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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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영(1962년 7월 10일 ~ ) 는 대한민국 국적의 전직 축구선수로 1986년부터 1992년까지 K리그에서 활동한 수비수이다.


프로필[편집]

  • 이름 : 남기영
  • 출생일 : 1962년 7월 10일
  • 국적 : 대한민국 대한민국
  • 신체 : 182cm / 72kg
  • 국가대표 경력
1988년 서울 올림픽 본선 대표
1987년 ~ 1988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
(통산 A매치 4경기 출장)
  • 현 소속팀 : 선수 생활 은퇴
  • K리그 기록
소속팀 연도 출장 교체 득점 도움 경고 퇴장 자책
포항제철 아톰즈 포항제철 아톰즈 1986 23 2 0 0 3 0 0
1987 30 7 0 0 4 0 1
1988 6 2 0 0 0 0 0
1989 21 12 0 0 3 1 0
1990 19 9 0 0 3 0 0
1991 32 11 1 0 5 1 0
1992 14 7 0 1 4 0 0
통산 (K리그) - 145 50 1 1 22 2 1
K리그 통산기록은 리그컵기록 포함. 2012년 3월 1일 기준.
연맹 공식 DB

지도자 프로필[편집]

연도 소속팀 직책
1997년 ~ 현재 청주 대성고등학교 축구부 감독


유소년 생활[편집]

경북 영월 출신으로, 옥천 죽향초, 청주 대성중학교, 청주상고를 졸업하였다. 청주상고 시절 팀의 센터포워드로 활약하였으며, 고려대학교 축구부도 스카우트 제의를 할만큼 기량이 탁월했다고 한다. 이처럼 유수의 대학팀들의 스카우트 표적이 되었던 남선수는,[1] 결국 경희대학교 진학을 선택하게 된다. 경희대에서도 좋은 활약을 보여주며 1984년 한일축구정기전 대학선발대표로 발탁된 남선수는 이후 박종환 감독의 눈에 띄어 88 올림픽대표팀에도 발탁되는 등 꾸준한 상승세를 이어갔다. 경희대 졸업 후, 남선수는 최순호 선배를 따라 포항제철 아톰스에 입단하게 된다. 1986년의 일이었다.


K리그[편집]

포항에서는 데뷔시즌부터 주전 센터백 자리를 차지한 남선수는 1987년 K리그 시즌 베스트 11에 발탁되는 등 좋은 모습을 보여주며, 1988년 서울 올림픽 본선 대표에도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서울 올림픽 본선 조별예선에서는 1차전 미국전, 2차전 소련전 모두 결장하였으며, 마지막 아르헨티나 전을 앞두고는 연습경기 도중 부상을 당해 엔트리에서 아웃되어 버렸다. 공교롭게도 2년 후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도 본선 참가를 불과 10여일 앞두고 부상을 당해 대표팀에서 낙마하는 불운을 겪었다. 하지만 국가대표에서의 아쉬움과는 별개로 소속팀 포항제철 아톰스에서는 철벽 수비수로 명성을 날리며 많은 경기를 소화하였다.


은퇴 이후[편집]

1993년 은퇴를 선언한 남선수는, 이후 심판 자격증을 취득해 1997년까지 심판으로 활동하였다. 이후 청주 대성고등학교 축구부 감독직을 맡아 무려 26년째 대성고 감독으로 활동 중이다.


플레이 스타일[편집]

  • 유소년 생활에도 적혀있듯 원래 주 포지션은 중앙 공격수였다. 그러나 박종환 감독은 남선수를 대표팀에 발탁한 후, 센터 포워드에서 센터백으로 포지션을 변경시키는 실험을 감행했고, 결과는 대성공. 이후 남선수는 수비수로 입지를 다지게 되었다.


에피소드[편집]

  • 이태호 선수의 눈을 실명시킨 선수로 알려져 있다. 1987년 4월 4일 대구시민운동장에서 벌어진 대우와의 시즌 개막전에서 바운딩된 볼을 남기영 선수가 오버헤드킥으로 걷어내기를 시도하던 도중 바운딩 볼을 헤딩하려한 이태호의 오른발 눈을 걷어차 실명케 하였던 것. 당연한 얘기지만 고의는 아니었다. 경기 종료 후, 남기영 선수와 이회택 당시 포항제철 감독은 이태호 선수에게 병문안을 가기도했는데.. 이태호 선수는 '경기 중 실수로 벌어진 것이다. 너무 걱정 말라' 고 의연하게 대처 후, 부상 100여일만에 K리그 무대에 복귀해 해트트릭을 기록했다.


경력[편집]


같이 보기[편집]

외부 링크[편집]

참고[편집]

  1. 심지어 청주상고 선배였던 최순호 씨의 추천으로 고교 졸업 후, 포항제철 축구단 입단까지 제의받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