보다 더 좋은 걸 보내달라고 하라."
  • (포항 김원일, 13시즌 K리그 대상 수상식서) “우리가 우승할 기회를 주신 부산 윤성효 감독님께 감사드린다. 앞으로 더 노력하는 선수가 되겠다"
  • (14시즌 포항과의 첫 맞대결서 3-1로 꺾은뒤) "황 감독이 과메기를 보내준다고 했는데 안 줬다. 그래서 오늘은 기필코 이겨야겠다고 생각했고, 응징했다"


경력[편집]


갤러리[편집]


같이 보기[편집]


외부 링크[편집]


참고[편집]

  1. 참고로 당시 축구캠프에 참가한 5명의 한국선수가 각각 윤성효, 박양하, 함현기, 호성호, 변종국이었다.
  2. 기량이 모자란 것도 훈련태도가 나쁜 것도 아니었는데, 연세대 감독이 윤성효 선수를 기용하지 않았다고. 때문에 윤성효는 개인훈련만 했다고 한다.
  3. 이 때 윤성효 선수의 수원 입단을 적극 독려한 것이 수원의 창단 감독 김호였다. 김호와 윤성효의 사제간 인연은 이후로 계속 굳건하게 지속된다.
  4. 부진한 성적까지는 아니지만, 삼성전자 측이 투자한 금액에 비해 성적이 좋지않았던 것은 사실이다.
  5. 형식상 자진 사임이지만 수원 팬들을 비롯해 대부분은 경질로 생각하고 있다.
  6. 당시 울산은 부산과 비기기만 해도 우승이 가능한 상황이었다.
  7. 자세한 상황은 현대오일뱅크 K리그 2013 클래식 문서를 참고하기 바란다.
  8. 사실 세제믿윤이라는 응원가를 만든건 그랑블루였고 그 줄임말인 세제믿윤은 이미 전부터 사용중이었으나 부진한 모습으로 인해 응원가가 비하의 용어가 된 사례이다.
  9. 윤성효는 수원 시절 인터뷰서 잔디에 대한 불평이 많아 윤잔디라고 놀림받곤 했다.


틀:부산 아이파크 선수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