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현정
양현정(1977년 7월 25일~)은 대한민국 국적의 축구선수로, 2000년부터 2005년까지 K리그에서 활동했던 공격수이다.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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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소년 생활
경기도 동두천 출신으로 동두천 사동초등학교, 성남 풍생중학교, 풍생고등학교, 단국대학교를 거쳤다. 풍생고 시절부터 U-20 대표팀, U-23 대표팀 등 엘리트 코스를 밟아왔으며 1996년 AFC U-19 챔피언십 4강전에서 일본 청대를 격침시키는 결승골을 터뜨리며 일약 주목을 받았고, 이후 단국대학교 재학 시절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상비군에 포함되어 A매치도 소화하는 등 승승장구 한바 있다. 하지만 이후에는 시드니 올림픽대표팀 탈락 및 하계유니버시아드 8강 탈락 등의 시련을 맛보며 다소 처지는 모습을 보였다.
프로 생활
2000년 최만희 감독의 권유에 따라 2000년 드래프트에서 전북 현대 모터스에 1순위로 지명되었다. 당시 양현정의 지목은 의외로 여겨질만큼 양선수에 대한 대학권의 기대는 높지않았다. 하지만 전북의 측면 미드필더로 기용되어 6골 7도움을 기록. 당시 이영표, 이관우 등을 제치며 K리그 신인왕 타이틀을 거머쥐며 주변의 우려를 일거에 잠재웠다.[1] 이후 데뷔 시즌만큼은 아니었지만 2002년 시즌까지 괜찮은 활약을 펼치던중, 심각한 부상을 당하게 되어 2003년에는 경기 대부분을 출장하지 못했다. 2004년 불완전한 몸상태를 이끌고 광주 상무에 입대하였지만 다시금 큰 부상을 당해, 의병 제대 명단에 오르게 되어 곧 전역하게 된다. 하지만 전북에 돌아온 양선수의 몸상태는 더 이상 전성기의 그것이 아니었다.
결국 전북을 떠난 양현정은 2005년 박종환 감독에 의해 대구 FC에 입단하였지만 부상의 그림자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고, 제대로 된 활약을 보여주지 못한채 대구에서도 방출. 한때 베트남 축구 팀인 Ho Chi Minh City F.C., 수원시청 축구단 등을 전전하다 최종적으로 2008년을 마지막으로 선수 생활을 정리하게 되었고 이후 유소년 지도자로 활동 중에 있다.
플레이 스타일
- 재능있는 왼발 키커로 측면 돌파와 날카로운 크로스가 장점이었다. 잦은 부상으로 인해 프로 무대에서는 기량을 100% 발휘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에피소드
- 사실, 전북 현대 입단 당시부터 완전한 몸상태가 아니었다. 그러나 데뷔전부터 임펙트있는 활약을 펼치며, 언론에 특급 신인으로 조명받기에 이르자 신인왕 욕심에 몸상태를 생각하지않고 잦은 출장을 감행했고, 결국 이는 선수 생명을 갉아먹는 악재로 작용했다. 그야말로 신인왕의 저주의 희생양이라 할듯.
경력
- 2000 ~ 2003 : 전북 현대 모터스 / K리그
- 2004 : 광주 상무 / K리그 (군복무)
- 2005 : 대구 FC / K리그
- 2006 : Ho Chi Minh City F.C. / 베트남 V.리그
- 2008 : 수원시청 축구단 / 내셔널리그
같이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