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부 스카우트 파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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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부 스카우트 파동이란, 1986년 현대 호랑이대우 로얄즈 간에 김종부 선수계약을 두고 벌어졌던 일련의 사건들을 말한다.

이 사건을 계기로 K리그 드래프트 제도가 확립되었으며, 김종부 선수는 비운의 천재라는 타이틀을 달게되었다.


사건의 발단[편집]

1986년 3월말, 당시 고려대 4학년으로 졸업을 앞두고있던 김종부 영입을 놓고 대우 로얄즈현대 호랑이가 다툼을 벌이면서 사건이 시작되었다. 1986년 3월 30일, 현대 호랑이 측은 김종부와의 가계약 사실을 발표했는데, 현대 측은 김종부 선수에게 계약금 1억 5천만원, 연봉 2천4백만원 이라는 오늘날 물가로 치면 십수억원대의 특급조건을 발표했다. 계약금, 연봉과 별도로 고려대 졸업 시까지 장학금 지급 (월 200만원), 프로 입단 후 팀 공헌도에 따라 상여금 지급까지, 그야말로 초특급 대우였다. 하지만 김종부 선수는 현대의 발표 12일만인, 4월 11일 자신은 대우 로얄즈로 가겠다고 선언하면서 사건이 꼬이기 시작했다.[1]


현대측의 반발[편집]

엄청난 조건에도 눈뜨고 김종부를 대우에 빼앗기게 생긴 현대측은 격분했다. 현대측은 이중 계약이라며 김종부와 대우를 비난했고, 김종부를 데려오지 못한다면 현대 호랑이를 해체하겠다는 초강수를 두며 김종부 선수를 압박했다. 여기에 축구계도 김종부를 비판하는 측과 옹호하는 측으로 양론이 갈려 김종부 선수에게 시련을 안겼고, 김종부를 가장 챙겨야했던 고려대학교 측은 오히려 김종부 선수의 행동에 분노를 표시하며 고려대 축구부에서 경기를 더이상 뛸 수 없도록 막아버렸다. 당시 김종부 선수는 1986년 멕시코 월드컵 본선 대표로 뽑힌 상황이었고, 고려대 측의 행동은 국가대표 전력까지 차질을 빚게 만드는 것이었다. 이에 김정남 당시 국가대표 감독은 고려대 측에 읍소하면서 김종부 선수를 대표팀 멤버로 포함시켰고, 김종부는 멕시코 월드컵 본선 무대에 참가해 불가리아전에서 동점골을 터뜨리며 대한민국 축구 역사상 최초로 월드컵 본선 승점 획득에 1등 공신이 되었다. 하지만 그와 별도로 김종부 스카우트 파문은 계속 이어졌다. 결국 김종부 선수는 월드컵 본선 득점의 영웅이 아닌, 건방진 선수라는 비판을 받으며 국가대표에서 제외되었고, 고려대에서도 경기를 소화하지 못한채 붕뜬채로 무려 2년에 가까운 시간을 허송세월로 보내야했다.


현대 팀 해체 선언[편집]

김종부 스카우트 파문은 1986년 3월 시작되어 무려 1987년 11월까지 20개월간 계속되었다. 1988년 서울 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김종부 파문을 매듭짓고자한 대한축구협회는 선수등록규정을 개정해 김종부 선수가 대우에서 뛸 수 있도록 등록시켜주었지만, 이번에도 현대측은 강하게 반발했다. 1987년 시즌 말미 경기를 앞두고 삼척에 머물고있던 현대 선수단은 김종부 선수가 대우에 등록되었다는 소식을 듣자 선수단을 서울로 철수시켰고 곧이어 팀 해체 선언을 하고 말았던 것. (팀해체하겠다는 위협이 아니라 정말로 팀해체를 선언한 것이었다. 덕분에 1988년 드래프트에서 현대 호랑이는 팀해체 상태라 지명권을 행사하지 못하였다.) 최악의 상황을 맞이한 대한축구협회는 결국 1987년 11월 11일, 최순영 축구협회장을 비롯해 집행부 전원이 총사퇴하였고, 수습위원회는 11월 18일, 김종부를 대우도 현대도 아닌 제3구단으로 보낸다. 고 결정해 김종부는 포항제철 아톰즈에 입단하게 되었다. 포항측은 김종부를 받는 대신, 대우와 현대에 각각 1억 5천만원을 지급해야했다.

결과[편집]

1년 6개월 가량을 제대로 뛰지 못한채 엄청난 심적 스트레스에 고통받았던 김종부는 결국 포항제철 입단 이후에도 제대로된 기량을 보여주지 못하였고, 이후 대우, 일화 등을 전전하였으나 끝끝내 고려대학교 시절의 전성기 기량을 보여주지 못한채 선수 생활을 은퇴해야했다. 김종부 스카우트 파동 이후 K리그는 K리그 드래프트라는 제도가 탄생하게 되었고, 이는 최근까지 잔존했었다.

외부 링크[편집]


참고[편집]

  1. 사실 김종부와 현대의 가계약은 현대와 김종부의 친척간 일방적인 합의와 고려대학교의 동의로 이루어진 계약에 가까웠다. 즉 선수의 의사가 전혀 반영되지 않은 계약이었던셈. 이에 김선수는 대우로 가겠다고 자신의 의견을 내세운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