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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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근(1972년 3월 2일~)는 대한민국 국적의 축구선수로, 1995년부터 2006년까지 K리그에서 활동한 미드필더이다.



선수 프로필[편집]

  • 이름 : 김도근
  • 출생일 : 1972년 3월 2일
  • 신체 : 180cm / 77kg
  • 국가대표 경력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본선 대표
1998년 FIFA 월드컵 본선 대표
1993년 ~ 2003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
(통산 A매치 22경기 출장 1골)
  • 현 소속팀 : 선수 생활 은퇴
  • K리그 기록
연도 소속팀 출장 교체 득점 도움 경고 퇴장
1995 전남 드래곤즈 전남 드래곤즈 10 6 0 0 1 1
1996 36 7 10 2 4 0
1997 21 1 7 3 3 0
1998 20 3 6 3 3 0
1999 25 18 2 4 1 0
2000 11 1 5 2 2 0
2001 전남 드래곤즈 전남 드래곤즈 3 2 0 0 0 0
2002 30 16 3 2 4 0
2003 41 20 1 5 5 0
2004 5 2 0 0 0 0
2005 4 4 0 1 0 0
수원 삼성 블루윙즈 수원 삼성 블루윙즈 12 9 0 0 0 0
2006 경남 FC 경남 FC 23 21 0 2 1 0
통산 K리그 241 110 34 24 24 1
K리그 통산기록은 리그컵기록 포함. 2014년 시즌 종료시점 기준.
연맹 공식 DB

지도자 프로필[편집]

연도 소속팀 직책
2007년 한양대학교 코치
2008년 광양제철고등학교 코치
2009년 ~ 2011년 전남 드래곤즈 2군 코치
2012년 ~ 2014년 전남 드래곤즈 1군 코치
2015년 상주 상무 코치
2016년 경남 FC 코치


유소년 생활[편집]

강릉제일고, 한양대학교를 졸업하였다. 한양대 1학년 시절, 처음 올림픽대표팀에 발탁되었으며 바르셀로나 본선 대표로 뽑히는 경사를 누리기도 했다.[1] 이후 93년 김호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에 잠시 발탁되기도 하며 프로팀 스카우터들의 주목을 한몸에 받았다. 하지만 4학년 시절 발목 부상으로 1년을 통으로 쉬어야 했다.


K리그 생활[편집]

1995년 드래프트에서 창단팀 우선지명권을 행사한 전남 드래곤즈에 지명되어 프로 생활을 시작하였다.[2]


국가대표 생활[편집]

위에서 언급하였듯 92 바르셀로나 올림픽대표팀에 이어 93년 국가대표로 발탁되어 A매치 데뷔전을 치루기도 하였다. 이후 한동안 국가대표와 인연이 없다가, 1997년 FIFA 프랑스 월드컵을 앞두고 차범근 감독의 발탁으로 국가대표에 오랜만에 재발탁되었으며, 이후 치루어진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와의 친선 매치에서 골을 성공시킨 뒤 스타 플레이어 대접을 받았던바 있다. 하지만 정작 본선 무대에서는 네덜란드 전 등에서 상대팀 선수들에게 압도당하며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3] 이후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거스 히딩크 감독에게 호출을 받기도 했지만, 본선 엔트리 발탁에는 실패하였다.


해외진출 도전사[편집]

98 월드컵 이후, 서정원 등 한국 선수들의 해외진출이 잇달아 이루어지면서 김도근 선수도 최호규 에이전트에게 전권을 위임하며 해외진출을 모색 중에 있었다. 그러다 1999년 2월 최용수 선수와 함께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팀인 웨스트햄 유나이티드에 이적료 150만 달러, 연봉 50만 달러의 조건으로 입단하는데 합의하였다며 대서특필되는 사건이 터졌는데.. 만인의 기대를 안고,[4] 잉글랜드로 출국한 두 선수였지만 정작 웨스트햄 측의 반응은 우리는 그런 제의를 한적도 들은적도 없다는 것이었고, 결국 1주일 동안 웨스트햄 2군에서 두 선수는 간단한 테스트만 보다가 조용히 귀국하였다. 이것이 그 유명한 최용수 웨스트햄 사건이었다. 최용수 하면 아직도 회자되는 사건이지만, 정작 최용수와 함께 웨스트햄에 갔던 김도근은 웨스트햄에 간 사실도 기억되지 못하는듯.. 안습 ㅜㅜ

그리고 이듬해인 2000년 5월, 이적료 5천만엔에 연봉 4천만엔, 계약기간 7개월의 조건으로 베르디 가와사키에 입단하며 드디어 해외진출에 성공하였다. 이후 베르디에서 18경기 출장 1골을 기록하며 합격점을 받은 김선수는 2001시즌을 앞두고 이적료 5천만엔에 연봉 5천만엔[5] 조건으로 세레소 오사카로 이적하게 된다. 세레소에서는 윤정환, 노정윤과 한솥밥을 먹으며 활동하였는데.. 팀이 2001시즌 강등권에서 허덕이자 2001년 7월 세레소는 노정윤과 김도근을 내보내기로 하면서 김도근은 전남으로 복귀하게 된다.[6]


지도자 생활[편집]

플레이 스타일[편집]

  • 선수 시절 초반에는 센터백으로 활동하였으나, 전남에서 중앙 미드필더와 인사이드 포워드를 모두 소화할 수 있는 다재다능한 자원으로 자신의 입지를 공고히 하였다. 유상철 선수와 비슷하게 공격 성향이 매우 강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비력도 좋은 편이라 차범근 감독이 98년 월드컵 감독 당시 중용하기도 했다. 고질적인 무릎 부상만 없었어도, 더 대성했을 선수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에피소드[편집]

  • 선수 시절 구단과 여러 잡음이 있어 마음 고생을 하기도 했지만 자타 공인 전남의 레전드급 인사로 여전히 전남에서 활약 중에 있다. 특히 2008년 김도근 씨가 광양제철고 코치로 전남에 부임하자 몇몇 팬들이 전남 드래곤즈 사무실에 '김도근 선수 출전은 대체 언제 하는겁니까?' 하고 문의전화가 왔을 정도라고..
  • 해외진출을 여러차례 노렸던 선수이며, 2000년에 이르러서야 일본 진출에 성공했다. J리그에서의 활동기간은 1년 남짓에 불과했지만, 그 때 인상이 상당히 강렬하게 남았던듯. 이후 K리그보다 J리그가 시스템이나 운영 면에서 낫다는 취지의 인터뷰를 남기기도 했다.[7]


경력[편집]


같이 보기[편집]

외부 링크[편집]

참고[편집]

  1. 하지만 본선 3경기 모두 출장하지는 못했다.
  2. 당시 창단팀으로 전체 1순위 지명권을 얻게된 전남이 가장 처음 뽑은 선수가 김도근이었다. 전남에 이어 창단팀 우선지명권을 행사한 전북 다이노스김도훈 선수를 전체 2순위로 지명하였다.
  3. 사실 이건 김도근 선수의 개인 기량이 네덜란드 황금 세대에게 밀린 감도 컸지만, 전술적으로도 대한민국이 네덜란드에게 중원을 내줄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4. 김포공항 출국장에 기자들이 모여 인산인해를 이룰 지경이었다.
  5. 세금은 구단이 대납해주는 조건이었다고 한다.
  6. 뱀발로 노정윤은 본래 울산 현대 호랑이로 이적할 예정이라고 기사까지 나왔으나, 최종적으로는 아비스파 후쿠오카로 이적하였다.
  7. 김선수 입장에서는 그럴만도 했던 것이, 당시 김도근을 영입한 베르디와 세레소는 김선수가 전남에서 받던 연봉수준의 4배를 상회하는 몸값을 지불했을 뿐 아니라, 세레소의 경우는 세금까지 대납해주는 호조건으로 김선수에게 공을 들였기 때문이었다. 특히 김도근이 세레소 입단 6개월여만에 팀 사정을 이유로, 상호 계약해지에 합의하자 세레소 측은 잔여연봉인 2,250만엔을 일시불로 지급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