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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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 시절 최순호(우) 제일 좌측에 이태호 선수의 모습도 보인다.

최순호(1962년 1월 10일~)는 대한민국의 축구인이다.


프로필[편집]

선수 프로필[편집]

  • 이름 : 최순호
  • 출생일 : 1962년 1월 10일
  • 신체 : 185cm / 78kg
  • 국가대표 경력
1979년 FIFA U-20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 본선 대표
1980년 AFC 아시안컵 본선 대표
1981년 FIFA U-20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 본선 대표
1982년 FIFA 월드컵 예선,본선 대표
1984년 AFC 아시안컵 본선 대표
1986년 FIFA 월드컵 예선,본선 대표
1988년 서울 올림픽 본선 대표
1990년 FIFA 월드컵 예선,본선 대표
(통산 A매치 97경기 출장 30골)
  • 현 소속팀 : 선수 생활 은퇴
  • K리그 기록
소속팀 연도 출장 교체 득점 도움 경고 퇴장
포항제철 돌핀스 포항제철 돌핀스 1983 2 1 2 0 0 0
1984 24 0 14 6 1 0
포항제철 아톰즈 포항제철 아톰즈 1985 5 1 2 0 1 0
1986 9 2 1 2 0 0
1987 16 7 2 5 0 0
럭키금성 황소 럭키금성 황소 1988 11 0 1 2 0 0
1989 22 17 1 0 4 0
1990 8 4 1 2 1 0
포항제철 아톰즈 포항제철 아톰즈 1991 16 11 0 1 1 0
통산 (K리그) - 100 26 23 19 5 0
K리그 통산기록은 리그컵기록 포함. 2013년 1월 1일 기준
연맹 공식 DB

지도자 프로필[편집]

선수 생활[편집]

유소년 시절[편집]

청주상고, 광운대학교를 졸업했다.


실업축구 시절[편집]

K리그[편집]

1983년 포항제철 돌핀스 소속으로 수퍼 리그에 참가했으며, 1987시즌까지 포항제철에서 활약하였다. 이후 1988년 수많은 가십거리를 만들어내며 럭키금성 황소로 이적하였다.[1] 럭금에서 3년간 활동 후 1991년 포항제철 아톰즈로 돌아와 1년간 활동한 것을 마지막으로, K리그 무대를 내려왔다. 이후 프랑스 로데즈 클럽에서 코치 연수 겸 선수 생활을 하다 은퇴하였다.


국가대표 시절[편집]

1980년 2월 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 소속으로 AFC U-19 챔피언십에 참가, 결승 리그 방식으로 치루어진 동 대회 4경기에 모두 출장해 4골을 기록하며 한국 청대의 우승을 이끌어 주목을 받았다. 이후 1980년 8월, 박스컵에 참가해 인도네시아를 상대로 A매치 데뷔전을 치루었으며 동 경기에서 A매치 데뷔골을 기록하기까지 하며 한국축구의 희망으로 급부상하기에 이른다.[2]


지도자 생활[편집]

포항 감독 시절[편집]

1999년 포항 스틸러스 코치로 부임한 뒤, 2000시즌 도중 박성화 감독이 성적 부진으로 자진사임하면서, 감독 대행으로 K리그 감독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2000년 8월 6일, 부천 SK와의 원정 경기가 그의 감독 데뷔전이었으며, 이 경기에서 포항은 0-2로 패배한바 있다.[3] 이후 정식 감독으로 승격되어 2004년까지 4시즌간 포항의 감독직을 수행하였다. 그러나 선수 시절의 명성과 달리 감독으로서의 성적은 좋질 않았는데, 10 ~ 12개 팀으로 이루어졌던 당시 K리그에서 5 ~ 7위라는 중위권 성적을 내며 팬들에게 실망을 안겼던게 그것. 여기에 경기 내용 역시 수비 위주의 재미없는 축구라며 포항 팬 뿐만 아니라 K리그 커뮤니티 전반에서 질타를 받은바 있다. 2003시즌에는 시즌 초반 10위 아래로 떨어지는 심각한 부진을 겪으며 서포터즈의 퇴진 요구까지 받는 수난을 당했지만, 이내 팀을 잘 추스리며 7위로 시즌을 마무리 하였고, 2004시즌에는 전기리그 우승과 통합 준우승을 이끌어내는 모습을 보여주며 평가가 반등되는듯도 했는데.. 하지만 04시즌 종료 후, 최감독은 계약을 연장하지 않고 포항 감독직에서 내려왔고, 이후 최감독의 후임으로 세르지오 파리아스가 등장, 포항을 완벽히 부활시키는데 성공하면서 자연히 최감독은 파리아스와 비교되며 포항의 암흑기를 이끈 주역으로 평가절하되는 수모를 겪어야했다.

요약하자면 팀의 레전드이자 80년대 한국축구를 대표하는 명선수로, 포항 감독 부임할 당시에는 많은 팬들의 환호를 받았으나... 이후 성적과 재미 그 어느 하나도 제대로 잡지 못한 감독으로 평가가 추락해버린 셈. 지금도 최순호가 이끌던 시기는 2010년 레모스와 함께 포항의 암흑기로 기억되고 있다.


포항을 떠난 이후[편집]

2006년 울산현대미포조선 돌고래의 감독으로 부임, 내셔널리그 2연패를 이끈뒤 강원 FC의 초대 감독으로 부임했지만 2011년 최악의 부진을 보이면서 사임하였다. 2012년 GS의 미래기획단장으로 재직했지만 해체됐고 이후로는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으로 재직하다가 2016년 시즌중에 최진철 감독이 사임하자 후임으로 포항 스틸러스에 컴백했다.

스타일[편집]

플레이 스타일[편집]

지도자 스타일[편집]

에피소드[편집]


같이 보기[편집]

외부 링크[편집]

참고[편집]

  1. 이적 이유를 두고 말이 많았다. 표면적인 이유는 연봉 문제로 알려졌지만, 내면에는 이회택 감독과 최선수 사이의 불화가 원인으로 추측되었기 때문..
  2. 당시 최순호 선수의 나이는 만 18세 249일로, 대한민국 A매치 최연소 출장 기록과 대한민국 A매치 최연소 득점 기록을 새로 쓰는데 성공하였다. 이후 A매치 최연소 기록은 김판근, 이승희, 이문영에 의해 83년에 깨지게 되지만, A매치 최연소 득점 기록은 아직도 깨지지 않고 있다.
  3. 당시 심판이 부천 조진호 선수의 헐리우드 액션에 속으면서 페널티킥을 선언했고 포항의 골키퍼 조준호는 퇴장당했던바 있다. 이 때 서브 명단에 골키퍼가 없었던터라, 수비수 오명관이 골문을 지켰고 결국 포항은 1골을 더 내주면서 0:2로 패배했다.
  4. 최순호, 국제축구연맹 센츄리클럽 회원 등록 -1999년 1월 7일,연합뉴스-
  5. 최순호 등 올드 스타 센추리클럽 가입 추진 -2008년 10월 15일,경기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