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중석
한국의 텅스텐 채굴 국영기업이자 60년대 국내에서 가장 강력했던 실업 축구단. 중석(重石)은 텅스텐의 한자어.
대한중석
회사 수출액이 한때 대한민국 전체 수출액의 약 60%까지 차지했던 거대 국영기업인 대한중석은 1964년 박태준(당시 육군소장 예편)이 사장으로 임명 되면서 본격적인 발전을 이루었다.(이렇다할 산업이 없던 당시 한국의 주요산업이자 최대 달러공급원이었으므로 박정희는 군인을 예편시켜 임명하였고 박태준은 만성적자에 시달리던 기업을 1년만에 흑자로 돌아서게 해서 박정희의 신뢰를 얻었다.)
1968년, 대한민국 정부와의 합작투자로 (정부 75%, 대한중석 25%) 포항제철(현 포스코)을 설립했다.
80년대 이후 텅스텐 세계 최대매장국인 중국이 시장개방정책으로 세계 텅스텐 시장에 뛰어들게 되면서 사양산업이 되어 1994년, 상동광산이 폐쇄되고 건설부분과 초경사업부분은 정부의 공기업 민영화정책으로 인해 거평그룹으로 인수되었다. 이후 외환위기로 인해 거평그룹이 부도처리되고 대한중석은 IMC그룹에 인수되어 사명을 대구텍(TaeguTec)으로 변경한다.
2006년, 세계적인 투자가인 워렌 버핏의 회사 버크셔 해서웨이가 대구텍의 모기업 IMC그룹의 지분 80%을 인수하면서 대구텍의 주인이 되었다.
대한중석 축구단
대한중석 사장으로 부임한 박태준이 65년 창단한 축구단이다.
역사
50년대 후반부터 대한중석에는 실업 축구단이 존재했으나, 환경이 열악하여, 훈련 외 시간은 광부들과 함께 채굴 작업에 선수들이 참가했다고 한다. 축구에 관심이 많던 박태준씨가 부임한 후 대한중석이 흑자전환 되는 등 안정화되자 이전부터 구상해뒀던 축구팀을 개편,정비하였다.
이러한 대한중석 축구단은 당시 국가대표 감독이었던 고 한홍기 씨를 감독으로 역시 국가대표였던 함흥철, 김정석, 조윤옥, 석효길, 황종현, 최재모, 김창일, 박수일, 최상철 등 내로라하는 스타급 플레이어들을 모두 보유하고 국내 최고급 대우와 훈련 스케쥴로 창단하자마자 국내 최고의 강팀으로 발돋움했다.
65년과 66년 대통령배 전국축구대회를 연거푸 우승했고, 홍콩에서 열렸던 국제 대회에도 한국 대표로 참가했다.
쇠퇴
66년 런던 월드컵에서 북한 축구 국가대표팀이 8강에 오르는 대파란을 일으키자, 당시 중앙정보부장이었던 김형욱의 지시로 창설한 양지 축구단에 대한중석 핵심 전력을 차출당하면서 전력이 급격히 약해졌다.
그리고 축구단의 후원자이던 박태준이 포항제철로 옮겨감에 따라 대한중석 축구단의 존립 기반이 흔들렸다. 73년, 포항제철소 1기 준공 기념으로 박태준이 포항제철 축구단를 창단함에 따라 대한중석 축구단의 잔류 멤버와 스탭진, 양지 축구단이 해산되면서 예편한 이회택 등 신진 멤버가 합류해 포항제철 축구단을 구성했다. 감독부터 코치, 선수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멤버구성이 대한중석 축구단과 상동해, 대한중석 축구단을 포항 스틸러스의 전신으로 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