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성
박주성 (1984년 2월 20일 ~ 현재)은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로, 2003년부터 K리그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이드 풀백이다.
프로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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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소년 시절[편집]
경상남도 진해시 (현 창원시 진해구)에서 태어난 박주성은 진해덕산초등학교, 거제중학교, 마산공업고등학교를 거쳤고, 연령대별 대표팀에 꾸준히 선발되며 가능성을 보였다.
프로 생활[편집]
수원 삼성 블루윙즈[편집]
2003년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 입단, 첫 해 11경기에 출장하며 팀의 후보로 프로 생활에 적응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2004년 차범근 감독의 부임 이후로는 단 7경기에 출장하는 데 그치자 군입대를 결심, 2005년부터 광주 상무 불사조에서 뛰며 두 시즌 간 28경기에 출장하여 1도움을 기록하며 준수한 활약을 펼쳤다. 하지만 군복무를 마친 후 수원에 복귀한 그는 2007년 6경기, 2008년 단 한 경기에 출장하는 데 그치며 한국 무대에서 쓸쓸히 퇴장해야 했다.
베갈타 센다이[편집]
2009년 수원을 떠나 당시 J리그 세컨드 디비전 클럽 베갈타 센다이로 이적한 박주성은 첫 시즌 34경기에 나서 2골을 기록하며 팀의 승격을 이끌었다. 특히 49라운드 세레소 오사카전에서는 후반 추가시간에 결승골을 기록한 장면은 백미. 하지만 2010년 8월 7일, 요코하마 F. 마리노스와의 경기에서 전반 30분경 열사병으로 쓰러져 실려 나갔다. 이에 대해 테구라모리 마코토 감독은 "독신인 그가 영양에 대해 잘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다"면서, 며칠 뒤에는 "이 일은 아마 J리그에서 최초로 일어났을 것이며, 한심하기 짝이 없다. 이런 일이 계속된다면 프로로서 실격"이라고 혹평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2011년, 27경기에 나서며 팀의 리그 4위 등극에 일조하였고, 지난 2012년에는 23경기에 출장하며 리그 2위로 AFC 챔피언스 리그 티켓을 따냈다.
경남 FC[편집]
2012시즌까지 베갈타에서 훌륭한 활약을 펼친 박주성은 2013시즌을 앞두고 고향 팀인 경남 FC에 입단하였다. 등번호는 베갈타 시절과 같은 27번. 고등학교 졸업 후 15년 만의 귀향인 셈. 그는 입단식 인터뷰에서 "15년만의 귀향이라 감회가 새롭다. 언젠가는 돌아와야 할 팀이라 마음이 설렌다"면서 "수비수이지만 공격적인 스타일이다. 경남에 맞는 플레이를 하겠다. 경남에 빨리 적응해서 좋은 모습을 보이겠다. 팀에 빨리 적응해서 팀에 보탬이 되고 국가대표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밝혔다[1] 하지만 그 바람도 잠시, 그는 시즌 준비 기간 부상을 당하며 4월 18일 현재까지 경기에 출장하지 못하고 있다. 그를 대신해 경기에 나선 김용찬은 경험 부족으로 인한 불안한 모습을 드러내 팬들의 걱정을 사고 있다. 2013시즌 이후 점점 출장 경기수를 늘려나가고 있으며, 2014시즌 주전으로 도약하였다. 또한 13라운드 SK 유나이티드전에서 멋진 바이시클 킥으로 경남 및 K리그 데뷔 골을 기록하였다.
2014시즌 경남 FC의 세번째 주장[2](...)으로 선임되었다. 현재 선수단 중 몇 안되는 경험 많은 선수이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경남 수비진이 계속 안정적이지 못한 경기력을 보이자 스리백의 중심에 서서 경기를 소화하고 있다. 이후 소속팀의 강등을 막기위해 고군분투하였지만.. 광주 FC와의 승강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발목 부상을 입어 2차전에는 출전하지 못했고, 결국 소속팀의 강등을 지켜봐야만 했다. 강등 직후 홍준표 경상남도지사 겸 구단주의 팀 해체 발언으로 어수선한 선수단 분위기를 다잡는 큰형 역할을 기대했지만... 중국 구이저우 런허로의 이적이 확인되었다. 이것이 경남발 엑소더스의 시작이 아니냐며 경남 팬들의 걱정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구이저우 런허 시절과 그 이후[편집]
구이저우에서는 윙백과 센터백을 모두 소화하며 수비 유틸리티 자원으로 활약하였으나, 팀의 CSL 강등을 막아내지 못해 재계약에는 실패하였다. 이후 팀을 떠나 2016시즌 친정팀 격인 경남 FC에 복귀하게 된다. 경남에서 2016년 전반기 동안 8경기에 출전하였으며 2017년까지 팀에 잔류하였으나, 주전으로 도약하지 못하였고, 소속팀 동료 전상훈 선수와 함께 여름 이적 시장을 통해 대전 시티즌으로 전격 이적하였다.
국가대표 시절[편집]
2000년, 대한민국 U-17 대표팀에 발탁된 것을 시작해 차근차근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선수이다. 특히 2002년 AFC U-19 챔피언십에서 대한민국 청소년대표팀을 우승으로 이끄는 활약을 선보인 뒤, 2003년에는 U-20 대표팀, 아테네 올림픽대표팀은 물론 성인 국가대표팀에도 불려나가는 최고의 한 해를 보냈던바 있다. 하지만 A팀에 뽑힌 두 번 모두 부상으로 도중에 대표팀을 하차하는 아쉬움을 겪어야 했다. 최종적으로 U-17 대표팀에서는 3경기 출장 1골, U-20 대표팀에서는 18경기 출장 2골, U-23 대표팀 1경기 출장, 국가대표는 2경기 출장을 기록하였다.
업적 및 수상[편집]
클럽[편집]
에피소드[편집]
- 일본에 있던 시절, 팬들에게 가장 많이 들은 말 중 하나가 "발은 괜찮으세요?" 였다고.
- 부상으로 2013시즌 컨디션 관리에 어려움을 겪은 탓에, 눈으로 봐도 체중이 엄청 불어난 것이 보였는데 동계 전지훈련을 준비하면서 살을 확 뺐다고 한다. 그 덕분인지 2014시즌은 전반기가 종료될 때 까지 큰 부상없이 꾸준히 경기에 출장하고 있는 중이다.
- 강렬한 인상과 무뚝뚝한 말투 때문에 첫인상이 무섭다는 소리를 종종 들으나 그런 이미지와는 달리 유순한 성격이라고 한다. 팀이 최하위에 머물다보니 동생들 후배들을 모아 선수단 미팅을 열어 긍정적인 분위기를 이끌어내고자 노력하였다고 한다 [3]
- 2014년 9월 20일 상주 상무와의 경기 시작 전, N석에 메가폰이 없었는데(전후사정 아시는 분 추가바람) 박주성이 직접 메가폰을 챙겨준 다음 선수들과 파이팅을 다짐하며 경기를 풀타임으로 소화하였다. 승리 후 그 메가폰을 돌려받으며(...) "그동안 저희가 이길경기도 비기고 지고 해서 팬분들 속상하게 해서 죄송한 마음이었는데 오늘 이렇게 이기게 되어서 좋습니다." 라고 말하여 팬들의 마음을 짠하게 했다.
- 최근에는 창원시 소재 중학생들 1700여 명에게 편지를 썼다. 2014 미들스타 축구리그에 참가한 학생들과 그 친구들에게 초청장 형식으로 편지를 보낸 것. [4] 편지 내용은 한때 나이키 광고 "내 이야기 들어볼래?"의 느낌이 강하다.
경력[편집]
시즌 | 소속팀 | 리그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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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1 ~ 2008.12 | 수원 삼성 블루윙즈 | K리그 | |
→ 2005 ~ 2006 | 광주 상무 불사조 | K리그 | 군복무 |
2009.01 ~ 2012.12 | 베갈타 센다이 | J리그 디비전1 | |
2013.01 ~ 2014.12 | 경남 FC | K리그 클래식 | |
2015.01 ~ 2015.12 | 구이저우 런허 | 중국 슈퍼리그 | |
2016.01 ~ 2017.06 | 경남 FC | K리그 챌린지 | |
2017.07 ~ 현재 | 대전 시티즌 | K리그 챌린지 |
같이 보기[편집]
참고[편집]
- ↑ (노컷뉴스) J리거 박주성, 고향팀 경남 유니폼 입었다.
- ↑ 첫번째 주장으로 선정된 이한샘은 경기력 저하와 부상의 이유로 전반기 4경기 출장에 그쳤고, 주장 완장이 조원희에게 넘어가는듯 했으나 조선수는 전반기 종료 이후 일본으로 떠났다. 결국 3번째로 박주성이 선임되었던 것.
- ↑ 팀 내 고참급인 김영광의 적극적인 도움이 있었다는 후문.
- ↑ 관련기사 : 경남 박주성, 중학생 1,700명에 편지 쓴 이유는? (인터풋볼 - 이현민 기자)