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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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환 (1914년 ~ 1953년[1])은 대한민국의 전직 축구 선수이자 축구인이다.
프로필
- 이름 : 우정환
- 출생일 : 1914년
- 사망일 : 1953년
- 국적 : 대한민국
- 유스클럽 : 보성전문 졸업
- 신체 : 178cm / 75kg (선수 시절)[2]
- 국가대표 경력
- 1948년 런던 올림픽 본선 대표
- 1948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
- (통산 A매치 2경기 출장)
- 현 소속팀 : 선수 생활 은퇴
- 등번호 : -
학창 시절
경상남도 진주 출신으로 진주농고(후에 진주산업대학이 되었으며, 현재 명칭은 경남과학기술대학교)와 보성전문을 나왔다. 진주농고 시절인 1936년 부산체육회 주최 전조선축구대회[3]에서 소속팀을 우승으로 이끌며 주목을 받았다. 이후 진주에 축구 신동이 있다는 소문이 경성에까지 전해지자, 보성전문은 재빨리 우선수를 스카우트 하였으며, 이후 보성전문의 핵심 윙어로 전국대회 일정은 물론, 일본 원정도 소화하였다고 한다.
성인 시절
보성전문 졸업 후에도 축구 선수의 길을 걸었으나, 태평양전쟁기 구기종목 폐지령에 따라 각종 축구 대회가 전면 금지되자 친우인 박규정과 함께 평양 곡산공업주식회사에서 일을 하며 때를 기다렸고, 이후 광복이 되자 다시 축구계에 투신, 1947년 광복 이후 재결성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상해 원정 멤버에도 이름을 올렸으며 1948년 런던 올림픽대표팀 본선 엔트리에도 이름을 올리며 멕시코 전과 스웨덴 전에 모두 출전, 한국의 첫 올림픽 8강 진출에 공헌하였다. 이처럼 활발하게 축구 선수로 활동을 이어가던 우선수는, 1953년 담석증 치료 도중 사망하여 주위를 안타깝게 하였다. 이때 그의 나이는 39세에 불과했다.
에피소드
- 보성전문 시절 동갑내기였던 박규정 씨와 매우 절친한 사이였다고 한다. 박규정 씨는 친우인 우정환의 요절을 두고두고 아쉬워했으며, 훗날 차범근이 크게 성공한 것을 두고, '우정환 플레이 스타일이 차범근하고 많이 비슷했다'는 감상평을 남기기도 하셨다고.
- 150 ~ 160대 국가대표 선수가 즐비하던 시절, 178cm라는 상당히 큰 체격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100m 기록이 10초 8로 당시 육상 국가대표와 맞먹을 정도로 주력이 좋았다고 한다. 여기에 드리블 솜씨도 좋아서, 키가 큼에도 불구 스트라이커보다 윙어나 인너로 뛰는 경우가 더 많았다고. 이 점은 확실히 대표팀 시절 차범근 선수의 경우와 비슷하다.
- 진주가 배출한 첫번째 축구계 스타이나, 요절했다는 점 때문인지 세간에는 잘 알려져있지 않다. 이에 안타까워한 주변 지인과 진주축구동우회는 1981년 故 우정환을 기리는 기념비를 건립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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