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하라
다카하라 나오히로(Naohiro Takahara, 1979년 6월 4일 ~) 는 일본 국적의 공격수로 2010년 K리그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서 임대로 활동한 공격수이다.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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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그 이전
1998년 J리그의 주빌로 이와타에서 프로선수 커리어를 시작한 다카하라는 인상적인 활약을 하였다. 주빌로 이와타 시절에 아르헨티나의 명문 보카 주니어스로 임대를 떠나서 남미 축구에 대한 경험을 쌓았다.[1]
다카하라는 아르헨티나에서 임대복귀하여[2] 2003년 독일 분데스리가의 함부르크로 이적한다. 2003년 함부르크를 시작으로 2007년 프랑크푸르트 까지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약 27골을 득점한 다카하라는 일본의 대표적인 공격수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2008년에는 프랑크푸르트에서 우라와 레즈로 이적료 1억 8500 만엔, 연봉 1억 8000만엔에 3년 계약으로 이적하게 된다. 하지만 우라와 레즈에서 주빌로 이와타 시절 만큼 폭발적인 모습을 보이지 못했으며, 폴커 핑케 감독이 사이드 미드필더로 기용하는 모습으로 다카하라는 부진의 늪에 빠지게 된다. 2010년에는 폴커 핑케 감독의 전력 구상에서 제외되어서 겨울부터 이적을 모색하였다고 한다.
K리그
우라와 레즈에서 전력 외 선수로 밀려난 다카하라는 이적을 모색한 끝에, 2010년 7월에 K리그 수원 삼성 블루윙즈로 이적하게 된다. 당시 수원도 외국인 선수인 헤이날도의 실패와 차범근 감독의 성적 부진으로 인한 자신사퇴 등으로 어수선한 분위기에 윤성효 감독을 선임한 상태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신임 감독이었던 윤성효에게 전폭적인 지원을 통하여 분위기 반전을 생각한 수원은 다카하라와 같은 검증된 공격수가 필요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3]
이적 당시에는 우라와 레즈에서 임대로 이적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나, 이적료 약 4~5 억원 수준의 완전 이적이며, 우라와 측에서 연봉을 약간 부담해 주는 조건이 있다고 한다.
수원 입당 당시 등번호는 22번을 배정 받았다.
리그 데뷔는 2010년 7월 31일 광주 상무와의 홈경기에서 이루어 졌다. 이적 후 평가는 실전 감각이 많이 떨어져 보인다는 평가가 대부분 이었다. 그 후 8월 리그에서 꾸준히 나오다가 2010년 8월 28일 GS와의 경기에서 데뷔골과 추가골을 폭발 시키며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다.[4] 그 후에는 강원 FC와 광주 상무 원정 경기에 득점하여 총 12경기 4골로 2010년 시즌을 마무리 하였다.
시즌 후 총평은 네임벨류에 비해서 아쉽다는게 대부분 이었다. 하지만 실전감각이 떨어졌던 것에 비해 본인 특유의 공격적인 센스는 확실해 보였다고 평가되었다.
다카하라는 2010 시즌이 종료하고 본인 홈페이지에 "자신감을 찾을 수 있었다"라고 스스로 만족 스럽게 평가하고 수원에서 자신에 대한 지지에 대하여 고마움을 표시하기도 하였다.
2010 시즌을 끝으로 다카하라는 J리그로 리턴하게 된다.
K리그 이후
수원에서 J리그의 시미즈로 이적하였고, 계약 만료로 방출 당한 뒤에는 2013년 J2의 도쿄 베르디로 이적하였다. 도쿄 베르디에서는 11골을 기록하여 팀내 최다 득점자에 이름을 올리기도 하였지만, 도쿄 베르디의 자금난에 이적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지게 되었다.
소속팀의 재정난에 방출 대상이 되어버린 다카하라는 2014년 J3의 SC 사가미하라로 임대이적하였다. 2015년에는 완전 이적하여 주장으로 선임되어 22경기에 나와 3골을 득점하는 활약을 보여주고 있다.
개인 수상
- 1998년 - AFC U-19 득점왕
- 1998년 - 나비스코컵 신인상
- 2000년 - AFC 올스타 팀 선정
- 2000년 - 아시안컵 베스트 일레븐
- 2002년 - J 리그 최우수 선수상, 득점왕, 베스트 일레븐
- 2007년 - 아시안컵 득점왕
플레이 스타일
활동량이 많아 보이지는 않았지만 센스는 있었다.
에피소드
- 2002 한일 월드컵에서는 일본 내에서 가장 촉망받는 유망주임에도 불구하고 엔트리에 포함되지 못했다. 그 이유는 '정맥혈전증'이라는 질병때문이었다.[5] 이 질병은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직전에 재발하여 와일드 카드로 발탁에서도 제외되는 아픔을 겪게 된다.
- 2002년 월드컵 엔트리에는 포함되지는 못했지만, 질병에서 회복한 후 주빌로 이와타에 복귀하고 그 시즌에 총 27경기에 나와서 26골을 넣는 엄청난 활약을 보여주어서 MVP와 득점왕을 차지하게 된다.[6]
- 2010년 K리그 진출 당시에 원래 이적협상을 진행하고 있었던 팀은 GS와 울산 현대였던 것으로 보인다. 일본 언론에서 나타난바로는 먼저 GS와 협상 중이었는데, 클럽 내부에서 이를 안좋게 보는 시선이 강해서 철수했다고. 또한 울산 현대의 경우 김호곤 감독이 다카하라를 경험 면에서 최고의 아시아쿼터 대안으로 생각하고 염두해뒀지만, 김신욱의 출전기회 등을 생각하여 포기하였다. 그 뒤 수원으로 방향을 바꾼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7]
- 수원으로 이적한 당시의 다카하라는 수원 구단 역사상 최초의 일본 국적의 선수였다. 그리고 다카하라가 일본 국적임에도 불구하고 아시아쿼터는 아니었다. 아시아쿼터는 2009년 영입된 리웨이펑이 채우고 있었으며, 주닝요와 헤이날도의 방출로 공석이었던 외국인쿼터를 다카하라와 마르시오가 대체했다.
- 2015년 프로필에는 체중이 거의 80kg 근처인 것으로 나오고 있다. 은퇴 직전의 나이라 그런지 체중관리가 쉽지 않은 모양..
- 2015년 까지 K리그에 영입된 일본 국적의 선수들 중에서 커리어는 가장 화려해 보인다.
경력
시즌 | 소속팀 | 리그 | 비고 |
---|---|---|---|
1998~2002 | ![]() |
J리그 | |
→ 2001~2002 | 아르헨티나 Boca Juniors | Primera División | 임대 |
2003~2006 | ![]() |
Bundesliga | |
2006~2007 | ![]() |
Bundesliga | |
2008~2010 | ![]() |
J리그 | |
2010 | ![]() |
K리그 | |
2011~2012 | ![]() |
J리그 | |
2013~2014 | ![]() |
J2리그 | |
→ 2014 | ![]() |
J3리그 | 임대 |
2015~ | ![]() |
J3리그 |
같이 보기
외부 링크
- 다카하라가 운영하는 공식 블로그 taka19 [2]
참고
- ↑ 일본국적의 축구선수 최초의 아르헨티나 진출이다.
- ↑ 인상적인 활약을 펼치지 못한 것도 있지만, 아르헨티나의 경제 악화가 일본복귀 이유 중 하나라고 한다. 보카 주니어스에서의 통산 기록은 6경기 1골 기록.
- ↑ 이 밖에도 국내선수로 신영록과 황재원 등으로 공격과 수비를 보강해 주었다.
- ↑ 이 경기에서 그 유명한 다카하라-리웨이펑-이상호의 동아시아 합작 골이 탄생한다. 또한 자신들은 전성기의 우즈벡 국가대표 제파로프를 영입하는데 일본 퇴물이나 영입한다고 비웃었던 그 팀팬들에게 제대로 엿을 먹여주었다
- ↑ 다리에 생기는 질병으로 나타나고 있다.
- ↑ 최연소 기록이라고 한다
-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