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영1

칫통 (토론 | 기여)님의 2010년 9월 13일 (월) 14:55 판
파일:김태영1.jpg
김태영 감독과 해성고등학교 축구부

김태영(1962년 1월 13일~)는 대한민국 국적의 1984년부터 1986년까지 K-리그에서 선수이자, 축구부 감독과 국제 심판으로 활동한 축구인이다.

동명이인인 국가대표 명 수비수였던 김태영2K-리그 1만호골의 주인공 김태영3과 구분하기 위해 김태영1이라 칭한다.

프로필

  • 이름 : 김태영
  • K-리그 기록 :
소속팀 연도 출장 교체 득점 도움 경고 퇴장 자책
럭키금성 황소 1984 0 - - - - - -
럭키금성 황소 1985 0 - - - - - -
럭키금성 황소 1986 3 3 0 0 0 0 0
통산 - 3 3 0 0 0 0 0
K-리그 통산기록은 리그컵기록 포함. 2010년 3월 1일 기준.

지도자 프로필

  • 1990 ~ : 울산시 복산초, 학성초, 학성중 축구부 감독 역임 및 심판 활동
  • 1996 ~ : 국제 심판 자격 획득
  • 2004 ~ 현재 : 남해 해성 중,고등학교 축구부 감독

유소년 시절

협성상고 시절 실업팀들의 잇단 제의를 받을 정도로 탁월한 기량을 자랑했다. 결국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조흥은행 축구단에 1981년 입단하면서 축구 선수로서 생활을 시작하였다.

선수 시절

당시 은행권 팀들은 선수로 생활하다 은퇴 이후에는 은행 입사도 가능하다는 점 등 메리트가 높아 축구 선수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1980년대 초반을 기점으로 은행 축구팀들이 슈퍼리그의 창단과 맞물려 팀 유지에 메리트를 느끼지 못하면서 외환은행 축구단, 산업은행 축구단, 농협 축구단 등이 잇따라 해체를 결정하였고 조흥은행도 대세(?)를 따라 해체의사를 천명하는 등, 매우 어수선한 분위기가 감돌았다.[1]

이 때, 김태영 선수는 1983년 겨울 창단 준비 중이던 럭키금성 황소 축구단의 입단제의를 받아 조흥은행을 떠나 럭키금성에 창단멤버로 참가하였다. 그러나 1983년부터 1986년까지 3년동안 김태영 선수의 활약은 그다지 두드러지지 않은채 2군에 머물렀고, 결국 1986년 시즌 종료 후 럭키금성에서 방출되면서 선수생활을 정리하게 되었다.

은퇴 이후

1990년을 마지막으로 선수생활을 마무리한 김태영 씨는 고향인 울산시에 내려가 모교인 복산초등학교 체육교사로 활동하였으며 심판 자격도 취득해 심판으로도 활약하였다. 1996년 국제 심판 자격증 취득 이후에는 해외에서도 활약하였으며 이후 2004년 대한축구협회의 권유로 남해군 해성중학교와 고등학교 축구부 창단 감독으로 부임하게 되었다.

해성고등학교는 창단 3년만에 무학기 8강에 진출하였고, 프로 선수도 꾸준히 배출하는 등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플레이 스타일

에피소드

  • 김태영 씨 집안은 명실상부한 축구 패밀리이다. 김태영 씨는 말할 것도 없고, 부인 신희경 씨는 전 울산 YWCA 축구단 주장이고, 장녀인 김현주 양은 2010년 현재, 한양여자대학교 축구부 주전 GK이며, 막내딸인 김윤지 양은 2010년 남아공 월드컵 한국 대표팀 에스코트로 발탁되어 언론에 소개된 바 있다.[2]
  • 김태영 씨가 럭키금성 선수 시절, 서울시 강남구 개포동에 위치했던 럭키금성 숙소 근처에서 일하던 신희경 씨를 보고 한눈에 반해서 4년동안 쫒아다닌 끝에 결혼했다고 한다. 신희경 씨 쫒아다니느라 축구 선수를 게을리했던게 아닐지 ㅎㅅㅎ..

경력

참고

외부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