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산 푸마: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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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단 승인 이후 공식화된 완산 푸마 창단준비위원회는 7월, [[정규풍]] 씨를 3년계약으로 완산 푸마 창단 감독으로 계약하고, 92년 11월에 열릴 예정이었던 [[1993년 드래프트]]에 참가할 것임을 발표하였다. 프로축구연맹은 완산 푸마에 창단팀 우선 지명권을 부여해 당대 대학권 최고급 선수였던 [[황선홍]], [[강철]], [[정재권]], [[노정윤]], [[김태영]] 등이 완산 푸마에 지명될 것으로 예측되었다. | 창단 승인 이후 공식화된 완산 푸마 창단준비위원회는 7월, [[정규풍]] 씨를 3년계약으로 완산 푸마 창단 감독으로 계약하고, 92년 11월에 열릴 예정이었던 [[1993년 드래프트]]에 참가할 것임을 발표하였다. 프로축구연맹은 완산 푸마에 창단팀 우선 지명권을 부여해 당대 대학권 최고급 선수였던 [[황선홍]], [[강철]], [[정재권]], [[노정윤]], [[김태영]] 등이 완산 푸마에 지명될 것으로 예측되었다. | ||
그러나, 완산 푸마의 상황을 누구보다 어느 정도 알고 있었던 선수들은 드래프트 거부를 불사하며 완산 푸마 지명을 회피하려 노력했고, 그 결과 [[노정윤]] 선수는 J리그 진출, [[정재권]], [[김태영]] 등은 실업팀에 입단하는등 파행을 겪었다. [[황선홍]] 선수의 경우는 [[1993년 드래프트]]에서 완산 푸마에 1순위로 지명되었으나 [[포항 스틸러스|포항 제철]]측이 완산 푸마측과 사상 유례없는 1:5 트레이드를 감행함에 따라 | 그러나, 완산 푸마의 상황을 누구보다 어느 정도 알고 있었던 선수들은 드래프트 거부를 불사하며 완산 푸마 지명을 회피하려 노력했고, 그 결과 [[노정윤]] 선수는 J리그 진출, [[정재권]], [[김태영]] 등은 실업팀에 입단하는등 파행을 겪었다. [[황선홍]] 선수의 경우는 [[1993년 드래프트]]에서 완산 푸마에 1순위로 지명되었으나 황선홍과 가계약을 이미 맺어놨던 [[포항 스틸러스|포항 제철]]측이 완산 푸마측과 사상 유례없는 1:5 트레이드를 감행함에 따라 황선수는 포항제철에 입단하게되었다. (자세한건 [[1993년 드래프트]] 참조) | ||
우여곡절 끝에 드래프트와 입단테스트를 통해 총 26명의 감독, 코칭스탭, 선수단이 완성된 것까지는 좋았으나, 진짜 문제는 이제부터였다. 이듬해인 1993년 2월 초, [[정규풍]] 감독을 비롯한 코칭스탭과 완산 푸마 선수단 전원이 11월 선수단 구성이후, 총 3개월동안의 | 우여곡절 끝에 드래프트와 입단테스트를 통해 총 26명의 감독, 코칭스탭, 선수단이 완성된 것까지는 좋았으나, 진짜 문제는 이제부터였다. 이듬해인 1993년 2월 초, [[정규풍]] 감독을 비롯한 코칭스탭과 완산 푸마 선수단 전원이 작년 11월 선수단 구성이후, 총 3개월동안의 임금체불이 있었고, 드래프트 지명 계약금 또한 미지급 받았음이 폭로되면서 완산 푸마는 본격적으로 좌초 상황을 겪게 된다. 상황이 이보다 더 나빠질 수 없음을 감지한 프로축구연맹측은 다가오는 1993년 2월 28일, 즉 93시즌 K-리그 선수 등록 마감일까지 '완산 푸마는 선수 계약금과 임금 미납분 문제 해결할 것, 당초 예정되있던 총 20억 남짓의 1년 시즌 운영자금이 존재함을 증명할 것' 등을 완산 푸마 프론트에 요구했다. | ||
그러나, 1년여전 오씨가 주장했던 푸마와 몬테로사 인터내셔널로부터의 스폰 대금 지급은 전혀 없었고, 받아낸 약속은 '''93시즌이 시작하고 완산 푸마가 리그에 참가함이 확인되면 스폰 비용을 입금하겠다''' 뿐이었음이 드러났고 이 문건의 폭로와 함께, 완산 푸마의 운명은 결정되고 말았다. | |||
결국 2월 28일 등록기간까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완산 푸마는 93시즌 참가와 92년 7월의 창단 승인 모두가 소급하여 무효가 되어버렸고, 완산스포츠클럽과 완산 푸마 축구단은 부도처리되었다. [[정규풍]] 감독을 비롯해 완산 푸마 선수단 대부분은 밀린 계약금과 3개월치 임금 총 3억여원을 전북은행이 발행한 약속어음으로 지급받았으나, 3월 3일 어음 발행주체의 부도처리와 함께 휴지조각이 되버렸고, 이로 인해 법정 분쟁이 벌어지는 등, 완산 푸마 소동의 휴유증은 93년 내내 끊이질 않았다. | 결국 2월 28일 등록기간까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완산 푸마는 93시즌 참가와 92년 7월의 창단 승인 모두가 소급하여 무효가 되어버렸고, 완산스포츠클럽과 완산 푸마 축구단은 부도처리되었다. [[정규풍]] 감독을 비롯해 완산 푸마 선수단 대부분은 밀린 계약금과 3개월치 임금 총 3억여원을 전북은행이 발행한 약속어음으로 지급받았으나, 3월 3일 어음 발행주체의 부도처리와 함께 휴지조각이 되버렸고, 이로 인해 법정 분쟁이 벌어지는 등, 완산 푸마 소동의 휴유증은 93년 내내 끊이질 않았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