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1985 10월 5일생)은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이자 축구 언론인으로, 유소년 시절 웨스트햄 유나이티드에서 보여준 활약으로도 유명하다.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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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 생활
유소년 생활
서울에서 출생한 그는 육상선수 출신으로 중학교때부터 본격적으로 축구를 시작하게 되었다. 선진축구를 배우고자 1999년 당시 프리미어리그팀인 크리스탈 팰리스 유소년 팀과 계약하며 본격적으로 잉글랜드 생활을 시작하였다. 그 후 풀햄 유스를 거쳐 학비 등을 지원받는다는 조건으로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유소년 팀과 3년 정식계약을 맺는데 성공하였다. 1990년대 후반 최용수, 김도근 등이 문을 두드리다가 퇴짜맞았던 웨스트햄에서 유망주 대우를 받는다는 사실에 흥분한 한국 네티즌들은 이산을 본 적도 없으면서 한국축구의 20년을 짊어질 유망주로 평가하기 시작했고, 이산을 필두로 해외 유소년 팀에서 활약 중인 선수들을 검색을 통해 찾아낸뒤 '이들이 2010년 월드컵 즈음에는 대표팀 주전으로 성장해있을 것이다'라고 장밋빛 미래를 그리곤 하였다.[1]
프로 생활
2004년 마침내 잉글랜드 풋볼 리그 1 소속인 브렌트포드 FC와 성인 계약을 맺고 본격적인 프로 생활을 하는듯 싶었으나 잦은 부상 때문에 단 한경기도 출전하지 못하였다. 그 후에 2005년 8월 잉글랜드 풋볼 리그 챔피언십 클럽 셰필드 유나이티드로 이적하게 된다.[2]셰필드 유나이티드는 2005/06시즌 챔피언십 2위로 잉글랜드 프리미어십에 승격하였지만 이산 선수는 쉐필드 유나이티드 리저브 B팀[3] 멤버에 불과했고, 셰필드 유나이티드는 6개월여만에 이산 선수를 내보내게 된다. 그리고 이산은 2007년 SK 유나이티드로 이적, 국내로 복귀하게 되었다.
당시 SK 감독이었던 정해성은 이산 선수를 키워보고자 했으나, 국내에서도 SK 2군에만 머물다가 방출되고 말았다. 특히 이산 선수는 자신을 총애하던 정해성 감독이 SK 감독직을 사퇴하자 제발로 숙소를 나와 SK를 떠났다고. 사실상 은퇴수순을 밟는 것이었고, 예상대로 이후 선수 생활을 정리하였다.
은퇴 이후
선수생활을 끝낸 뒤 잉글랜드에 계속 주재하면서 베스트일레븐 등 축구 잡지와 계약을 맺어 잉글랜드 현지 축구 분위기에 대한 칼럼을 송고하고 있다.
플레이 스타일
육상 선수 출신으로 발이 빨랐던 선수였다. 웨스트햄 유스 출신인 것이이 이역만리 한국에서까지 새삼 조명되었던 것도, 웨스트햄 유스팀 내 체력 테스트에서 이산 선수가 순간 스피드 부문에서 1위를 기록했었기 때문. 하지만 발이 빠른 대신 부상 위험도 잦았고, 결국은 크게 성장하질 못했다.
에피소드
- 웨스트햄 유소년 시절, 조 콜 등 현재의 수퍼스타급 선수들과 친해졌고, 지금도 관계를 계속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 웨스트햄 유소년 팀과 계약한 직후, 아시아나 항공 CF에 이산 선수가 등장하며 유명세를 타기 시작하였다.
경력
같이 보기
외부 링크
참고
- ↑ 한때는 잉글랜드 귀화조건으로 잉글랜드 대표팀 영입설까지 돌기도... 당연한 소리지만 한국 네티즌들의 망상이다. 자세한건 이산 신드롬 문서 참조.
- ↑ 내용 참고(2005년 12월 포스팅)
- ↑ 리저브에도 A팀과 B팀이 나뉘어져 있다. 즉, 2군에서도 2군이었다는 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