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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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곤(1951년 3월 26일 ~ 현재)는 대한민국 국적의 전직 국가대표 선수이자 지도자이다.



프로필[편집]

선수 프로필[편집]

  • 성명 : 김호곤
  • K리그 등록명 : 김호곤
  • 출생일 : 1951년 3월 26일
  • 신체 조건 : 172cm / 77kg
  • 현 소속 클럽 : 선수 생활 은퇴
  • 국가대표 기록
1972년 뮌헨 올림픽 아시아예선 대표
1972년 AFC 아시안컵 본선 대표
1974년 서독 월드컵 아시아예선 대표
1974년 테헤란 아시안게임 본선 대표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아시아예선 대표
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 아시아예선 대표
1978년 방콕 아시안게임 본선 대표
(통산 A매치 120경기 출장 5골)[1]


지도자 프로필[편집]

  • 지도자 경력
연도 소속 직책
1980 ~ 1983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코치
1983 ~ 1987 현대 호랑이
1985 ~ 1986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1988 88 올림픽대표팀
1992 ~ 1999 연세대학교 감독
2000 ~ 2002 부산 아이콘스
2002 ~ 2004 대한민국 U-23
2009 ~ 2013 울산 현대
  • K리그 기록
연도 소속 리그 득실 승점 순위 FA컵 리그컵 ACL
2000 부산
아이콘스
K리그 11 0 16 0 29 6위 4강 1라운드 자격없음
2001 10 11 6 +5 41 4위 8강 준우승
2002 6 8 13 -9 26 9위 8강 조별예선
2009 울산 현대 9 9 10 +3 36 9위 32강 4강 조별예선
2010 15 5 8 +17 50 4위 16강 8강 자격없음
2011 13 7 10 +4 46 준우승 4강 우승
2012 18 14 12 +8 68 5위 4강 미개최 우승
2013 클래식 22 7 9 +26 73 준우승 16강 미개최 자격없음
통산 (K리그) 클래식 104 61 84 ACL 1회 우승, 리그컵 1회 우승


선수 시절 소개[편집]

김호곤 국가대표 시절. (왼쪽) 오른쪽의 선수는 김재한 선수이다.

유소년 시절[편집]

경상남도 통영시[2] 출신으로 고등학교 시절 부산 동래고등학교로 전학을 가면서 본격적으로 축구를 시작하였다고 한다.[3] 동래고 시절부터 청소년대표팀 상비군에서 날렵한 수비를 보여주었던 김호곤은, 치열한 스카우트 경쟁 끝에[4] 서울 연세대학교에 진학한 뒤 대학 1학년 때부터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에 발탁되어 활약하였다.


국가대표 시절[편집]

플레이 스타일[편집]

지도자 생활[편집]

연세대학교[편집]

부산 아이파크[편집]

대한민국 U-23[편집]

울산 현대 시절[편집]

2011년 K리그에서 시즌 6위로 K리그 챔피언십에 겨우 진출한 울산 현대를 이끌고 GS, 수원 삼성 블루윙즈, 포항 스틸러스를 차례로 격파, 결승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그의 마법같은 능력에 분위기는 급변했고, 2012년 AFC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거머쥐기까지 하면서 호로곤에서 호거슨으로 호칭이 급변경되어 축구팬들에게 칭송받으며 축구 감독 인생이 전환될 기회를 맞이하였다. 사람 사는 것은 새옹지마라더니. 오오 호거슨 오오 이후 2013시즌 더욱 위력적으로 돌아온 김신욱과 이를 받쳐주는 동료 선수와 지도자 역량을 발판 삼아, 리그 우승을 목전에 두는듯 싶었으나 마지막 라운드에서 효멘 때문에 포항 스틸러스에 발목을 잡히며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이후 김호곤 감독은 2013시즌을 끝으로 울산 현대 감독직을 사임하였다.


근황[편집]

울산 감독에서 사임한지 1년이 지난, 2014년 12월,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에 선임되었다. 이후 부회장 직무를 수행하고 있으며, 2017년 3월 말 울리 슈틸리케 감독의 후임 후보로 하마평에 오르기도 하였으나, 최종적으로 슈틸리케 감독이 유임되면서 없던 일이 되었다.


경력[편집]

클럽 및 대표팀[편집]


개인 수상[편집]


이야깃거리[편집]

  • 선수 생활 시절 고생이 많았다. 고등학교 2학년에 접어들어서야 축구 교습을 제대로 받았고, 대학교 시절에는 1년간 출전 정지를 당하기도 하는등 실력 배양에 있어 가장 중요한 시기를 놓쳤왔던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A매치 120경기 출장이라는 금자탑을 세우며 후배 선수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같이 보기[편집]


외부 링크[편집]

참고[편집]

  1. 120경기 출장이면,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개인 출장 순위 6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2. 과거에는 충무시 지역이었으나, 1995년 시군통합정책으로 말미암아 통영군과 충무시가 합쳐짐에 따라 통영시로 시명이 변경되었다.
  3. 본래 국민학교 6학년 시절부터 축구 선수를 꿈꾸었으나 집안의 반대와 통영에 변변한 축구부가 없었던 관계로 고등학교 2학년 시절까지 제대로 된 축구 교습을 받지 못하였으나, 동래고 2학년으로 전학을 가면서 본격적으로 축구 선수의 길을 걸었고, 이후 실력이 급성장했다고 한다. 본인은 좀 더 빨리 축구를 시작했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아쉬워 하셨다고..
  4. 동래고 졸업 후 1년간 상업은행에서 활동하기도 하였으나, 이후 연세대학교에 진학하였다. 하지만 상업은행/연세대 이중 등록 시비가 벌어지면서, 연세대 소속으로는 1년간 공식 경기를 소화하지 못했다고 한다.

틀:2004 아테네 올림픽 대한민국 U-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